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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 멕시코 콜리마주립대 교수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 리포트'를 전북대안언론 참소리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동시 연재합니다. ☞ 참소리 페이지에서 보기 http://cham-sori.net/opinion/45139[편집자말]
  
 식당 내부 모습. 여섯 명이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식당 내부 모습. 여섯 명이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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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레시오 수도회 설립자 신부님의 사진이 식당에 걸려있다
 살레시오 수도회 설립자 신부님의 사진이 식당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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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아침 식당'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미국 국경으로부터 남쪽으로 도보 1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멕시코 국경도시 띠후아나에 있는 이주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다.

20여 년 전 첫 무료급식을 시작한 분이 우연히 스페인어로 '구세주'를 뜻하는 이름인  살바도르(Salvador) 신부님이셨기에 붙은 이름이다.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이셨던 그 분의 이름 살바도르에 대한 스페인어식 애칭 'Chava(챠바)'를 따, 공식 명칭은 '살레시아노 챠바(구세주) 신부님 아침 식당(Desayunador Salesiano  Padre Chava)'이다.

구세주 아침 식당으로 가라

1999년 1월 31일 첫 식사에 참여한 자는 열일곱 명에 불과하였으나, 곧 3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이어 700여 명으로 불어나는가 싶더니, 이미 오래 전부터 매일 1500여 명이 그 곳에서 따뜻한 한 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중앙아메리카로부터 올라오는 이주자들뿐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추방되는 이들도 띠후아나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아 드는 곳이다. 중앙아메리카로부터 올라오는 이주자들이 멕시코 남쪽 국경을 넘은 후 다시 북쪽 국경에 닿기까지 가장 먼 거리의 국경 도시인 이곳 띠후아나까지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침 식당'이라는 이름을 단 무료급식소에 불과하지만, 이곳이 있기에 매일 아침 많은 이들이 낯선 도시에서 이주자로서 혹은 추방자로서 다시 하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일단 이곳에 이주자들이 닿게 되면, 당장 머물 수 있는 숙소뿐 아니라 미국 측에 난민 심사를 신청할 수 있는 제반 절차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알베르게(Albergue)'라 불리는 숙소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최장 보름으로 한정되지만, 이후 새로운 거처로 옮길 때에도 그곳에 형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매일 아침 그 곳에서 따뜻한 식사를 제공받는다. 뿐만 아니라 의료 서비스나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당장 띠후아나라는 낯선 도시에서 직업 훈련이나 소개 등과 같은 혜택도 받게 된다. 어디에서 이주의 여정을 시작하더라도, 그들 각자의 맘 속에는 '구세주 아침 식당'이 그들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을 비추는 최북단 등대일 것이다. 그 이상 국경선 너머의 영역은 오직 신의 가호에 맡겨둔 채 말이다.

아침 일곱 시에 문을 여는 '구세주 아침 식당' 앞에는 그보다 훨씬 이른 어두운 새벽부터 긴 줄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이 국경 가까운 어디쯤에서 노숙을 하고 온 사람들이지만, 그들 중에는 당일 새벽 철통 같은 국경 한 켠에 달린 작은 철문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추방된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지는 서너 달을 제외하고는, 새벽이라면 언제나 차가운 바람이 몸 속 깊이 파고들지만, 이른 새벽부터 이곳에 줄을 서는 일이야말로 그들이 미국 국경의 바로 아래 낯선 도시 띠후아나에서 다시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혹여 비라도 내리는 날이라면 잔뜩 몸을 웅숭그린 채 그대로 차가운 비를 맞아가며 줄을 선다.

