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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정부가 신종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규제조치를 두달 만에 완화, 상점들의 영업을 허용함에 따라 9일(현지시간) 수도 빈(비엔나)의 시민들이 시내에 나와 쇼핑을 즐기고 있다.
▲ 코로나19 규제 완화하자 쇼핑 나선 오스트리아 시민들 오스트리아 정부가 신종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규제조치를 두달 만에 완화, 상점들의 영업을 허용함에 따라 9일(현지시간) 수도 빈(비엔나)의 시민들이 시내에 나와 쇼핑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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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는 "예술과 문화는 말 그대로 보자면 식량이다"라고 했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아무 일 없는 듯 물리적 배고픔을 해결하며 살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심각하게 굶주리고 있다. 전세계가 마찬가지다.

유럽국가들 중에서 코로나 학점 'A+'를 받은 오스트리아. 영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유럽국가들이 매일 몇천 명의 코로나 확진자 수를 발표하던 지난 4월말, 코로나 확진자가 1만 명이 넘는 국가들 중 신규 확진자 수가 두 자릿수까지 내려간 국가는 오스트리아, 한국, 중국뿐이었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0~30명 정도 발생하는 안정적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 5일 정부는 오는 15일부터 마스크 의무화라는 커다란 부담감에서 국민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써야 하는 병원, 약국, 관공서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자율적 책임에 맡긴다는 정책이다.

'금기'까지 묵묵히 받아들인 오스트리아

2020년 2월 25일 오스트리아에서 첫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왔다. 티롤주 인스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일하는 24살 동갑의 이탈리아인 커플이었다. 고향인 이탈리아를 방문한 뒤 오스트리아에 돌아온 이 커플은 코로나 증상을 보인 뒤 확진판정을 받았다. 그 이후 오스트리아에서는 알프스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진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정부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빠르고 엄중한 정책을 발표했다.

이곳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오스만제국의 대유럽 침략을 합스부르크 군대가 물리쳐 서유럽이 이슬람문화에 지배되지 않았던 것을 일종의 자긍심으로 여긴다. 그런 곳에서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는 문화, 혹은 얼굴을 가린 이민족이나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똘레랑스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마스크 사용 의무화가 코로나로부터 국민건강을 지키는 마지막 강경제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의무화는 별다른 반발 없이 자리 잡았다. 4월 1일부터 슈퍼마켓들은 장바구니를 닦고, 손을 소독시키고, 마스크를 무료로 나누어주는 인력을 따로 채용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아졌고, 소규모 양복점이나 상점을 중심으로 패션마스크의 판매가 증가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우리는 해낸다(Wir Schaffen das)!"라며 타협하고 뭉쳤다. 오스트리아는 꽤 좋은 성적표로 코로나와 싸웠다. 이제는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정부의 코로나 제재 이후 등록된 실업자는 전월대비 3월 약 66% 증가했다. 정부는 코로나 비상사태를 위해 노동시장에 3천만유로(약 405억) 투자를 약속했다. 실업급여 외에도 코로나로 직장을 잃거나 단시간 노동계약조건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에게는 코로나긴급자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저임금 예술가들에게는 정부의 요구서류 작성 제출시 최고 1000유로(약 135만 원)까지 지급받게 했다. 코로나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무료상담전화도 개설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얼어붙은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녹이기 위해서는 감정적 위로가 가장 시급하다는 시각도 있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작한 미술관들
 
비엔나 뮤지움 사이트에 사람들이 "나의 코로나" 사진을 보내왔다. 비엔나 뮤지움은 이 코로나 사진 전시회를 곧 기획하고 출판할 예정이다.
▲ 비엔나 뮤지움 사이트 비엔나 뮤지움 사이트에 사람들이 "나의 코로나" 사진을 보내왔다. 비엔나 뮤지움은 이 코로나 사진 전시회를 곧 기획하고 출판할 예정이다.
ⓒ Wie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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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정부와 기관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점을 문화와 예술의 새로운 시작에 두고 있다. 5월 중순부터, 작은 뮤지엄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5월 말 예술사박물관, 알베르티나뮤지엄, 비엔나뮤지엄 등 큼직큼직한 뮤지엄들이 재개관했다. 이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예술과 문화와의 거리두기는 좁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뮤지엄들이 그냥 재개관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비엔나뮤지엄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일상으로 침략한 코로나를 사진으로 찍어 뮤지엄에 기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상처는 아물고 병은 극복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후세에 남겨주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각각의 세대마다, 문화마다, 인종마다 다를 수 있는 '나의 코로나'를 사진으로 찍어 편하게 뮤지엄에 보낼 수 있도록, 오히려 평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십 개의 언어링크들이 비엔나뮤지엄 온라인 사이트에 등장했다. 참여도도 높다. 뮤지엄은 사진들이 모이고 정리되는 대로 전시회와 출판을 기획할 예정이다.
 
