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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재임시절의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의 김영삼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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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의 지지도는 취임 초기 90% 이상을 기록하는 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임기 말엔 시민들이 이제까지 듣지 못한 'IMF 사태'를 맞았다. 그의 지지도는 한 지릿수인 9%로 추락했다. 그때 김영삼의 심정은 마치 높이 날던 갈매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열대지방에서 지내다가 극지방의 한파를 맞은 기분이었을 테다.

'염량세태'(炎涼世態)란 말처럼 세상인심은 변한다. 아마도 그때 김영삼은 괜히 대통령이 됐다는 후회도 막심했을 법하다. 그는 젊은 날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만 야무졌지, 치열하게 그 자리에 걸맞은 통치술 공부가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한 인물의 업적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사후 100년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김영삼 사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이르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그의 업적 가운데 하나회 척결,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북송, 역사 바로 세우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 금융실명제 등은 매우 잘한 점으로 평가하고 싶다.
  
 12. 12. 군사 쿠데타 성공직후 기념사진(1979. 12, 13,)
 12. 12. 군사 쿠데타 성공직후 기념사진(1979. 12, 13,)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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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척결

대통령 취임 열흘 후인 1993년 3월 8일, 김영삼 대통령은 권영해 국방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군의 가장 요직인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바꾸겠다고 통보한 뒤 극비로 인선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비 하나회 출신으로 김동진 연합사부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김도윤 기무사참모장을 기무사령관으로 내정했다. 그런 뒤 즉시 임명 절차를 밟게 한 뒤 취임식을 치르게 했다.

1961년 5.16 이후 32년, 1980년 신군부 등장 이후 10여 년간 유지돼 오던 대한민국 국군의 근간을 뒤흔드는 혁명적 인사였다. 김 대통령과 권 국방장관이 불과 4시간 만에 이룬 전광석화와 같은 인사였다. 이로써 국군 내에 엄존했던, 쿠데타 위협 세력인 하나회를 단칼에 척결해 버렸다.

외신이나 외국 정부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를 표방하지만 "군과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김영삼의 하나회 척결은 측근뿐 아니라 내외신들도 놀랐다. 김영삼은 군 인사를 단행한 후 측근들에게 장난기어린 말을 건넸다고 한다.

"어때 놀랐제?"

그때 그가 그런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근본 요인은 취임 직후 하늘을 찌르는 지지도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광석화 방식의 뚝심 때문이었다. 이때 하나회 청산으로 후일 김대중·노무현 등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을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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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모 비전향 장기수 북송

이인모 비전향 장기수는 6․25전쟁 때 인민군 종군기자로 낙동강전선까지 남하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지리산에 입산해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 1959년 만기 출소 후 1961년에 재수감됐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은 다음, 1976년 만기를 넘겼다. 하지만 사회안전법에 따라 보호감호처분을 받다가 1988년 청주보안감호소에서 출소했다.

정부에서는 이인모 송환에 대해서 찬반양론이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은 그를 북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인모 장기수는 1993년 3월 19일 우리 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한 뒤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됐다. 그의 송환은 남북관계 개선에 디딤돌 역할을 했다. 그 실례로 이듬해 1994년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상회담은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됐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비치된 조선총독부 건물 잔해(총독부 뾰족탑)
 천안 독립기념관에 비치된 조선총독부 건물 잔해(총독부 뾰족탑)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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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 세우기

1993년 4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4․19 묘소를 찾아갔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었다.

"4․19 혁명은 3․1운동 다음가는 역사적인 의거로 재평가, 복원돼야 한다."

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4․19 의거를 4․19 혁명으로 격상시키고, 4․19 묘역을 성역화, 처음보다 3배가량 확장 준공식을 가졌다.

김영삼은 6․10 항쟁과 부마 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고, 조선총독부 철거를 지시했다. 이어서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 봉환 작업으로 박은식, 노백린, 김인전, 신규식, 안태국 선생 등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케 했다.
   
 전두환의 연희동 골목성명 장면
 전두환의 연희동 골목성명 장면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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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세우기의 화룡점정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구속시키는 일이었다.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 단상에서 노태우 300억 비자금이 차명 계좌에 예치돼 있다는 '비자금'을 폭로했다. 처음에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면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반발하던 노태우는 수사가 진행되자 재임 중 약 5000억 원의 이른바 '통치자금'을 조성했으며 퇴임 당시 1700억 원가량이 남았다고 밝혔다. 

그해 11월 16일 노태우는 뇌물수수 협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에 김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12.12 사태 및 5.18 광주항쟁을 전면 재조사하도록 검찰에 지시했다. 그해 12월 2일 전두환에게 반란수괴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그는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검찰은 합천까지 내려가 그를 체포했다. 수사 결과 전두환은 재임 중 기업인들로부터 총 9500억 원을 거둬 7000억 원을 비자금으로 사용하고 퇴임 때 약 1600억 원을 챙겨 개인적으로 관리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1996년 2월 28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10명의 전직 장성들이 부패, 내란 및 군사반란 혐의로 기소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금융실명제 실시 보도(1993. 8. 12.)
 금융실명제 실시 보도(199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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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금융실명 거래의 정착 없이는 이 땅에 진정한 분배의 정의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합리화할 수가 없습니다. 금융 실명제 없이는 건강한 민주주의도, 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할 수가 없습니다. (...)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한 대통령 긴급 재정경제명령은 깨끗한 사회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 개혁입니다. 지하경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검은 돈이 없어질 것입니다. 금융실명제가 정착된다면 정치인 ‧ 기업인 ‧ 공무원 등 모든 국민이 자신들의 부에 대하여 떳떳하고 정당해질 것입니다. (...)"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특별담화 내용이다. 이 '금융실명제 및 비밀 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의 발동에 따라 이날 오후 8시부터 모든 금융권의 예금·적금통장과 주식, 자기앞수표, 양도성예금증서(CD), 채권의 발행, 이자의 지급과 상환은 반드시 실명으로 하게 됐다. 이는 혁명과 같은 특단의 조치로 대다수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다. 

(* 다음 회로 김영삼 대통령 편은 끝나고, 이어서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편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김영삼 회고록> / 강준식 지음 <대한민국 대통령들> / 신준영 정리 <이인모> 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동시대 신문 및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썼습니다.


태그:#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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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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