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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미사 후 구묘역을 참배하는 사제단
▲ 모역을 참배하는 사제단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미사 후 구묘역을 참배하는 사제단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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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일에 망월동을 찾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구묘역에 들어서자마자 '님을 위한 행진곡'이 떠오르며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노래처럼 앞서서 나가다 망월동에 잠든 의로운 사람들 때문일까.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미사. 40여 명의 사제가 전국에서 모였다.

대표신부(김영식)가 "5.18 광주시민들이 만들었던 대동세상은 이 땅의 하늘나라였다. 불의한 군사독재권력은 안 된다고 맞서 싸웠다. 피가 부족하면 피를 나누고 밥이 없으면 주먹밥 만들어 건네고 기름이 없으면 주유소를 내주었다. 그렇게 만들었던 이 땅의 하늘나라 대동세상을 우리가 다시 만들어야 가야한다"는 지향으로 미사를 시작했다.

총무신부(박요한)는 "1980년 7월31일/ 저물어가는 오후 5시/ 동녘 하늘 뭉게구름 위에/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앉아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는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김준태 시인)를 신학생 시절에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강론을 이어갔다.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의 의미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노예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을 찾아 40년 광야생활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은 우리가 광주에 빚진 세월이다"고 선포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미사를 준비 중이다.
▲ 기념미사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미사를 준비 중이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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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몸부림, 십자가의 도시였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는 약속의 땅이었다. 5.18 정신은 6.10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고, 세계역사에 길이 남을 촛불혁명으로 꽃피었다"고 말하고 "80년 5.18 광주시민들이 보여주었던 하느님을 우리는 보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한 광주의 정신을 모질게 기억하며 5.18 광주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며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는 시로 강론을 마무리했다.

"사람들이 이쁘고 환장하게 좋았다....아아 나는 절망하지 않으련다/ 아아 나는 미워하거나 울어버리거나/ 넋마저 놓고 헤매이지 않으련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라면 피라미/ 한 마리라도 소중히 여기련다... 사랑에 천번 만번 미치고 열두번 둔갑하여서/ 이 세상의 똥구멍까지 입맞추리라/ 사랑에 어질병이 들도록 입맞추리라/ 아아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88올림픽 남북공동개최를 외치고 명동성당에서 활복 투신한 조성만 열사 묘지
▲ 조성만 열사 88올림픽 남북공동개최를 외치고 명동성당에서 활복 투신한 조성만 열사 묘지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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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마치고 5.18 구묘역을 참배했다. 첫 번째로 발길이 멈춘 곳은 88년 전주 민중서관 사거리 노제에서 만났던 조성만 열사다. 명동성당 교육관 4층 옥상에서 "88올림픽 남북공동개최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 "조국통일 가로막는 미국을 몰아내자!"며 할복 투신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89년부터 찾아뵙고 있는 조성만 열사의 아버지(조찬배)가 며칠 전에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광주신학교에 가기로 했던 성만이가 살아있으면 사제가 되어 최 신부랑 가난한 이웃과 세상, 나라와 민족, 민주와 통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열심히 사목하고 있을 텐데."

5.18 구묘역을 돌아 신묘역까지 참배했다. 인생의 동지이자 스승이자 아버지 같았던 몇 분 묘지 앞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민주와 통일, 생명과 평화운동 현장에서 함께 농성하고 단식을 했던 분들이다. 5.18 묘역을 참배하는 동안 한 생각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미국의 사전승인 없이 군대와 탱크를 광주에 투입할 수 있었을까.
  
5.18 신묘역 문병란 시인 묘역 앞에서
▲ 광주 5.18 신묘역 5.18 신묘역 문병란 시인 묘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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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나라 때문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야 했던가. 그 한 사람 전두환, 그 한 나라 미국. 4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는, 한 사람과 한 나라. 사과와 속죄가 없는 한 5.18 광주는 진행형이 아닐까. 그 한 사람이 사람이라면 "왜 이래!"라고 소리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한 나라가 초일류 국가로서 도덕성이 있다면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강압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처로 위대한 나라와 국민이 되었다. 광주 5.18 정신에서 시작된 촛불혁명이 이룬 결실이다. 그 한 사람과 그 한 나라에 당당하라는 명령이다.

태그:#5.18 광주민주화운동, #망월동 묘지 , #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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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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