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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1980년 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항소심 2차 공판 당시 사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1980년 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항소심 2차 공판 당시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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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전환기에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비명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 마틴 루터 킹.

10ㆍ26거사 이후의 한국사회는 거대한 전환기였다.

유신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서울의 봄 아니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갔다. 거기에는 "악한 사람들의 거친 비명"이 크게 작용을 하였다.
 
유신의 핵을 제거함으로써 민주화의 막을 연 사건의 주모자가 진짜 내란을 일으킨 세력에 의해 '내란목적 살인죄'도 극형이 선고되고, 『조선일보』가 "개만도 못한 인간"으로 낙인하면서 사태는 돌이키기 어렵게 되었다. 검찰의 논고와 재판관들의 판결문이 판박이가 되는 세태이고, 아무리 비상계엄의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면책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박정희의 국장 행사에는 200만 시민이 거리를 매웠다.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만행을 자행하던 1980년 5월 24일 김재규와 그의 동지들에 대한 사형 집행이 예정되었다.

"사형 집행은 극비리에 준비되었다. 5월 17일 비상계엄전국 확대에 따른 광주사태로 시국의 앞날이 불투명했을 때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김재규의 존재가 하나의 불씨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음인지 사형 집행을 서둘렀다.",(주석 1) 

"신군부가 김재규 처형을 서두룬 이유는 바로 민심의 불꽃이 김재규 구원 쪽으로 향할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주석 2)

 
김재규는 결코 생명에 급급하지 않았다. 초연했다고 하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사형 집행이 되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23일에 자신의 사형 집행이 바로 다음날로 다가와 있음을 직감했다. 당시 교도소 관계자들이 주요 재소자 관리를 위해 비밀리에 녹음기를 품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주석 3)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변호사로부터 들은 김재규는 죽음(죽임)에 대비하였다. 5월 23일 어머니와 부인 등 가족과 이승에서 마지막이 되는 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금강령』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응당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낼 지니라"는 구절로 담담한 심경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가족에게 30분간 유언을 하였다. 유언은 수감 중인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오전 9시부터 녹음으로 남겼다.
 
그의 유언은 꽤 긴 편이다. 새가 죽음에 이르면 노래가 처량하고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그 말이 진실해진다고 했다. 63년의 파란곡절의 삶, 무엇보다 동향이고 한때 은혜를 입었던 절대권력자를 살해해야 했던, 10ㆍ26거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심경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어느 대목도 빠뜨릴 수 없이 네 차례 나눠 싣는다. 제목은 유언 중에서 임의로 뽑은 것이다.

                  하늘의 재판에서는 이길 것

오늘이 5월 23일, 아침이군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길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최후의 날이 아닌가 이렇게 나는 감촉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소회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나는 금번 1심, 2심, 3심 - 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 재판까지 3심까지를 거칠 예정이었는데, 난 또 한 차례의 재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뭐냐 제4심인데, 제4심은 이것은 바로 하늘이 심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고 이것은. 하늘이 정확한, 그야말로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재판이 나에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는 이미 난 이겼다. 다시 말해서 내가 목격했던 바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을 했다, 그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회복이 되고 그것이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나는 이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들 이렇게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물결은 세차게 흐르기 시작해서 이 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천하공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어서 여기 순조롭게 민주회복이 되어 나가지 못하고 장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문제가 되지 천하의 대세는 사람으로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서 이런 비유를 하나 들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던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듯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회복에 있어 가지고서도 나의 희생 없이 이 나라의 민주회복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보장되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기 좀 힘듭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고마움을 애절하게 느끼는 부류의 국민들도 있고, 또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필요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이런 부류도 없지 않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주석
1> 안동일, 앞의 책, 393쪽.
2> 김재홍, 『박정희의 유산』, 58쪽, 푸른 숲, 1998.
3> 김성태, 앞의 책, 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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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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