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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4월 5일, 10일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오는 길에 직접 찍은 거리의 벚꽃 사진. 만개를 넘어 팝콘 튀겨지듯 개화했다.
 각기 4월 5일, 10일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오는 길에 직접 찍은 거리의 벚꽃 사진. 만개를 넘어 팝콘 튀겨지듯 개화했다.
ⓒ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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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엄격했던 4월 초였다. 그간 살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빅데이터가 이러다가는 큰일 날지도 모른다며 신호를 보냈다. 집안에서 늘 가만히 있다가 어쩌다가 바람을 쐬러 나가니, 벚꽃이 미친 듯이 피어 있었다. 머리가 인지하는 시간은 여전히 벚꽃이 피어 있어야 할 시기인데 이제는 벚꽃이 다 지고, 온통 연둣빛이 세상이 길을 채우고 있다.

집 밖을 나와도 여전히 숨이 막힌 기분이다. 이제는 이마저도 별달리 감흥 나지 않았다. 바야흐로 봄이다. 봄인데 나는 봄이 아니다.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걸 체감하지 못하고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 몇 주나 계속되고 있다. 사실 그보다 더 아득한 기분을 느끼는 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련의 조치가 끝나더라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아득함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묘사되는 재앙은 대체로 처절하고 끔찍하다. 도리어 극적이기 때문에 실감 나지 않고,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관전할 수 있다. 사실 일상 중에 느껴지는 재난은 그렇게까지 극적이지 않다. 답습되고 반복되는 상황에 기약 없음을 느끼면 어느 순간 바닥에 가까이 끌려 내려가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적어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내게 찾아온 재난은 그러했다.

우울의 늪에 빠져버린 일상

이번 기획 기사에 참여하게 된 이유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기약 없는 아득함에 삼켜지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다 힘들겠지만 언제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버거운 법이다. 보이지 않는 불행은 일상을 쉽게 무너트렸지만 내 일상은 그 전부터 꽤 불안정했다. 아끼는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응원 카톡 한 줄 보낼 에너지도 없을 정도로 메말랐다.

올해 2월에 대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취업 준비 생활 중이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때 취업 준비는 기약 없는 수험 생활이나 마찬가지니 자기관리, '멘탈 관리'를 잘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런 조언들은 왜 상황을 겪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걸까. 아무리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사실 기약 없는 수험생활이란 표현은 꽤 운이 좋을 때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 때에는 수능 때까지 버티면 됐고, 재학 중에는 성적이 나오는 기간도 정해져 있었다. 노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이 확실했다. 그에 반해 취업준비생이 되고 나서는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쓸 때마다 늘 불안하다. 과연 원하는 결과가 나올까? 하루에도 수없이 자신을 다독이기에 바빴다. 무력하고 하기 싫더라도 서류 합격 연락도 받았고, 자기소개서 첨삭 받을 때마다 고쳐야 할 내용도 줄었다. 자격증 공부도 속도가 붙고 있었다. 그러니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헷갈린다. 나는 이미 주저앉아 버렸거나, 늪처럼 변해버린 무력함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괜찮아야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2월, 졸업식도 취소되고 졸업장만 학교에서 받아왔다. 허탈했다. 지금까지 낸 등록금이나 성적표, 내가 한 노력이 고작 이걸 위해서였나?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다들 위축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경제 활동을 위축시켰고, 사람들조차 고립시켰다. 집에만 있으니 일상이 지극히 단조로워졌다. 그동안 내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주었던 취미활동조차도 내게 죄책감을 들게 했다. 나름대로 변화하고, 극복하려던 행동들이 단순한 발악에 지나지 않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거 같았다. 이런 시국에 내가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이래도 되는가? 죄책감이 독처럼 퍼져서 건강한 판단을 위한 시야를 막아섰다.

