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돌 틈을 비집고 나온 쇠뜨기
 돌 틈을 비집고 나온 쇠뜨기
ⓒ 바른지역언론연대

관련사진보기


본격적인 봄이 되면서 마음은 슬슬 바빠진다. 작년에 심어놓은 꽃들은 잘 자라고 있는지, 올 초에 꺾어 심은 개나리는 죽지 않고 잘 살고 있는지, 정원을 꾸미기 위해 심은 나무들은 밤 사이 싹을 틔웠는지, 아침에 눈뜨면 일단 마당에 나가 식물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슬그머니 꽃대를 내미는 튤립, 금낭화, 앵초 등 꽃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하루가 마냥 낭만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이 넓은 마당과 텃밭에 또 무얼 심어야하나 배부른 고민을 하기도 하고, 거름을 줄 생각, 이랑은 또 어찌 만드나 하는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다행히 어설픈 몸짓으로 거름을 펴는 모습에 마을 전문 농부님들이 보다 못해 도움의 손길을 주신다. 혼자 하면 일주일은 족히 걸렸을 거름 펴기, 이랑 만들기, 비닐 멀칭(바닥덮기) 등이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순식간에 아름다운 밭으로 변모한다. 도심 주변 시골 마을이지만 아직도 인심이 살아있다. 초보 농사꾼에겐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밭을 일구었다고 또 끝이 아니다. 눈길을 돌리면 하루하루 할 일들이 쌓인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밭 주변, 집 주변으로 풀들이 우후죽순으로 자라난다. 정성 들이는 꽃들은 어찌 그리 더디 자라고, 그만 자라라는 풀들은 어찌 그리 극성으로 자라는지, 거름하나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풀들은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작년 이맘 때 돌담 사이에 손가락보다 작은 꽃잔디를 심었다. 물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고 그저 심어놓은 게 전부인, 소홀한 대접을 해주었음에도 죽지 않고 잘 살아준 고마운 꽃이다. 더구나 작년보다 몇 배로 퍼져서 화려한 꽃을 피워내며 눈호강을 제대로 시켜주고 있다. 그 꽃들 틈을 비집고 솟아나는 녀석이 있으니 바로 '쇠뜨기'다. 여러 풀들 가운데 최고다. 다른 풀들이 이제 막 손톱만하게 싹을 피우고 있는 가운데, 쇠뜨기는 키가 20~30cm 정도는 됨직하다. 그 큰 키로 꼭 꽃잔디 옆으로, 꽃잔디 잎이 꽃에 가려 보이지 않음을 아는지 마치 자기가 진분홍 꽃과 한 쌍인 마냥 색깔도 잘 어울리게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열심히 돌 틈 쇠뜨기를 뽑고 있는 나를 보며 아들 녀석이 한마디 한다. '엄마, 그 풀은 왜 뽑아요? 나는 그 풀도 엄마가 심은 줄 알았어요!' 아들이 보기에도 쇠뜨기와 꽃잔디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인가보다. 뽑으면서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도 없다. 번식력이 어마어마해 뽑지 않으면 조만간 쇠뜨기 밭이 될 판이다. 쇠뜨기를 뽑다보면 줄기가 끊어지기 다반사다. 뿌리-라고 하지만 실은 땅속 줄기-를 뽑지 않고 줄기만 끊어내면 끊어진 줄기 사이로 다시 싹이 돋아나 이내 쇠뜨기 밭으로 변신한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한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터진 곳에 가장 처음 싹을 틔운 식물이 쇠뜨기였다고 하니 그 생명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라.  
 
쇠뜨기 사이 꽃잔디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쇠뜨기 사이 꽃잔디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 바른지역언론연대

관련사진보기


쇠뜨기는 양치식물로 고사리처럼 포자로 번식한다. 이른 봄에 포자가 나오는데 생긴 모습이 꼭 뱀 머리처럼 생겨서 '뱀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는 뱀밥과 쇠뜨기가 같은 종류라는 걸 모르고 뱀밥이 나오는 곳에 쇠뜨기가 나오는 게 그냥 신기하던 때도 있었다. 아마 지금도 쇠뜨기 포자와 쇠뜨기 잎이 같은 식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잎이라고 부르는 초록색 줄기는 영양줄기로 이른 봄 포자 번식이 끝나면 지상부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영양줄기는 마디마디로 연결돼 있는데 마디는 쉽게 뜯어진다. 뜯어진 마디는 다시 끼우면 감쪽같이 원래 모습이 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종종 쇠뜨기 마디 뜯기 놀이를 하곤 했는데, 마디를 뜯고 다시 끼운 뒤 뜯어진 마디부분을 찾는 놀이다. 꼭 뽀뽀하는 것 마냥 붙어있어서 뽀뽀풀 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늘도 열심히 쇠뜨기를 박멸(?)하기 위해 호미를 든다. 내가 열심히 없애려는 쇠뜨기의 조상은 속새류 화석식물로 고생대에 나타난 최초의 육상식물이다. 약 3억 년 전에 출현해 현재의 고사리나 쇠뜨기 같은 왜소한 형태로 변해 굳건히 살고 있으니 과연 지구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진정한 지구의 승리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쇠뜨기를 내 조그만 손으로 없앤다. 무모한 호미질을 한다. 줄기를 뜯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 대충대충 땅속 줄기를 솎아낸다. 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풀들, 쇠뜨기를 뜯어야만 하는 미안함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싶은 인간적인 욕심사이에서 찾은 타협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지역언론연대는 전국 34개 시군구 지역에서 발행되는 풀뿌리 언론 연대모임입니다. 바른 언론을 통한 지방자치, 분권 강화, 지역문화 창달을 목적으로 활동합니다. 소속사 보기 http://www.bj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