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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의 원만한 해결은 가능할까요. 중학교 학생부장의 시각으로 바라본 학교폭력에 대한 글을 연속으로 싣습니다. [편집자말]
인근 학교 학생부장 이름이 뜬 핸드폰을 보며 난 자동적으로 숨을 크게 쉬었다. 개인적 인연이 없는 인근 학교 학생부장이 전화를 했다면 십중팔구는 학교폭력 관련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화는 어떤 일로 전화했든 항상 서로에 대한 위로로 시작한다.

"부장님, 잘 지내시죠?"
"네, 부장님, 부장님도 건강하시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몸 건강 마음 건강이 최곱니다."
"네, 부장님도요."


우리의 통화는 항상 인사치례가 끝나면 약간의 침묵이 있다. 오늘도 역시 수화기 너머로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난 이 머뭇거림을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

학생부장은 신고가 접수된 학폭 건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약간의 푸념을 섞어가며 해주었다. 나 역시 선생님의 푸념에 한숨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기 전에 사건 개요를 알려주고 이후 처리 방향과 일정을 파악하고 협의하는 우리 학생부장들 전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부장님, 일단 저희 학교 아이 불러서 조사를 할게요. 그리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부장님. 고생하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또 한숨이 나왔다. 일단 교감, 교장선생님께 보고했다. 그분들 역시 고생하겠네 하는 표정이었다.

"사과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사과 못한다"는 아이
 
JTBC에서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로 방송됐던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JTBC에서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로 방송됐던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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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을 작년에 가르쳐봐서 행동 성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학생부 선생님들과 처리 방안을 협의한 후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한 이유를 이야기하고 오늘 학교로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아이는 금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오겠다고 했다. 일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니 일 처리는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사건을 간략히 설명하고 아이에게 사실 확인을 하겠다고, 그리고 앞으로 어떤 절차가 따라 처리되는지 설명했다. 나 역시 학부모라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어떤 심정인지 짐작이 돼 최대한 안심시키며 말했다. 그래도 괴로웠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왔다. 그런데 이놈이 앉으라고 했더니 삐딱하게 앉는 게 아닌가. 반항기가 느껴졌다. 똑바로 앉으라는 고함이 나오는 것을 힘들게 참았다.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처벌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함이나 위협은 아이의 과장된 행동을 더 부추기고 학교폭력 조사를 어렵게 할 뿐이다. 먼저 아이에게 있었던 사실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도록 해야 했다. 그러려면 아이를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야, 선생님은 사람은 신이 아니어서 누구나 잘못은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잘못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 멍청한 사람은 있었던 일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거나 때론 감추는 데 그러면 당당하고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어. 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 것은 했다 하고 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았다 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그러니까 △△이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줄래?"
"네, 선생님..."


다행히 아이는 자신이 한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했고 잘못했다고 했다. 전화로 들은 사건 개요와 대체로 일치했다. 학생 확인서를 쓰고 보호자에게 연락해 조사 내용을 전해 주었다. 보호자 역시 아이가 그런 것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에게 백번 사죄드리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학교폭력 사안 처리의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 이제부터는 피해자 측의 요구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했다.

피해자 학교 학생부장님께 전화를 했다. 예의 그 위로의 시간이 지난 후,

"부장님, 우리 아이와 학부모는 모두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과한다고 하고 재발 방지 역시 분명히 약속한답니다."
"다행이네요. 사안 조사 보고서와 학생 확인서, 보호자 확인서를 공문으로 보내 주세요."
"네, 곧 보내겠습니다."
"아, 참 교육청 보고는 하셨죠?"
"네, 바로 했어요. 학생하고 학부모는 뭐라고 해요?"
"이쪽도 처벌보다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원해요.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학교폭력 전담기구 심의해서 연락드릴게요."
"네, 다행이네요. 모쪼록 잘 처리됐으면 좋겠네요. 부탁드려요."


며칠 후 사과와 다짐의 자리를 마련했으니 참석하겠느냐는 연락을 받고 아이와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아이와 보호자 모두 참석하겠다고 했다. 사과와 다짐의 자리에서 혹시나 상처 입은 피해자나 피해자 부모에게 오해받을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좀 더 다짐을 받아두기 위해서 아이에게 학교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온 아이는 다짜고짜 사과를 못하겠다고, 교육청에 가서 학교폭력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뭐지 싶었지만 일단 안정을 시키고 이유를 물으니 가해 학생들끼리 연락했는데 자신들보다 학년이 낮은 피해 학생들에게 하는 사과는 폼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자기 때문에 보호자가 사과하는 것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들어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는 아직 어리지 않은가. 한참 동안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사과하지 않는 것은 후배들 앞에서 고개 숙이는 것보다 훨씬 부끄러운 일이며 그것이 보호자를 더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아이는 마음을 바꿔 사과 편지를 쓰고 사과와 다짐 모임에 참석했다.

아직은 아이 편에서 생각하는 선생님 되고 싶다

사과와 다짐 모임은 우여곡절 끝에 원만히 끝났다. 공식 사과와는 별개로 피해자 아이와 학부모께 아이를 데리고 가 다시 한 번 사과를 시켰다. 나도 선생님으로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며칠 후 이번 학교폭력 건은 학교장 자체 종결 처리로 마무리됐다.

이번 건은 학교폭력 건 중 처리가 가장 원만히 된 건이다. 학생부장을 맡아 처리한 두 건의 학교폭력 건이 모두 원만히 처리돼서 보람도 느낀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당한 부담감에 짓눌리는 것도 사실이다. 내 대응 방식이나 일 처리 방식 아니면 사소한 말투 하나로 곤란에 빠질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 역시 아이의 아픔보다는 객관성으로 무장한 선생님이 되겠지만 그럴 때 그러더라도 지금은 아이 편에 서서 생각하려 한다. 진심이라면 아직은 통하는 세상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학교폭력을 교육으로 이끄는 길임을 믿기 때문이다.

태그:#학교폭력, #상처, #진심, #교육,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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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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