삶은 연명하는 게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다. 어디에서 들었던 소리인데 여태까지 우울할 때면 떠올리는 말이다. 살아있는 걸 넘어 살아가려면 단순히 의무 이상의 결과를 줘야 한다. 의식주는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지 생활의 조건이 아니다. 재난은 소리 없이 다가와서 차분히 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일상을 구축하던 한 축이 무너졌다. 단순한 행위조차도 머뭇거리고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했다.

갑갑해서 커피라도 한 잔 사 오는 왕복 30분 거리조차도 걸을 자격이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사회적 거리를 둔다는데 너는 왜 나가?'라는 인터넷에서 본 익명을 가장한 악의가 나를 옥죄어 왔다. 재난 문자가 필요할 정도로 시급한 사태인 건 알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사이렌은 한층 취약해진 정신을 공격하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뉴스에는 여전히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는 일부 사례에 대해 나온다. 꽃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여전히 클럽은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다. 분명히 공동체를 위해 지키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어긴 건 내가 아니었다. 뉴스는 공격적이지 않았고, 차분하게 내용을 전달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공적인 내용조차 날 향하는 비난으로 느껴졌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걸까? 이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많이 억울했다.

나만 빼고 잘 사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2주 동안 직접 만든 레진아트 작품 중 일부.
* 레진아트: 레진을 원하는 틀에 다양한 재료들을 넣고 굳혀서 만드는 수공예품. 키링, 목걸이, 귀걸이, 비녀 같이 다양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2주 동안 직접 만든 레진아트 작품 중 일부. * 레진아트: 레진을 원하는 틀에 다양한 재료들을 넣고 굳혀서 만드는 수공예품. 키링, 목걸이, 귀걸이, 비녀 같이 다양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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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것들을 전처럼 아끼지 못하게 된 환경이 이렇게 날 극한으로 몰았다.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을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취미 생활로나 하던 레진아트에 한동안 매달렸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 했기도 했지만, 일단 내 손안에 쥘 수 있는 결과물이 필요했다. 창조성을 표현하고, 내가 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낸 게 아니라는 방증이 되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두 달 정도 그렇게 보냈다. 5월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점점 진정되고 있지만, 아직 방심할 수 없다. 내 취업 준비도 여전히 기약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건 단순히 취업 시장만은 아니니깐. 나보다 두세 살 어린 친구들은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 친한 동생은 코로나 사태로 반년을 그냥 버리는 기분이라고 한다. 반액이라도 돌려받고 휴학하기로 결론 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우울할 줄 몰랐다. 다행히 아르바이트를 적당한 타이밍에 구했다. 일은 힘들고, 손님들 때문에 종종 인류애가 사라졌다가 생겨난다. 그럼에도 월급을 생각하면 기운이 나고 사람들을 어떻게든 만나니 숨통이 트였다. 나는 사람들이 여전히 짜증 나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 전보다 전반적으로 감정의 기복이 커졌다. 전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중에서 간신히 긍정적인 부분이 아주 조금 더 많았는데, 그게 사라져서 부정적인 부분이 더 크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공격적으로 변한 기분이다. 이런 변화로 나 역시 타인에게 공격적인 걸 자각한 순간 다시 내가 문제인가 하는 죄책감이 든다. 이런 사고가 반복된다. 나만 빼고 잘 살 거라는 피해 의식으로 확장되는 사고를 끊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일상에 찾아온 재난은 여전히 고요하게 내디딘 채, 한 번의 발걸음을 떼지도 않았다. 당신에게 찾아온 재난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가?

코로나19와 관련된 여러분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아래 메일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투고 메일: seouljobs1@gmail.com
주제: 코로나19와 나
형식: 인터뷰/에세이/취재 기사 등 텍스트 콘텐츠
분량: A4 용지 1매 이상
문의 전화: 02-6358-0645

덧붙이는 글 | 서울잡스 플랫폼에 게제된 글입니다.


태그:#코로나, #청년, #취준생, #서울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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