알베르티나 모던 뮤지움은 코로나시대인 5월 27일 오픈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보통 화려하게 기획되었던 공식적인 개관행사는 일체 없었다.
▲ 알베르티나 모던 뮤지움 알베르티나 모던 뮤지움은 코로나시대인 5월 27일 오픈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보통 화려하게 기획되었던 공식적인 개관행사는 일체 없었다.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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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개관한 알베르티나 모던 뮤지움의 티켓 샵
▲ 티켓 구매도 사회적 거리두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이 개관한 알베르티나 모던 뮤지움의 티켓 샵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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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모험을 한 뮤지엄도 있다. 알베르티나뮤지엄은 알베르티나모던뮤지엄을 새로이 개관했다. 이런 시국에는 오히려 찾아 올 관객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기 쉬우나, 알베르티나 뮤지엄은 어차피 기획했던 모던 뮤지엄의 개관을 코로나시대에 굳건하게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뮤지엄의 테이트모던을 베낀 형식이지만, 개관 콜렉션은 훌륭하다는 평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그리고 오스카 코코슈카 등 휼륭한 화가들을 배출한 오스트리아지만, 전쟁 후의 오스트리아 현대미술은 거장들의 이름과 작품에 가려져 대중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1945년부터 1980년까지 포스트세계대전 혹은 냉전으로 불리던 시대의 현대미술을 개척해온 개성 있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는 것은, 코로나 시대 '마스크의 재발견'만큼 신선하다.

비엔나예술사박물관은 재개관 이후 6월말까지 의미 있는 입장료 프로젝트를 시행중이다. 뮤지엄 관람객들은 입장료를 내고 싶은 만큼만 내고 입장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기부금 형식을 베낀 것이라는 비평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실직 및 임금삭감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모두를 위해 적은 비용으로 고가치의 예술을 즐기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모차르트의 나라답게

그러나 무엇보다 화두에 오른 것은, 모짜르트의 나라로 알려진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콘서트와 공연이 언제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오스트리아 전국의 콘서트와 공연은 사실상 모두 멈춘 상태다. 오스트리아의 가장 큰 팝뮤직 에이전시인 바라큐다(Barracuda)는 "셀린 디온, 건스앤 로지즈 등 굵직굵직한 팝스타들의 공연을 기획했지만, 사실상 연기되지 않은 모든 공연들은 취소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5월 29일부터 콘서트와 연극 등의 실내공연이 100석, 실외공연은 500석을 넘지 않는 한 오디토리움(공연장)의 문을 열게 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 1일부터는 실내공연장에서 최다 250명의 관객, 8월 1일부터는 최소 500명에서 최다 1000명 사이 관객의 입장이 가능하도록 정부는 순차적인 공연 규모의 확대를 기획하고 있다.
 
바렌보임의 지휘와 비엔나 필하모니의 연주로 콘서트가 열렸다. 2000명을 수용하는 콘서트장에는 정부의 제재아래 5%의 객석만 채워졌다. 단 100명. 그러나 지난 일요일 생방송으로 울려진 아름다운 화음이 각 가정에서 시청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치유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 6월 7일 생방송된 코로나 시대의 오스트리아 첫 콘서트 바렌보임의 지휘와 비엔나 필하모니의 연주로 콘서트가 열렸다. 2000명을 수용하는 콘서트장에는 정부의 제재아래 5%의 객석만 채워졌다. 단 100명. 그러나 지난 일요일 생방송으로 울려진 아름다운 화음이 각 가정에서 시청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치유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 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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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발맞추어 비엔나 필하모니는 바렌보임과 함께 코로나 시대의 첫번째 콘서트를 기획했다. 아직까지는 100명 이상 관객을 수용할 수 없는 정부의 제재 아래, 국영방송국인 ORF와 함께 6월에 두 번 (7일과 21일) 콘서트가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콘서트장인 뮤직베어라인(Musikverein)은 보통 2000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곳으로, 100명의 관객은 겨우 5%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방송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에 굶주렸던 모든 사람들을 소파에 앉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다다익선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았던 코로나 확진자 수와는 반비례로 말이다. 6월 7일에 진행한 콘서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나았다"라는 평가와 함께 "음악으로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은 시도였다.

인류역사상 예술과 문화는 가장 곤란한 시대 혹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에 큰 걸음을 내딛었다. 코로나 시대, 정치인들의 강경제제와 정책, 그리고 의사들의 헌신과 노력이 바이러스와 싸워 왔다면, 이제 우리들의 삶과 정신을 예술과 문화가 어루만져 줄 때다.

태그:#코로나, #오스트리아, #비엔나, #예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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