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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존재다. 또한 모든 것을 이어주는 존재다. ‘이음과 매개, 변화와 극복’은 자기희생 없인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옛 다리부터, 최신 초 장대교량까지 발달되어 온 순서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학기술은 물론 인문적 인식 폭을 넓히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편집자말]
백양사 쌍계루 앞 징검다리 쌍계루 앞 연못에 2단으로 연속되어 있는 징검다리 전경
▲ 백양사 쌍계루 앞 징검다리 쌍계루 앞 연못에 2단으로 연속되어 있는 징검다리 전경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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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에선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진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나, 아마 우리네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징검다리 돌 하나씩 놓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징검다리에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혹은 위안을 받기도 한다. 또한 여러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추상적으로 떠오르는 말들을 축약해 보면, '이음'과 '매개'가 아닐까 싶다. '다리'라는 말 자체가, 물이나 계곡으로 인해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것에서 연유한다. '징검다리를 놓다'라는 말은 어떤 갈등을 풀어내는 상징으로도 쓰인다.

흔히 다른 사람에게 일을 부탁할 때 '다리 좀 놔줘봐'라고 한다. 사람 사이에 관계와 친분을 쌓으려는 노력이다. 이렇듯 이음과 매개는, 그 자체로 자기 희생에 바탕한다. 하지만 이 말과 그 뜻이, 이미 오래전에 희미해진 듯하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리고 바삐 살아간다.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관계의 회복과 지속이다. 관계는 이음과 매개 없인 맺어질 수 없다. 한 생을 살아가는 여정은, 아마 그런 일의 연속일 것이다. 자기희생 없는 이음과 매개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늘도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밟고서, 어느 곳인가를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가 징검다리다. 개울이나 작은 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물이 고인 방죽이나 저수지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나, 그리 흔하지는 않다. 폭이 좁고 비교적 물살이 세지 않은 곳에, 징검다리가 들어앉는다.

징검다리가 놓인 곳에는 물의 흐름에 맞서게 돌무더기를 쌓아 두는 것이 보통이다. 유속을 느리게 하려는 지혜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나 징검다리가 있었다. 주로 넓지 않은 도랑이나 개천이었다. 지금은 추억을 떠올리며,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만나기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
 
백양사 쌍계루 앞 징검다리 오리가 노니는 잔잔한 연못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 백양사 쌍계루 앞 징검다리 오리가 노니는 잔잔한 연못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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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의 핵심인 노둣돌은 그냥 아무 곳에나 놓지 않는다. 노둣돌이 앉을 자리에 모래와 자갈이 많으면 좋은 곳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노둣돌이 앉을 자리를 파내고, 먼저 잔자갈을 고르게 채워 넣는 것이 좋다. 굄돌을 놓기도 한다. 이를 '적심(積心, 통나무를 박거나, 자갈을 층층으로 깔아 다지면서 쌓아 올리는 기초 작업의 일종)이라고 한다. 한옥을 지을 때, 주춧돌 놓을 자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적심의 첫째 목적은 세굴(洗掘) 방지다. 물은 흐르면서 땅을 세굴 시킨다. 잔자갈과 모래는 물의 흐름으로부터 세굴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세굴을 최소화함으로써,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개개 노둣돌들이 튼실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둘째 목적은 침하(沈下) 방지다. 땅이 무르면, 무거운 노둣돌을 오랫동안 지탱할 수 없다. 무른 땅(연약지반)은 느리게 침하가 일어난다. 바닥에 모래나 자갈을 깔고 노둣돌을 앉히면, 땅이 침하되는 속도를 늦추거나 방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징검다리 노둣돌 밑에 모래나 잔자갈을 깔았던 것이다. 이는 모든 다리를 지탱시켜주는 하부구조(기초 작업)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사람들은 시선을 어디에 둘까? 너무 뻔한 물음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으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대부분 아래쪽 다음에 발 디딜 노둣돌을 쳐다본다. 이는 본능이다. 자기 발이 물에 빠지거나, 옆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발 딛고 선 자리에서, 항시 아래를 내려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겸손해져야 한다. 그 모습이 진솔하게 살아가는 참 모습이리라.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의식하든 아니든 모두 그런 모습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단절의 극복이다. 이 단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겨난다. 차이와 다름을 외면할 때, 우월의식이나 지배욕구가 생겨난다. 자기만의 혹은 집단의 성(城)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이런 의식이 쌓이고 단단해지면, 사람들 간에 견고한 단절의 간극이 만들어진다. 단절은 소통의 벽이자, 차단과 격리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극은 점점 넓어지며, 급기야 파국으로 치닫는 전쟁만 남게 된다.

징검다리는 관용(寬容)이다. 매개이고 이음이다. 너그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다. 다리를 건너야만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든, 생각이든, 물건이든 만날 수 있다. 서로가 가진 능력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비로소 단절이 극복되기 시작한다.

노둣돌이 없다 해도, 먼저 마음을 열고 가슴을 잇대면 '끊김'은 사라진다. 이런 모습이 진정으로 자기 삶을 사랑하고, '함께'라는 가치를 지켜내는 지혜가 아닐까? 지금 당장이라도,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내려와 누군가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것은 어떠한가?
 
추포 노둣길 전남 신안군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는 바다 속 징검다리인 추포노두.
▲ 추포 노둣길 전남 신안군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는 바다 속 징검다리인 추포노두.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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