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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의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편집자말]
5월 27일 고2와 중3, 초 1~2, 유치원생이 드디어 학교에 갔다.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3개월이나 늦어진 개학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지난 20일에 먼저 등교했고, 다음 주(6월 3일)부터 다른 학년들도 차례로 개학을 맞는다. 코로나19 유행은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모든 학생이 동시에 학교에 가는 것보다 고등학교 3학년들이 먼저 등교하는 것이 일단 자연스럽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하필 고등학교 3학년일까? 교실에 상대적으로 짧게 머물 수 있는 고등학교 1학년이나 중학생들이 먼저 등교하는 것이, 방역 관점에서는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고3 학생이 고2 학생보다 코로나19 생활수칙을 더 잘 지킬 것이라거나, 걸려도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당연히 없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고3'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어 '뉴노멀' 시대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과민성 장 증후군과 '고3'
  
얼마 전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진료를 받으러 왔다. 몇 주 전부터 배가 더부룩하고 가스가 찬다고 호소했다. 배도 살살 아파서, 하루에 몇 번씩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복부 청진과 촉진을 해보니, 장음도 항진되었고 가벼운 압통도 있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도 흔한 과민성 장 증후군이 의심되었다. 불규칙한 식사, 자극적인 음식, 정신적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이 원인인 전형적인 생활습관병이고 현대인의 병이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온라인 수업만 할 뿐 개학은 아직이었다. 의아해서 학생에게 물었다.

"아직 개학 안 하지 않았어요?"
"오후부터 저녁까지 학원에 다녀요."


그러고 보니 그는 '고3'이었다. 코로나19 사태에 정부는 학원 운영 중단을 권고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 강남 지역 학원 대부분은 정상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심지어 학원 중단에 대해, 학부모들의 의견이 엇갈린다고도 했다. 식사는 규칙적으로 잘 챙겨 먹는지 물었다.

"저녁은 거의 컵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것으로 때워요."
"아니, 아무리 학원이라도 저녁 식사 시간은 있을 것 아닙니까?"
"학원에 따로 식사 시간은 없어요. 쉬는 시간에 알아서 먹어야 해요."
 

필자는 과민성 장 증후군이 약으로 낫기 어려운 병이며 생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학원에 도시락을 싸가라고 권유했다. 학생은 수긍하면서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거북목 청소년들

우리나라 학생들의 긴 학습 시간이야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방과 후 학습활동' 참여 시간은 그리스, 터키에 이어 세 번째로 길었다. 그런데 방과 후 학습활동 중 '학부모 부담, 영리회사에 의해 조직된 방과 후 수업' 참여 시간은 OECD 평균의 6배에 달하며 압도적인 1위였다. 과연 '사교육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학부모 부담, 영리회사에 의해 조직된 방과후 수업 참여도
 학부모 부담, 영리회사에 의해 조직된 방과후 수업 참여도
ⓒ 문성빈(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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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통과 함께 학생들이 자주 호소하는 증상이 있다. 머리, 특히 뒤통수가 아프고 목과 어깨가 결린다는 청소년들을 흔히 만난다. 목뼈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본래의 'C자 곡선'이 사라진 '거북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대학병원이 지역 청소년들을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80%가 거북목이었다. 공부하느라 오래 앉아있으면 거북목이 오기 쉽다. 그런데 거북목 진단을 받자 엄마와 학생의 실랑이가 이어진다.
  
"얘는 학생이 밤새 게임을 하고 핸드폰만 만져요. 선생님이 좀 말려 주세요."
"학생이 뭐!"


그럼 아이는 발끈해서 엄마를 노려보며 소리친다. 사실 진료받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들 중 일부는 소위 스마트폰 중독일 지도 모른다. 이 역시 목뼈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안 한다면, 이미 중독이 아니다. 중독은 결핍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복부비만인 중년 남성 환자의 체념 섞인 한탄이 떠올랐다.

"술 담배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진료확인서 받으러 오는 학생들
  
청소년 환자들은 보통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게 동네의원을 찾는다. 그런데 오전 11시나 오후 2, 3시처럼 어정쩡한 시간에 필자를 만나러 오는 청소년도 꽤 있다. 한 학생 환자가 감기 기운이 있단다. 그는 별로 아파 보이지 않았다. 진찰해 보니 열도 없었고 목도 붓지 않았다. 약을 간단히 처방해 줄까 물었더니 필요 없다고 답한다. '그럼 이 학생은 병원에 왜 온 거지' 궁금했다. 학생이 요구하는 것은 진료확인서뿐이었다. 그것을 학교에 내야 결석 처리가 되지 않는다. 환자가 진료실을 나가자 간호사가 필자에게 한마디 한다.

"쟤는 상습범이에요."

결석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 그가 '학교밖 청소년'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한 달에 서너 번은 진료확인서를 떼러 오는 것을 보니 학교에 다니기 참 싫은 모양이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학교밖 청소년은 무려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서울 학교 밖 청소년 실태와 지원현황 분석'(2019년)에 따르면 학업을 중단한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이 총 82%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들은 '고3'이 되기 싫었던 것일까. 학업 중단 이유는 '학교에 다니는 게 의미가 없어서'가 46%로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주관적 행복순위가 가장 낮다. 
 
 OECD 주요국 어린이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순위
 OECD 주요국 어린이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순위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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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4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희망직업이 없다'고 응답한 중학생은 그 비율이 31.6%, 고교생은 29.5%에 이르렀다.

다른 꿈을 꿀 권리
  
대학 입시 위주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박하면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이다. 코로나19 유행 중에도 고3 수험생들은 어쨌든 경주를 시작했다.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 입학시험에 목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문 '스카이' 대학 입학은 현실적으로 소수 학생의 목표일 뿐이다.

'불안정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서울에 있거나 소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상상해 보자.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는다. 그래서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누구도 낙오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비로소 그때부터, 미래를 꿈꿀 자유는 청소년 모두의 권리가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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