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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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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참 복도 많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대통령을 다섯 분 겪었는데, 이렇게 복 많은 대통령이 드물다."

21일 퇴임 기자간담회에 나선 문희상 국회의장(6선, 경기 의정부갑)의 말이다. 퇴임을 8일 앞둔 문 의장은 이날 국회 사랑재에서 간담회를 열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던 중 이같이 말하며 문 대통령을 일컬어 "럭키 가이(lucky guy), 운 좋은 장수"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그 이유로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잘 맞췄기 때문"이라며 "그 시대정신을 놓치고서는, 아무리 능력 있고 돈이 많아도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임기) 4년 차에 지지율 65% 넘는 대통령은 한국에선 한 번도 없었다"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그는 향후 남은 임기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으로 "지금 이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건 코로나19 국난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날 질문에 답하며 "모든 지도자가 '적폐청산'으로 시작하지만, 시종일관 그 얘기만 하면 '정치보복'이라 말하는 세력이 늘어난다. 그러면 개혁 동력이 상실되니 주의해야 한다"며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파면돼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언급했다. "21대 국회는 과감하게 '통합'의 방향으로 확 전환해야 한다. 그중에는 물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란 얘기다.

이후  '전 대통령 발언은 사면을 뜻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문 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다만 "그걸(사면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판단은 역시 대통령이 해야 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전제를 덧붙였다. 문 의장은 차기 국회, '압도적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입법과제'를 묻자 답변으로 '통합'을 강조했다.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 오히려 이럴 때가 통합의 적기다. 차기 의장단이 6월엔 '통합'으로 국회를 잡아나가야 한다. 상임위원장들을 초청해 만나고 여야정 협의체 등 창구를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코로나 극복·경제 회생에 노력해야 한다."

"사법개혁·선거 개혁이 통과되던 날, 가장 기쁘면서 서러웠다"

문 의장은 이날 의장 임기 동안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로 모두 '사법개혁·선거 개혁이 통과되던 날'을 꼽았다. 그는 "왜냐하면 세 분 대통령(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한결같은 꿈이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였기 때문"이라며 "세 대통령의 꿈과 염원이 너무 컸다. 그래서 '국회에서의 마무리 작업은 내가 독박을 쓸 수밖에 없겠구나, 이게 숙명이구나' (했다)"라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해1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찬성 156, 반대 10, 기권 1표로 통과시키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피켓을 던지며 항의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해1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찬성 156, 반대 10, 기권 1표로 통과시키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피켓을 던지며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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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를 "기쁘면서 서러웠다"고 회상했다. 문 의장은 "가능한 날을 미루면서 마지막까지 (여야에) 합의를 해오라고 했다"며 "결국 누가 결론을 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책임지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방망이(의사봉)를 두들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협치'를 강조했으나 끝내 강행처리로 갈 수밖에 없었다"며 "나는 그날 굉장히 서러웠다. 임기 중 가장 슬픈 날이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 공조로 패스트트랙을 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및 공수처 설치안은 지난해 12월27일과 30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거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으로 반발했다. 법안의 본회의 상정 때 한국당은 의장을 향해 "좌파의 충견 노릇을 충실히 했다(심재철 원내대표)"고 비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준연동형 선거법 본회의 통과... 한국당 의장석 점거하며 반발 http://omn.kr/1m54e
'찬성 160' 공수처법 본회의 통과... 선거법보다 찬성 많아 http://omn.kr/1m650

"국회의장 아들 봐준다? 그 말이 쓰라렸다"... '특수활동비 감액'은 성과  

당시 한국당은 '아빠찬스 아웃'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문 의장을 공격했다. 문 의장이 아들 문석균씨를 출마시키려 패스트트랙 강행처리에 나선다는 공세였다. 문 의장은 이를 회상하며 "아들 출세를 위해 지위를 이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루 말 할 수 없이 쓰라린 심정을 느꼈고, 가장 아쉬웠던 장면이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내가 그래도 천하의 문희상인데, 아들 출세시키려고 지위를 이용한다? 그럼 내 인생은 뭐가 되나? 아들도 아비 덕이나 보는 사람이 되는 건데, 그렇다면 그 당은 공당인가? 동지라는 사람들도 (거기에) 함몰되더라. 아주 쓰라렸다. 과거 제가 공천에서 컷오프됐다가 살아났을 때도 모멸감을 느끼거나 쓰라리진 않았는데, 이 일 겪을 때 얼마나 쓰라렸는지 그게 한참을 갔다."

문 의장은 자신의 성과로 초월회(정당대표 간담회), 이금회(중진의원 간담회) 개최와 '국민동의청원제도 도입', 열린국회정보포털 구축 등을 꼽았다. 이날 문 의장이 강조한 또 다른 성과는 '자발적인 특수활동비 대폭 축소(2019년 대비 84.4% 감액, 9억 8천만원)'였다. 그는 "(국회의) 투명성 확보는 굉장히 중요하다. 대한민국 정계에 '눈먼 돈'이 어디 있느냐"라며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함께 동석했던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웃으며 "문 의장님이 제일 '개털 국회의장'이었다. 취임하자마자 '특활비 파동'이 터졌다. 그때 의장님이 다 없애자는 걸 제가 막아서 이전의 8분의 1로 비용이 줄어들었다. 돈을 안 쓰니 협치가 잘 될 리가 있겠나"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문 의장 또한 웃으며 "본인(유 사무총장)이 제일 많이 협조했으면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라고 맞받았다.

"정치 본령, 억울한 사람 눈물 닦아주는 것"
 
문희상 국회의장 퇴임 기자간담회가 21일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열렸다.
 문희상 국회의장 퇴임 기자간담회가 21일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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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장은 오는 29일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임기를 마친다.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그는 "평생의 업이자 신념이었던 정치를 떠난다니 심경이 복잡했다. 그러나 후회 없는 삶이었고 행복한 길이었다"라며 "모든 걸 정리하고 출발점에 선 지금, 몹시 떨린다. 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마음으로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문 의장이 이날 차기 국회에 남긴 말이다.

"정치의 본질은 배고픈 국민을 배부르게, 시린 등을 따뜻하게 하고 억울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정치엔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 정권을 잡기 위한 투쟁적 측면도 존재하지만, 사회적 투쟁·분쟁을 조정·조율하는 통합적 측면도 분명히 있다. 둘 중 고르라면 통합을 골라야 한다. 싸우다가 본령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시작하는 정치인들에게 그걸 꼭 말하고 싶다."

문희상 의장은 경기 의정부 출생으로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를 시작했으며, 1987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초대회장을 맡아 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노무현 정부에서 첫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태그:#문희상, #퇴임간담회, #기자간담회, #박근혜 ,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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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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