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충격의 12연패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화는 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서 2-13으로 대패했다.

5월 23일 NC전 패배를 시작으로 더 이상 승리를 추가하지 못한 한화는 SK 와이번스(10연패)가 기록한 올 시즌 팀 최다연패 기록을 경신한 데 이어, 어느덧 지난 2012-2013년 두 시즌에 걸쳐 기록한 구단 사상 최다 연패(14연패) 기록에도 2경기 차로 접근했다. 7승 21패로 최하위를 기록 중인 한화는 같은 날 승리를 거둔 9위 SK(9승 18패)와의 승차도 2.5게임으로 벌어지며 꼴찌 탈출이 더욱 멀어졌다.

보이지 않는 희망

한화의 최근 경기력을 보면 연패탈출에 대한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필 팀이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막강전력의 선두팀 NC를 만난 것도 한화에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NC는 선발전원안타를 비롯하여 17안타 4홈런을 폭격하며 한화의 허약한 마운드를 자비없이 두들겼다. 8회까지 5명의 투수를 올린 한화는 0-11로 승부가 기운 마지막 9회에는 투수력 소모를 줄이기 위하여 야수인 노시환을 마운드에 올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사실상 백기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팀타율-팀득점 최하위의 빈공에 그치고 있는 한화 타선은 이날도 산발 3안타 2득점에 그쳤다. 그나마 8회까지 무득점으로 끌려가다가 이미 승부가 결정난 9회 뒤늦게 터진 최진행의 투런포로 영패만 간신히 모면했을 뿐이었다. 한화는 최근 4경기 연속 3점 이하의 득점에 그쳤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한용덕 감독이 직접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는가 하면, 경기중에는 '레전드' 박찬호의 응원 영상까지 나오며 연패탈출을 위하여 노력을 다했지만 침체된 분위기는 좀처럼 살아날 줄 몰랐다.

팀이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을 거듭하면서 사령탑 한용덕 감독의 책임론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한용덕 감독은 지난 2017년 11월 한화의 11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한 감독은 한화에서만 통산 472경기 출장, 120승 118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3.52, 개인통산 1,341탈삼진 등 화려한 기록을 남긴 '이글스맨' 출신이다. 역시 한화의 레전드인 장종훈과 함께 '연습생 인생역전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시즌 초반 불펜 불안으로 고전하고 있는 한화 한용덕 감독

시즌 초반 불펜 불안으로 고전하고 있는 한화 한용덕 감독 ⓒ 한화 이글스

 
한 감독이 처음 한화 사령탑으로 컴백할때만 해도 팬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본인이 한화의 레전드 출신이기도 한데다 과거 투수코치와 감독대행(2012년), 프런트(단장 보좌역)까지 수행하는 동안 평가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취임 초기 팀의 방향성으로 '육성'을 표방하면서 '베테랑과 신진급의 격차를 줄여서 임기 내 우승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한용덕호의 지난 3년은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었다. 한화는 한감독 부임 첫해인 2018년 약체라는 예상을 깨고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하며 무려 11년만에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하는 기쁨을 누렸다. 한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2019시즌에는 9위로 추락한데 이어 올해는 최하위에 한용덕호 출범 이후 최다 연패 기록까지 경신하며 다시 암흑기로 되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실적인 문제를 살펴봐야...

한화의 현재 고질적인 약점은 '얇은 선수층'이다. 한용덕 감독은 부임 이후 줄곧 육성과 리빌딩을 표방했지만, 3년차가 된 올 시즌에도 정은원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키워낸 선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 이용규의 항명사태, 정근우의 무리한 외야수 전환과 이적, 김태균-송광민-이성열 등 부진과 노쇠화에 시달리는 베테랑들에 대한 높은 의존도, 창의성없는 용병술과 불펜 혹사 논란 등 한 감독의 리더십에 의문부호를 가지게 만드는 악재들도 연달아 쏟아졌다. 물론 한화의 팀사정상 한 감독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지만, 팀이 구단 역사상 최다연패의 위기에 몰린 지금, 리더로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한 감독은 올해가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현재로서는 재계약은 불가능한 분위기이고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화의 무기력한 연패가 장기화되면서 일각에서는 한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난 팬들의 목소리도 빗발치고 있다. 한화에서만 선수-코치-프런트-감독까지 30년 넘게 헌신해온 이글스 레전드 출신의 마무리라기에는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화는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이후로 KBO리그를 대표하는 '감독 분쇄기'라는 웃지 못할 오명을 안게 됐다. 김인식-한대화-김응용-김성근-한용덕에 이르기까지 한화 사령탑을 맡았다가 지도자 커리어가 망가지지 않은 인물은 한 명도 찾기 힘들다. 하나같이 한화 사령탑을 맡기 이전과 이후로 경력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라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중 한화에서 재계약에 성공하거나 무사히 물러난 인물 역시 전무하다.

그나마 김인식과 김응용은 마지막 시즌 최하위에 그치고도 임기를 채운 반면, 한대화와 김성근은 마지막 3년차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사실상 경질당했다. 만일 한용덕 감독마저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면 '한화 감독 3년차 징크스'가 되풀이되는 셈이다.

김응용-김성근-김인식은 KBO리그 역대 감독 최다승 1-3위에 빛나는 명장들이었고, 한대화 감독은 지도자 경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현역시절 해태와 LG에서 해결사로 명성을 떨친 스타 출신 감독이었다. 하지만 한화에서는 하나같이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한화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더 이상 프로야구 감독을 맡지 못했다.

한화 구단은 지난 10여 년간 명망 높은 베테랑 감독(김인식, 김성근, 김응용)을 외부에서 데려오거나, 연고 지역 출신(한대화), 구단 레전드 출신(한용덕) 등 다양한 배경의 지도자들을 골고루 영입해봤지만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이쯤 되면 단지 감독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한화의 팀문화와 시스템 자체에 더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오죽하면 이제 남은 수단은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감독들의 무덤'으로 전락해버린 한화와, 벼랑 끝에 놓인 한용덕 감독의 처지가 한없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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