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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먹는 '오월주먹빵'"

신문에서 본 기사 제목이다. 주먹'밥'을 잘못 읽은 줄 알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먹빵'은 금시초문이다.

신문을 좀 더 읽어보았다. 내용인즉, 광주의 한 마을기업에서 주민들이 손수 키운 농산물로 빵을 만들었는데 5.18 당시 실제 있었던 사연이 적힌 포장지로 그 빵을 포장했다고 한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도 살리고, 농민도 살리고, 주민들 일자리도 만든다는 취지가 나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마침 5.18 40주년을 앞두고 있으니, 색다른 방식으로 그날을 기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을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월주먹빵 여덟 개들이 한 상자를 주문했다. 사실, 빵이 무척 맛있게 보이기도 했다.
 
 택배상자에 붙은 스티커. "오월광주에서 보냅니다"
 택배상자에 붙은 스티커. "오월광주에서 보냅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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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다음 날 택배가 왔다. 택배 상자를 여니 "오월 그날, 전달되지 못한 소식들을 알려주세요"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어떤 '소식'이 담겨 있을지, 숙연해진 마음으로 스티커를 떼었다.

상자 안에는 한 묶음의 종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월.서.한. 오월 광주를 알려주세요"라고 적힌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1980년 5월 광주는 고립돼 있었습니다. 외부로 통하는 전화가 끊겼습니다. 언론은 '광주의 참혹한 죽음'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의 소식은 어느 곳에도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80년 5월, 가슴 먹먹했던 현장을 찾아 나섭니다. 공포와 분노, 통곡과 울분이 가득 찼던 거리, 또한 다함께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며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도시, 주먹밥을 전하고 헌혈로 뜨거운 동료애를 나눴던, 나눔과 사랑이 넘쳐났던, 80년 5월 광주. <오월서한>은 세상에 전달되지 못한 그날의 사연을 당신께 전합니다.

세상에 전달되지 못한 총 서른세 개의 사연이 짧은 문장으로 이어졌다. 뒤쫓아오는 공수부대를 피해 뛰어 들어간 미용실에서 주인이 "내 아들이다"라며 공수부대를 내쫓은 이야기, 음식점에서 시민군에게 밥을 공짜로 준 이야기, 많은 시민이 총에 맞아 피를 흘렸어도 시민들이 병원마다 줄을 서 헌혈을 해 병원마다 피가 남았다는 이야기... 아직 절반도 읽지 않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러다간 우느라 빵을 맛보지 못할 것 같아 남은 글은 천천히 읽기로 했다.
 
 오월주먹빵
 오월주먹빵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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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럽게 포장된 빵 봉지를 열었다. 조금 전 종이에서 봤던 사연이 더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도청 상황실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사람들을 격려했다. 내 쪽으로 오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좋은 날 오면 막걸리 한 잔 합시다." "그렇게 하세, 학생."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었다.
 
이 짧은 글을 읽고 나니 주먹빵이 달리 보였다. 80년 광주 금남로의 뜨거운 무언가가 깃든 소중한 양식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빵을 입에 넣었다. 짭짜름하고 고소한 것이 기름기 없는 고로케 맛이 났다.

쫄깃한 뭔가가 씹혔고 살짝 매콤했다. 광주 광산구에서 수확한 우리밀, 보리, 양파, 느타리버섯, 오디 등으로 빵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 쫄깃한 건 느타리버섯과 옥수수, 매콤한 건 할라피뇨인가보다.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특이한 맛이라 좋았고 달지 않아 더욱 맘에 들었다.
 
 사연이 적힌 포장지와 오월주먹빵
 사연이 적힌 포장지와 오월주먹빵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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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먹으며 인쇄물을 좀 더 읽었다. 사연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본 장면들이 겹쳐 보였다. 영화의 슬프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알겠다. 서른세 개의 짧은 글은 '시간대별로 보는 10일간의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다.

열흘 동안 군에 맞선 광주 시민들의 투쟁 기록이 촘촘히 적혀 있다. 쓰러짐, 외침, 투쟁, 대치, 호소, 살상, 사격, 진압... 열흘의 기록을 짧게나마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부끄럽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커다란 통에 밥을 짓는 사진을 비롯해 당시의 자료 사진도 인쇄물에 실려 있다.
 
 시간대별 5.18민주화운동기록이 적혀 있는 인쇄물
 시간대별 5.18민주화운동기록이 적혀 있는 인쇄물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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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기록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토록 아픈 진실을 가슴에 품은 채 이날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애써 온 광주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5.18정신을 훼손하는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발포 명령을 한 책임자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빵은 남편과 하나씩, 총 두 개 먹었다. 남은 여섯 개는 상하기 전에 밀봉해 냉동실에 넣었다. 하나씩 꺼내 데워 먹을 생각이다. 그 포장지 안에 적힌 글귀가 무엇인지 아직은 모른다.

물론 이미 서른세 개의 사연을 모두 읽었으니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곱씹고 곱씹어야 할 이야기인 건 분명하다. 빵을 먹을 때마다 글귀 때문에 숙연해지겠지만, 기꺼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빚을 지고 있으니까.

오월주먹빵 덕분에 40년 전 그날의 광주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눈물 나게 하고 숙연하게 하고 주먹까지 불끈 쥐게 만드는 이런 빵은 처음이다. 내가 느낀 이 기분을 많은 이들이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5.18 40주년을 특별하게 기념하는 바람직한 방법으로 강력추천한다. 물론, 빵 맛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www.bonppang.com 본빵협동조합 (062-944-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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