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정부가 바뀌고 교육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때마다 가장 먼저 바뀐 게 바로 학생부의 명칭이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중시하던 시절엔 '자치'가 끼어들었고,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는 '안전'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올렸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숱하게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주요 업무도, 이미지도 '학생부' 그대로다.
 정부가 바뀌고 교육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때마다 가장 먼저 바뀐 게 바로 학생부의 명칭이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중시하던 시절엔 "자치"가 끼어들었고,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는 "안전"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올렸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숱하게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주요 업무도, 이미지도 "학생부" 그대로다.
ⓒ 유비유필름

관련사진보기


7년 만에 다시 '학생부장'이 됐다. 물론 원해서 된 게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억지춘향'식으로 떠맡게 된 것이다. 모르긴 해도 승진을 위해 근무평정 점수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50대 교사에게 학생부장을 맡기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학생부장을 '덜컥' 승낙한 이유
  

모든 교사가 기피하는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불리는 까닭에 일부 교육청은 '당근'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산 문제로 아직 고등학교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의 경우 학생부장의 수업 부담을 대폭 줄여주고 있다. 수업시수로만 보면, 대학교수 부럽지 않을 정도다.

주변에선 예전에 비해 학생부장의 업무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올해부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의 업무가 교육청 소관으로 옮겨졌으니, 숫제 업무의 절반이 사라진 셈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도 많다. 늘 그렇듯, 남의 일은 적고 쉬워 보이는 법이다.
  
7년 전에도 교육청에 숱하게 문제 제기를 한 것이지만, 애초 학폭위는 학교에 꾸려질 조직이 아니었다. 교사와 학부모, 경찰과 변호사 등의 외부인이 모여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처벌을 결정한다는 건 명색이 교육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학교가 사법기관은 아니잖나.

학교폭력에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도입한 학폭위는 실패로 끝났다. 학폭위 업무의 교육청 이관 결정은 학교폭력이 날로 흉포화하면서 더 학교에서 손을 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폭력이 처벌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계기도 됐다.

덜컥 학생부장을 맡겠다고 승낙한 건 그래서다. 학생부장이 더 이상 '학생주임(이하 학주)'라는 이미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개입하고, 단속하고, 처벌하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고정관념을 떨칠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사실 학생부의 명칭만큼 자주 바뀐 사례도 드물다. 학생부는 '학주'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의 이름이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명패를 수시로 바꿔 달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학생부에서 생활지도부, 학생생활교육부, 학생자치부, 안전생활자치부 등을 거쳐 현재는 안전생활교육부다.

정부가 바뀌고 교육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때마다 가장 먼저 바뀐 게 바로 학생부의 명칭이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중시하던 시절엔 '자치'가 끼어들었고,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는 '안전'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올렸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숱하게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주요 업무도, 이미지도 '학생부' 그대로다.

생활지도와 안전, 자치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부서와 학급의 역할 분담,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 등의 수정이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다. 집중과 선택이라는 운영의 묘를 살릴 방안도 필요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생활지도는 모든 교사의 공통 업무지, 학생부의 고유 업무일 수 없다. 생활지도는 선도이고, 선도는 곧 처벌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학생부의 일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담임교사나 교과 담당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라면, 학생부장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다.

그저 학생선도위원회(이하 선도위)를 열어 아이의 잘못과 처벌 내용을 문서화하는 일이 전부다.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선도위의 몫이지 학생부장의 업무가 아니다. 선도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관련 서류를 챙기는 역할을 할 뿐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선도위원장은 교감이 맡고 있다.

생활지도와 관련된 무슨 '자격'과 '능력'이 있어 학생부장을 맡는 경우는 없다. 그저 학년 초 보임에 따라 학급 담임과 보직 교사로 갈렸을 뿐이다. 담임교사의 손을 떠난 아이가 학생부장의 지도를 거쳐 개과천선하는 경우를 주변에선 본 적이 없다. 학생부로 넘겨지면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교육을 빙자한 폭력일 뿐이다.

안전 교육의 실효성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마다 안전 교육이 의무화되어 정기적으로 실시되고는 있으나, 대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교육청에서는 실시 여부와 횟수를 묻고, 학교는 공문 형식에 따라 보고하면 그걸로 끝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모든 걸 문서로 증빙하고 면피하려는 뿌리 깊은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몇 해 전 지진이 나서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지만, 학교마다 지진 대피 훈련은 여전히 형식적인 시늉에 그치고 있다.

안전 교육이 학생부장의 업무로 배정된 건, 그런 면피성 서류를 챙기라는 뜻일 뿐이다. 고작 아이들에게 관련 영상을 보여주고, 교사들에게 안전 교육 연수를 권고하는 일이 사실상 전부다. 영상을 시청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교육 내용을 문서로 남기면 그걸로 끝이다.

일상생활 속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유관 기관에서 제공하는 영상 교육 자료는 넘쳐나지만, 그것을 활용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일부에선 대학입시 준비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나오는 실정이다.

안전 교육이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엄연한 교과 수업의 일환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에 별도로 삽입하거나, 모든 교과마다 수업 내용과 관련지어 안전 교육을 융합 수업으로 실시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단언컨대, 안전 교육보다 더 중요한 학교 수업은 없다.