어떻게든 길 위에 선 채 아침 일곱 시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잠시 그들의 현실을 잊고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혹은 모든 것을 걸고도 도무지 미국으로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해 장벽 아래 붙어 살아가는 이들도 이곳에 들어오는 잠깐의 시간만큼은 실로 구세주를 만난 것과 같은 안도를 마음에 얻게 된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
 
 식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각자의 손에 물비누가 제공된다. 이후 바로 옆 세면대로 안내된다.
 식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각자의 손에 물비누가 제공된다. 이후 바로 옆 세면대로 안내된다.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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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입구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이들에게 자원봉사자가 마른 수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식당 입구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이들에게 자원봉사자가 마른 수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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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이미 새로운 세상이다. 어디서든 차별과 혐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 매일 아침 이곳에서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신의 축복이 당신에게 임하기를 빕니다(Dios le bendiga!)"이다. 그 말과 동시에 그들 손 위에 소량의 물 비누가 제공되고 곧 대형 세면대로 안내된다. 그 곳에서 세수를 마치면 바로 옆에 마른 수건을 들고 선 누군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지난 하루 길 위의 삶을 살면서 묻힌 때를 씻고 나면, 바로 여섯 명씩 식탁으로 안내된다. 여느 유수 고급 식당에서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식탁으로 이동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손을 씻고 나면 각 테이블을 맡은 자원봉사자에 의해 식탁으로 안내된다
 손을 씻고 나면 각 테이블을 맡은 자원봉사자에 의해 식탁으로 안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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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내부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 중앙 통로에 서 있는 사람이 신부님이시다. 주황색 앞치마를 한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식당 내부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 중앙 통로에 서 있는 사람이 신부님이시다. 주황색 앞치마를 한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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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내된 식탁에 닿으면, 신부님이 다가오고 그들을 위한 축복기도가 시작된다. 기도의 마침은 곧 식사의 시작이다.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과 빵 그리고 또르띠쟈가 전부인 식사지만, 설탕을 충분히 섞어 만든 분말가루 주스와 뜨거운 커피가 제공된다.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각각 개인의 자리에는 빈 주스컵과 커피잔만 있을 뿐, 주스와 커피는 식탁 중앙의 커다란 용기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여섯 명이 정원인 식탁에 항상 8인분 혹은 9인분 정도의 주스와 커피가 제공된다. 배급 음식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그들이 적어도 주스와 커피만큼은 넉넉하게 누리라는 배려와 함께, 그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타인과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경험을 하도록 하기 위한 깊은 마음이라고 한다.
 
 한끼 따뜻한 식사
 한끼 따뜻한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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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1회 1인분만 제공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음식을 더 먹고자 한다면 밖으로 나가 줄의 가장 끝부분에 다시 줄을 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필요에 따라 식당 바로 옆 미국 각지에서 봉사 단체를 통해 모아져 온 옷을 지급 받기도 하고, 식당 앞에 대기중인 의료지원 차량에서 간단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식사를 마치면 희망자들에게 미국에서 내려온 재활용 옷이 제공된다.
 식사를 마치면 희망자들에게 미국에서 내려온 재활용 옷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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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부는 식당의 2층으로 올라가서 이용 서비스나 심리상담을 받는다. 더러는 미국 내 난민 심사 신청을 위한 각종 서류에 대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게다가 '구세주 아침 식당'의 경우 띠후아나에 있는 알베르게들 중에서도 미국 국경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언제라도 그 국경에 온통 신경을 집중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이주자들이나 추방자들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이주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서류도 갖추지 못한 채 이곳까지 올라온다. 여비가 충분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감히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주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알베르게들이 지원해주는 서비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길고 긴 여정 곳곳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존재하는 알베르게들을 거치면서 이주에 대한 다양한 학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알베르게들이 이어주는 루트를 쫓아 결국은 미국의 국경 바로 아래 어디쯤 닿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알베르게를 중심으로 베이스캠프를 차리게 된다. 이러한 도움들이 있기에 미국 내 난민 심사를 위해 '생명책'에 올려둔 자신들의 이름이 불려질 때까지 낯선 도시에서 지난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혹시 그 곳에서 일거리라도 얻게 되어 돈을 모을 수만 있다면, '코요테'라 불리는 불법 이주 브로커를 고용할 수도 있다는 희망도 가져볼 것이다.

