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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이듦이란 무엇일까요?"
"글쎄요, 나이듦이란 숙성됨 아닐까요. 다시 말하면 익어가는 것이겠죠. 늙어가는 게 아니고 익어가는 것...."


일반적으로 나이듦에 대한 단상은 조금은 서글프고, 지나온 시간이 많이 아쉽고 그래서 속상하다. 후회스럽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가끔 소외감이라는 녀석도 붙어 다닌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맞이하는 나이듦,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 삶이 그러하다.

하지만 여기 노년의 삶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가는 것' 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계시다. 나이듦이 즐거울 수 있고,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여정을 가고 계신 최한구 시인이 바로 그렇다. 글을 보면 마음이 보이고 향기가 느껴진다. 글을 보면 인생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젊은 시니어' 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젊은 시니어, 최한구 시인의 삶을 들여다 보자.
 
소멸의 미

최한구

계족산 봉황정 오르는 산길 따라
발자국 씻어 내리는 실개울물
산사 아래 작은 연못에 들어
물안개 피워 덮고 자정을 한다

오색 풍경소리 물길 차오르자
떠난다 하면서 다시 또 되돌아와
텅빈 물밑을 지키던 청자라 한 마리
긴 침묵을 차고 올라
세상에 태어나 가장 낮은 몸짓으로
동그라미 풀어간다

혼돈의 파도는 시간에 잦아들고
수면을 차오르는 햇살이 눈부시다
소멸은 반드시,
생성의 길로 되돌아 갈 때
가장 완벽하게 아름답다
가장 깨끗하게 아름답다
 
'소멸의 미'로 등단하신 최한구 시인은 칠십이 넘은 시니어다. 소멸의 미란, 인생을 살아가다 생을 다할 때는 깨끗하게 흔적없이 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시인의 마음을 담아낸 시이다.

실제로 시인을 마주하면 '젊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사유를 풀어내는 방식과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짝이는 눈과 건강한 미소, 대화속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젊음' 그 자체이다.

 
▲ 2019, 뿌리꽃, 최한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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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에 발간한 시인의 첫 시집 '뿌리꽃'을 읽으면서 글이 젊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자연스럽게 대화 중에 시인이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인은 말한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텃밭도 가꾸고 생동감있는 자연의 힘을 보면서 젊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최한구 시인은 고려 초기 교육학자이자 정치, 문장가로 유명한 해동공자 최충의 후손이다(해주 최씨 전한공파 30세). 첫 시집의 타이틀을 '뿌리꽃'으로 이름한 것은 집안의 흐름을 따라 뿌리의 돋아난 꽃같은 인물들을 소개하며 집안을 위해서 책을 낸 것이라 했다. 그중에는 의암 논개의 남편인 최경희 장군도 있고, 그 외에 유명한 인물들도 있었다.
 
작업실에서, 최한구 시인
 작업실에서, 최한구 시인
ⓒ 유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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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사색을 한 다음 글을 쓴다. 늘 떠오르는 영감을 머릿속에 담아 놓고 아침이 되면 조금씩 토해낸다. 2020년 9월이 되면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된다. 약 75편의 시는 이제 탈고만 남았다.

시를 감상하다 보면 끊임없는 자기 질문의 흔적이 보인다. 시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또 다른 경험들이 녹아있다. 시인은 주로 책을 통해 제3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머릿속에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 어느 때가 되면 그것을 꺼내 쓴다. 자연, 사랑, 인생에 대한 시인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고 리듬감있는 언어로 압축한다. 삶의 짝을 맞추 듯 그렇게 시인의 서정(抒情)도 익어간다.

젊은 날에는 공직, 대기업, 개인사업 및 외국 활동 등 다양한 삶을 살다 은퇴 후부터 문화예술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여 말 그대로 활기차고 유쾌한 노년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각 사람의 모양과 정도는 다르겠으나, 최한구 시인의 삶은 이 시대 건강한 노년의 롤모델이 되어도 좋겠다.

