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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 씨
 이종문 씨
ⓒ 주간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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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 '노인' '테니스를 친다'는 제보에 당장 달려가 만난 그 분은 평범했던 기자의 인생에 훅 들어왔다. 스승님 혹은 인생의 대선배쯤의 위치로 말이다. '노인' '어르신' '선생님' 같은 호칭은 날려 버리고 지금부터 이분을 '이 과장'이라 부르려 한다. 코트장에서 사람들은 이분을 이 과장이라 부른다.

이 과장이 테니스를 시작한 것은 40대 초반부터다. 산청교육청에 근무할 때인데 테니스가 직장체육 종목이었다.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이 과장은 테니스 라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 과장은 비가 쏟아지는 날을 빼곤 테니스장을 찾았다.

경남 함양 최고령 테니스인의 이야기는 지난해 대회에서 "82세 연세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테니스장에 나오시는 분"으로 소개됐지만 이 과장은 "내 나이를 82세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28세라면 혹시 모를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흔히 말하는데 나는 나이를 잊고 산다"고 말했다. 나이에서 해방된 이 과장은 작년 춘계대회에서는 우승(필봉부, 55세 이상)을, 추계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테니스가 행복의 비결인 이종문 씨.
 테니스가 행복의 비결인 이종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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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를 하니 시합, 순위, 실력 따위로 얘기를 이끌었지만 이 과장은 단호히 "나는 테니스를 잘 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좋아서, 즐기려고 하지. 나에게 행복의 비결이 뭐냐고, 행복해지는 방법이 있냐고 묻는다면 테니스를 한번 해 보라고 권하고 싶네"라며 테니스 예찬론을 펼쳤다.

이 과장의 인생에 테니스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 그에게 책을 추천하면 '대망'을 꼭 읽어보라고 할 것이며 취미를 권하라면 바둑을 두라 얘기한다. 이 과장이 추천한 '대망'은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가 17년간 일간지에 연재한 작품으로 7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일본 대하소설이다.

난세의 일본을 배경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본통일을 그린 소설로 그 치열한 전략싸움의 묘사 덕에 경영술이나 처세술의 지침서로 읽힌다. 이 과장은 32권의 방대한 분량을 읽고 3남1녀 자녀에게도 모두 읽혔다.

그의 일과는 오전 5시부터 시작된다. 5시30분쯤 상림으로 운동을 나간다. 그는 상림의 모든 것에 물음을 던지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을 새롭게 해석한다. 상림을 걸으며 "숲은 보면 볼수록 좋고 천년교 밑 물소리 들을수록 감미롭다"라는 시를 직접 지어본다.

상림에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불편할 땐 보림사에 들러 이광수의 '애인_육바라밀' 시가 새겨진 시비를 보며 시를 읊고, 피리 부는 목동이 그려진 벽화를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눈을 감은 이 과장은 "임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어/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로 시작되는 긴 시를 단숨에 외어 보인다.

해시에 자고 인시에 일어나는 이 과장의 밤이 옛날 생각, 형제 생각,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없이 길어질 때가 있다. 그런 날 이 과장은 눈을 감고 반야심경을 외우거나 동요를 부르거나 손가락으로 한자를 쓰며 잠을 붙잡아본다. 이 과장은 지금도 천자문을 공부하며 모르는 한자는 스마트폰으로 찾는다. 하지만 그의 머리맡에는 너덜너덜해진 옥편이 세월을 기억하듯 놓여있다.
 
이종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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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장에게 젊음의 비결이란 주위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병곡 토내마을이 고향이며 병곡초등학교 16회를 졸업했다. 매년 1월 6일이 동창회날이다. 동창들은 이 과장을 "맨날 선생님한테 질문을 도맡아 하는 녀석"으로 기억한다.

"곧 떠나겠다 생각지 않고 영원히 살거라 생각지도 않는다. 생겨날 것도 사라질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러울 것도 깨끗할 것도 없으며, 줄어들 것도 늘어날 것도 없는 것"이라며 반야심경을 전하는 이 과장은 "테니스를 쳐라" "바둑을 둬라" "대망을 읽어라" "시를 읊어라" "세상에 물음표를 던져라"며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는 인생선배 이종문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 (하회영)에도 실렸습니다.


태그:#359- 나이를 잊고 사는 이종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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