처음 도착하는 낯선 도시에서 최소 단 며칠 간의 잠자리와 식사가 제공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간 이주를 꿈꿔 볼 수도 없었던 숱한 사람들이 이주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물론 숙소마다 정해진 수용 인원이 있긴 하지만, 당장에 차가운 일기 속에 한뎃잠을 자야 하는 이들이 있다면, 으레 복도나 처마가 덮인 마당에 간이 침상들이 놓여졌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작은 텐트들이 대신했다.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하루 정해진 양이 있을 터이나,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물을 조금 더 부어서라도 그 곳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이 제공되었다.

알베르게는 끊임없이 침상을 내주는 화수분 같았고, 급식소에서는 어찌되었든 매일 매일 모든 이들의 배를 채워주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조금 좁지만 어떻게라도 자리를 만들어 밖에 자는 사람들 없게 하고, 조금 묽지만 어떻게라도 그곳에 온 사람들 굶지 않게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본다면, 과연 호시절이었다. 이 생소한 바이러스가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퍼질 때만 해도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미국에 바이러스가 들이닥쳤다 했을 때도, 저 북쪽 추운 지방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물론, 제대로 된 정보도 없었다. 설령, 그들이 사는 곳까지 바이러스가 내려온다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누군가의 결정을 온전히 받아 들어야 할 선택이 있을 뿐. 

이주자들에게 닥친 코로나 

2020년 3월 이후 미국과 바로 붙은 띠후아나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혹독하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이어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띠후아나에서 발생했다. 사망률은 30%를 육박했다. 멕시코 전역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파는 가장 취약한 곳으로 파고들었고, 두말할 것 없이 그 최전선에 '이주자'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미국 국경이 폐쇄되었다. 이주자들의 오직 유일한 희망이었던 난민 심사 또한 무기한 연기되었다. 어차피 이들에게 국경은 늘 닫혀 있었고 난민 심사 또한 매우 더딘 속도로 진행되던 일이니, 이러한 조치들이 이주자들의 삶에 당장 큰 타격은 아니었다(관련기사: 천국으로 가는 '생명책', 코로나로 사라졌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있는 띠후아나 내에서 파급되었다. 2020년 5월 초 이미 띠후아나 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1300명을 넘어섰고, 그 중 사망자는 350명을 넘었다. 도시 전체가 패닉에 빠지는 와중에, 하필 모여 있거나 혹은 가까이 있는 것 그 자체가 발병을 유발한다고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베르게 내 정해진 침상 외에도 복도며 마당까지 채워지던 간이침대들이 사라졌고, 각 방의 침상들도 간격을 띄우기 위해 일부를 빼야만 했다. 갑자기 절반 이상의 이주자들이 낯선 도시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뿐인가? 구세주 아침 식당을 비롯해 띠후아나 곳곳에 있던 이주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보건 당국의 강제 규제로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비인간적인 처사라는 불만들이 쏟아졌지만, 당장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무엇이 더 인간적이고 동시에 무엇이 더 비인간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보류되었다. 바이러스 감염자와 사망자에 대한 뉴스 뒤로 그들의 외침은 묻힐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8년 7월 26일 멕시코 출신의 한 여성이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는 난민 신청 절차를 밟기 위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18년 7월 26일 멕시코 출신의 한 여성이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는 난민 신청 절차를 밟기 위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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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 아침에 잘 곳과 먹을 것이 사라져 버렸다. '생명책'이라 불리는 공책에 적힌 자신들의 이름이 불려질 때까지 띠후아나 어디든 당장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었던 일터마저도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에 밀려 폐쇄되어 버렸다. 그들의 한끼 식사가 되어주었던 봉사 단체의 기부도 사라졌다. 사재기가 횡행하면서 식재료 수급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국제법 상 그럴 수는 없다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 참에 아주 멕시코를 통해 들어오는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에 대한 난민 심사를 종료해 버릴 것 같은 취지의 뉴스들을 계속하여 흘려 보냈다. 이쯤 되면 차라리 그들이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 숨을 좀 고를까 싶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다. 멕시코뿐 아니라 중앙아메리카 각 국도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 국경을 폐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멕시코 내에서도 각 주 간 이동이 제한되고 있다.

