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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팔십 평생 자식들 밥 지어 먹이는 일밖에 몰랐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 마음대로 사는 것을 애당초 몰랐다. 어느날 엄마가 "그때 내가 어땠는 줄 아니?" 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저렸던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기자말]
6월 중하순에 제주도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다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 일단 예약은 했지만 사실 여전히 고민된다.

어느 날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제주도에 가자고 했다. 엄마가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대했다.  

"코로나가 기승인데 무슨 제주도로 여행을 가."
"그건 그래… 그렇지만 엄마가 가고 싶어하잖아."


동생과 나는 그렇게 며칠 동안 갑론을박을 했다. 

나는 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엄마가 가고 싶어 한다'라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최종적으로 엄마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정말 제주도에 가고 싶으냐고. 

"죽기 전에 한 번 더 가면 좋지." 
 

더 이상의 말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일단 항공권을 예약했다. 엄마의 '죽기 전에…'라는 말이 제일 무섭다. 그러니까 이 비행기 표는 사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후회하기 싫어서. 

왜 엄마는 매 순간 '마지막'을 생각할까
 
2년전 엄마와의 제주여행    우리는 천천히 걷고 많이 먹고 많이 웃었다.
▲ 2년전 엄마와의 제주여행   우리는 천천히 걷고 많이 먹고 많이 웃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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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마지막으로 제주 여행을 다녀온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딱 2년 전 이맘때였다. 막냇동생이 내게 말했다.

"언니, 우리 6월에 제주 가기로 했어. 일주일 동안."
"뭐라고? 나한텐 물어보지도 않고? 나 무조건 가야 하는 거야?"
"응, 무조건. 엄마, 큰언니,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이유는 '엄마가 제주도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세 자매… 이런 멤버 구성은 처음이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 달 반을 기다렸다. 

드디어 여행 당일. 손녀가 사준 예쁜 모자를 손에 들고 있는 엄마는 한껏 들떠 계셨다.

그해 팔순이 되신 엄마는 "내가 살아서 또 제주를 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라고 큰언니에게 말했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슬프고 가슴이 아렸던지 하마터면 눈물이 터질 뻔했다. 왜 엄마는 매 순간 '이게 생의 마지막이야'라고 하시는 걸까.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내실 거라고 짐작하면 늘 마음이 저린다. 

그해 우리는 느린 제주여행을 했다. 천천히 걷고, 많이 먹고, 많이 웃고. 일정과 식사 등 대부분을 엄마에게 맞췄다. 함덕 해변에 넷이 쪼르륵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본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물론 중간중간 짜증 나는 일들이 왜 없었겠는가. 

지난 제주 여행에서는 에피소드가 참 많았다.

큰맘 먹고 장만한 라이카 카메라를 삼양 검은모래 해변에 처박고 '멘붕'에 빠졌던 일, 큰언니가 대정의 한 식당에 휴대전화를 두고 와서 부랴부랴 다시 찾으러 가야만 했던 일... 공항에서는 배터리와 맥가이버 칼 때문에 가방 검사를 받고 다시 짐을 꾸려야만 했다. 한두 번 가는 것도 아닌데 공항에서는 매번 크고 작은 실수가 생긴다. 호텔을 두 번이나 옮겼고, 엄만 배탈이 나서 고생을 했다. 차마 할 수 없는 얘기도 수두룩하다.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부재자 투표도 해 보았다. 

네 모녀가 저녁에 호텔 방에서 고스톱도 쳤다. 우도해변의 한 카페에서 꾸벅꾸벅 졸던 한가로웠던 시간도 생각난다. 곽지해변의 해 저무는 풍경은 또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럼에도 여전히 고민하는 이유
 
엄마와의 제주여행    엄마와 우리 세자매는 해변에 쪼로록 앉아서 해지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 엄마와의 제주여행   엄마와 우리 세자매는 해변에 쪼로록 앉아서 해지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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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이런 말도 주고받았다. 

"엄마, 이번 제주 여행 너무 행복했어. 내년에 우리 또 오자."
"그래."


김영갑갤러리에서는 엄마에게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엄마랑 함께 한 이번 제주 여행 너무 행복했어. 사랑해요.'

그 엽서는 쓸 때도 쑥스러웠지만, 집으로 배송된 엽서를 받고 읽었을 때는 더 쑥스러웠다. 그렇지만 엄마의 싫지 않은 기색을 보면서 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엽서를 엄마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계실지는 모르겠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표현을 많이 하라고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어쩌다 표현을 해도 그 쑥스러움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예매한 비행기 표도 엄마에게 보내는 사랑 표현이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걱정이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또다시 늘고 있는데 이대로 가는 게 맞을까. 죽기 전에 또 가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을 이뤄드리고 싶으면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망설여진다.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 지금이라도 항공권을 취소해야 할까. 엄마와의 약속과 생활 속 거리두기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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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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