하루 중 짧은 어떤 순간들, 작은 텃밭에서 초록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갖가지 채소들, 생활속에 작은 심상과 울림들을 가슴과 머리에 담아두고 영감을 얻고 풀어낸다. 이 얼마나 아름답게 익어가는 인생인가. 문득 시인의 소소한 일상은 어떨까 궁금했다.

"일상은 비슷합니다. 다만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피지요. 관심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시작한 관심으로 문학에 입문했고 다양한 악기(색소폰, 대금, 하모니카..)를 연주하게 되었다. 관심이 노력으로 발전했고,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겸손한 말과 함께 건강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때때로 대전역 앞에 차 없는 거리, 중앙시장 등 공연도 한다. 단순 취미로 시작했지만 삶의 재미가 더해져 봉사활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최한구 시인은 원래 서예가, 문인화 작가이다. 아마추어라고 자신을 낮추었지만 한국서예협회 대전 지부장을 맡고 있고 3개 단체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본인의 작품 시서화 앞에서 설명중인 최한구 시인
 본인의 작품 시서화 앞에서 설명중인 최한구 시인
ⓒ 유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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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구 시인의 첫 시집 '뿌리꽃'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4부는 시, 5부~6부는 시조로 총 86편의 글이 담겨있다. 시인이 가장 애착이 가는 시는 '소멸의 미' , 시조는 '이팝꽃'이다. 대전은 요즘 이팝나무 꽃이 한창이다. 작은 꽃잎들이 오밀조밀 모여 수북할 뿐 아니라 은은한 향기는 지나가는 이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팝꽃 전설을 짧게 들려주었다. 꽃이 수북수북 올라온 게 밥그릇에 가득 담은 밥과 같다고. 이팝은 이밥의 방언으로 입쌀로 지은 밥이란 뜻이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이팝꽃을 보면 옛날 밥처럼 보이고 그 당시 못 먹고 굶주린 보릿고개가 연상된다고 한다.

"선생님의 시나 시조가 담고 있는 정서는 무엇일까요, 선생님께서 노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음, 영혼이랄까요...영혼의 만족, 영혼의 기쁨의 제공 그런 거예요. 영혼이 익어가는 것...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영혼이 육체와 분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영혼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고요. 아무래도 자연적인 현상이겠죠. 누구나...?"


최한구 시인의 시는 시어 하나에도 울림이 있었다. 고민한 흔적이다. 그것을 늘 담고 있었기에 터져 나온 흔적이다. 궁극적으로 시인이 담고 싶은 것은 인간애다. 인간의 관계, 속성 등 이런 걸 표현해 보고 싶어 두 번째 시집에는 그러한 표현이 많다고 했다.

'꽃 하나의 미' 라는 시에 마지막 구절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꽃 하나로 피어 있으니

시인은 말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슴에 꽃이 된다는 것은 지독한 행복이지요."

가슴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렸던 순간이다. 나는 지독한 행복을 맛보고 살고 있는가?

제3의 인생을 문학과 예술을 하면서 살면 집안이 편해진다며 눈가에 웃음을 가득 그려 낸다. 시인은 참으로 건강한 미소를 지녔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과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물었다. 시인은 지금 하는 일에 진력을 다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그 후, 제3의 인생이 올 때, 하고 싶었던 것들을 그때 마음껏 펼치라고 했다. 아마도 시인은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나이듦이 익어가는 것이 듯 제3의 인생은 익어가는 것일 테니까. 영혼이 익어가는 시절을 우리도 곧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도심에서 소박하게 밭일도 하고, 일상에서 시상을 얻는다고 하니 더 이상 질문할 게 없었다. 노년의 뿌리꽃 향기가 진하게 익어가는 듯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인생은 무엇일까?'

이렇게 정의를 내려봤다.

'인생은 꽃으로 왔다가 향기로 지는 것이다.'

나는 어떤 꽃일까...나는 어떤 향기를 남길까...
인생이 익어가야 향기를 남길 것 같다.
당신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어떤 꽃인가요?"

태그:#뿌리꽃, #최한구, #시인, #서예가, #문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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