신뢰 회복을 꿈꾸다
  
 학생주임과 학생 간 신뢰의 회복에 물꼬를 틔우기 위해 안전생활교육부에서 인권자치부로 명패를 교체했다.
 학생주임과 학생 간 신뢰의 회복에 물꼬를 틔우기 위해 안전생활교육부에서 인권자치부로 명패를 교체했다.
ⓒ tvN

관련사진보기

 
뭐니 뭐니 해도 학생부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아이들의 자치 역량 강화'다. 올해부터 선거연령도 낮아진 만큼, 학생 자치 역량의 강화는 학교마다 화두가 될 게 분명하다. 시나브로 학생 자치가 실현되면, 학교폭력이 줄어들고 아이들의 안전 의식 역시 제고될 것이라 확신한다.

진정한 자치는 아이들의 말문이 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학입시에 목매단 채 오늘의 삶을 미래에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아이들에겐 침묵이 생존 전략이다. 오로지 대학입시 공부만 허락되는 현실에서, 교사의 지시에 철저히 순응하도록 교육받아왔다.

소심하고 무기력하다고 아이들을 탓할 수 없는 이유다. 각자가 자기 생각을 마음껏 피력할 수 있도록 학교가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첫 단추는 입시 공부에 치여 유명무실화한 학급회의와 대의원회의를 법제화하고, 공식 행사의 하나로 학사일정에 끼워 넣는 것이다.

회의를 통해 제안되고 합의된 사안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시나브로 자기 효능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고갱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겐 고작 친구들보다 점수가 높았을 때 느끼는 '기쁨'이 사실상 자기 효능감의 전부 아니었던가.

우리 교육이 지닌 모든 문제는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아이들은 그런 교사를 되레 '꼰대'로 여기며, 학부모는 오로지 자녀에게만 매몰된 채 학교를 당최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신뢰의 회복에 '자치'가 물꼬를 틔울 수 있지 않을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느냐'는 조롱에도 올해 다시 명패를 교체했다. 안전생활교육부에서 인권자치부로. 올해는 소풍과 수련회 수학여행과 학교 축제 등 기존의 학생부가 주관한 모든 행사의 기획과 예산 수립부터 시행, 환류의 전 과정을 오롯이 아이들에게 맡길 요량이었다.

유관순이 만세시위를 주동하고, 소년대장으로서 김구가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때가 열일곱 살이었다. 켜켜이 쌓인 우리 교육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기우'일 뿐, 지금의 열일곱 살 아이들이라고 못해낼 이유는 없다. 그들의 역량을 펼칠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 학교 책임이 크다.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변화
 
 코로나19로 인해 개학 연기 후 고3의 첫 등교일인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등교를 하며 교사와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 연기 후 고3의 첫 등교일인 5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등교를 하며 교사와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나이 50에 다시 떠맡은 학생부장,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았다. 적어도 코로나19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개학 전 2월까진 그랬다. 다이어리에 주별로 할 일을 메모하면서, 올해를 '학주'라는 오래고도 질긴 관행을 깨는 원년으로 삼겠다며 단단히 벼렸다.

하지만 지금, 할 일을 깨알같이 적어둔 다이어리는 먼지만 뒤집어쓴 채 책꽂이에 꽂혀 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마당이니 굳이 꺼내 볼 일도 없다. 교내외 모든 단체 활동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어 아이들의 자치 능력을 키울 기회조차 사라진 상태다.

올해부턴 '학주'의 이미지를 벗고 인권자치부장으로 불리길 바랐건만, 학생부장이라는 이름조차 과분해졌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학교마다 학생부장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방역관리팀장으로 지정되었다. 보건 교사와 함께 학교 방역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는 뜻이다.

학년 초 아이들의 자치 역량 강화를 최우선 삼고, 실효성 있는 안전 교육을 하며, 생활지도를 통해 인권 감수성을 함양시키겠다는 포부는 모두 물거품이 됐다. 방역 지침에 따라 교육과정조차 수정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과욕일 테다. 그러잖아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게 최고의 인권이고,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마스크를 쓰는 것이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훈련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삼고 있다. 비록 학년 초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공부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만큼은 공유하게 됐으니 말이다.

시답잖고 하나 마나 한 지난 다이어리 속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낸 이유가 있다. 지난 13일 난생처음으로 중간에 깨지 않고 12시간 넘게 잠을 잔 '충격' 때문이다. 매일 아침 7시까지 출근하느라 모자랐던 잠을 한꺼번에 보충한 셈인데, '훈장'처럼 입술 주위가 부르텄다.
  
방역관리팀장으로서, 고3이 등교 개학한 5월 20일부터 지금껏 얼추 한 달 동안 지속된 일과다. 대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교사가 쉬는 시간 복도에서,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거리 두기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혼자만 힘들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14일), 이곳 광주의 중·고등학생 2명에 대한 최종 코로나 확진 판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차 검사 때와는 달리 2차와 3차 때 음성이 나오면서 교육계를 중심으로 큰 혼란이 일어났다. 현재 시교육청은 학교의 방역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두렵다. 여름 땡볕에 한 시간 반 동안 방역의 최전선 교문을 지킨 뒤, 종일 마스크를 낀 채 수업을 해야 한다는 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다. 지금도 쓰러지기 직전인데, 방역을 더욱 강화하겠다니 방역관리팀장이라는 '벼슬'이 주는 중압감이 너무 크다.

엊그제는 자다가 "마스크 똑바로 써!"라며 잠꼬대를 했다. 올해 현직 교사로서 나의 정체성은 학생부장도, 한국사 교사도 아닌 방역관리팀장이다. 인권자치부장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과연 올해를 넘기기 전 학생부장과 한국사 교사라는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단하다.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늘도 난 세계일주를 꿈꾼다. 그 꿈이 시나브로 가까워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