충분한 의료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정부가 최선의 선택으로 즉각적인 자택대피령을 내렸지만, 그들에게는 대피할 수 있는 집이 없다. 사람이 모인다는 이유만으로 무료급식도 중단되었다. 그에 앞서 무료급식을 운영할 식재료 지원과 봉사자들의 발길도 끊어져 버렸다.

결국 텅 빈 도시에서 대피할 '자택'이 없는 이주자들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같은 처지에 있는 그들끼리 '모이는 것' 밖에 없었다. 오직 그들만이 그들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뚝딱뚝딱 당장 몸을 뉠 수 있는 천막들이 만들어졌고, 솥이 걸리기 시작했다.

물론, '모임'이 죄가 되는 시대이기에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 대한 혐오는 더욱 거세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낯선 도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취약한 그들끼리 모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다.

사라진 스모그, 사라진 이주자들
 
 지난 3월 20일 멕시코 띠후아나의 여행자들이 미국 국경을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미국-멕시코 국경 폐쇄를 발표했다.
 지난 3월 20일 멕시코 띠후아나의 여행자들이 미국 국경을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미국-멕시코 국경 폐쇄를 발표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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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이후 이 도시에서 모든 것이 정지되고 폐쇄된 채 두 달여의 시간이 흘러간다. 띠후아나는 여전히 멕시코의 수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숫자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다. 세계 각 국의 공장이 멈추면서 지독한 스모그가 사라졌다는 말처럼, 이주자들의 성지 띠후아나에서 무료급식과 알베르게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으레 이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이주자들이 사라졌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스모그가 그러하듯, 이주자들 역시 이 도시 띠후아나에서 혐오의 대상이었으니, 더러는 사라져버린 스모그처럼 사라져버린 이주자들에 대해 코로나바이러스의 순기능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사라질 수 없었다는 편이 맞겠다. 북쪽 미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야 진즉 막혔던 터였고, 멕시코와 중미 각 국의 철저한 국경 봉쇄로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도 막혀 버렸으니,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지 않는 한 여전히 이 도시 어디쯤에서 이 시련이 지나가 주길 간절히 바라며 견디고 있을 것이다. 더 낮은 곳에서 혹은 더 은밀한 곳에서 말이다. 참으로 잔인한 시절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부의 행정명령에 의해 잠시 중단되었던 '구세주 아침 식당'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지난 20여 년 이 식당이 길 위의 이주자들에게 베풀어 주었던 참으로 품격 있는 아침 서비스는 아닐지라도, 하루 한끼 식사를 다시 제공하기 시작했다. 잔인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 이주자들에게 여전히 '구세주'임에 틀림이 없다.

식당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진심어린 축복의 인사를 받고, 세면대로 안내되어 손과 얼굴을 닦고, 그 옆으로 마른 수건을 들고 선 이로부터 수건을 건네 받고, 자원봉사자에게 안내를 받아 예비된 식탁으로 다가서고 그 곳에서 신부님과 함께 식전 감사 기도를 올리던 '의전'은 사라졌다. 우아한 접시에 담겨져 나오던 따뜻한 음식과 같은 식탁에 앉은 사람들끼리 충분히 나누어 마실 수 있었던 주스와 커피도 없다. 이쪽에서 올라가는 사람들과 달리, 언제든지 내려올 수 있는 '북쪽' 미국 봉사자들이 수시로 가져다 줬던 풍성하고 달콤한 후식도 없다. 식사를 마치고 이어지던 요일 별 목욕 서비스도 없고, 역시나 물자가 풍부한 미국에서 산처럼 쌓여 내려오던 재활용 옷도 없다. 오직 작은 비닐봉지에 담긴 마른 음식과 음료수 하나가 전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서 전대미문의 코로나바이러스 시대를 견뎌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여전히 존재하는 '구세주 아침 식당' 때문일 것이다. 언제 다시 미국 국경이 열리고, 난민 심사가 재개되고, 참으로 품격 있는 '의전'을 받아가며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먹게 될 수 있을지, 과연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늠은 그저 요원하다. 다만, '구세주 아침 식당'이 존재하는 한, 길 위의 이주자들 역시 이 잔인한 시절을 기꺼이 견뎌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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