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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박'한 단어 하나를 들었다. '방탄노년단'. 방탄소년단이 아닌 방탄노년단이라니. 이름부터가 재미있는데, 더 재미있는 건 멤버다.

방탄노년단의 멤버가 배우 신구와 손숙이다.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을 홍보하는 인터뷰 자리에서 연기 인생 도합 115년의 두 노배우가 스스로를 '방탄노년단'이라 소개하며 웃어 보이는데, 그 모습이 나는 참 보기가 좋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부러웠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팬들이 신구와 이순재, 손숙을 '대학로의 방탄노년단'이라 불러주었다고 한다).

일흔도 넘고, 여든도 넘은 나이에 아직도 무대에 설 수 있는 현역이라는 게 부러웠고, 나이가 드니 방송에서 불러주지 않는다고 푸념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연극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일 앞에서 여유롭고, 다 비웠으나 모든 것이 가득 차 보이는 노년의 아우라가 부러웠다. 내 나이 일흔에는 저런 여유가 찾아올 수 있을까.   

일을 그만두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
 
 방송 작가가 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때려치우는 것'이었다.
 방송 작가가 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때려치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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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가 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때려치우는 것'이었다.

20여 년 전, 내가 처음 방송사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이 틈만 나면 하는 말이 있었다. 언젠가 청첩장을 뿌리며 화려하게 그만두겠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이름에 비해 현실이 너무도 열악했다. 방송작가라는 직종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고 자리를 잡게 된 것도 역사가 짧지만, 그 보다도 더 역사가 짧은 지방에서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했고, 직업으로서 대우를 받기도 힘든 상황이었으니 그 안에서 직업인 작가로서 제대로 일하기란 젊고 어린 여성에게 쉽지 않았다. 대부분이 미혼 여성이었던 방송작가들은 그렇게 결혼과 동시에 일을 때려치우겠다는 꿈을 품고 살았다.

실제로 선배들은 방송작가라는 이름으로 꽤나 좋은 조건의 신랑감들과 결혼을 했던 것 같다. 여성의 학력과 직업, 취미와 특기, 그 일련의 모든 것이 시집 잘 가기 위한 스펙으로만 쓰이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그때 나에겐 그런 현실을 알아차릴 성숙이 없었다.

물론, 결혼을 잘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고, 결혼생활 또한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인생에 다른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인생을 위탁하거나 의탁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도 아니고, 인생의 결과도 아니고, 성공의 조건도 아닌데, 결혼만 해 봐라 보기 좋게 때려 치워 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여지없이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나도 그때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결혼이라는 지구상 가장 우매한 제도 안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사회에서는 어리석은 이탈을 감행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작가의 자리로 돌아왔다.

결혼과 동시에 일을 놓고 나서 1년 간은 즐겁게 지냈던 것 같다. 치열하게 일하다 무작정 노는 것에만 집중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신선하고 짜릿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맞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은 식상하고 진부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러한 계절들을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절머리가 쳐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출산과 육아를 빌미로 발을 묶어두려는 나무꾼을 피해 셋이나 되는 아이를 양쪽 팔에 한 명씩 끼고 나머지 한 명은 등에 업고서라도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선녀의 놀랍고도 교훈적인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건만, 나는 양쪽에만 껴도 되는 두 아이조차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온몸을 내어 주어야만 가능한 출산과 육아는 나로 하여금 무엇도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억압된 시간들은 역으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흘렀다. 어쨌든 읽고, 무작정 쓰고, 아무것이라도 고민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거름 삼아, 둘째 아이가 생후 1년 6개월이 되던 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일이 곧 존재의 증명인 사회

그렇게 다시 작가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나에게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전과는 다르게 정의되었다. 이제는 명함이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중요해졌다.

작가로서 나는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를 고민했고, 좀 더 낮고 보이지 않는 곳의 이야기를 찾고 전하며 스스로의 사회적 책임감을 쌓아 갔다. 방송 작가로서의 역할과 책임이 스스로에게 중요해지자, 명함으로서 자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작가로서의 자존감도 상승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존재의 증명이다.

여성에게 있어서 일이란 존재성과 정체성으로도 연결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 노동으로 철저히 잊히던 존재인 여성에게, 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을 단박에 드러나 보이게 하는 수단이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노동만을 놓고 보면, 일을 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일의 장소가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바뀌는 순간 위치가 달라졌다. 당장 가정 내에서의 위치가 그랬고, 친가와 시가에서도 나를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돈을 버는 위치란 그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씁쓸했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 일이 돈과 함께 이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의 자리와 정체성을 찾아준 소중한 기회였다는 점이다.

일은 똥기저귀와 함께 돌돌 말려 휴지통으로 버려지던 정체성을 되찾아 주었고, 아무리 쓸고 닦아도 티 나지 않는 집안일처럼 투명하던 존재에서 선명한 존재로 드러나게 했으며, 돌봄 노동에 허무하게 소비되던 나의 노동을 직업인으로서의 능력으로 환원해 주었다. 돈은 일의 대가로서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여성으로서 일에서 얻어지는 존재로서의 가치는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글쓰기를 통해 경제적 자유는 물론 여성으로서의 삶을 주체적으로 일구었고,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 '벨 훅스' 또한 자유롭고 충실하게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필수라고 말한다. 결국 여성에게 일이란 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체적 삶을 일으키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자 일차적 관문이란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는 일이 좋고 보람이 되다고 해서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 감이 떨어진다거나, 뛰어난 후배들이 양적으로 성장한다거나, 사용자의 마음이 변하면 한 순간에 일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는 것이 방송작가의 일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의 숙명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일터에서 끝까지 버텨야 하는 이유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흔도 넘고, 여든도 넘은 나이가 됐을 땐, 일 앞에서 여유롭고, 다 비웠으나 모든 것이 가득 차 보이는 여유를 가진 나를 만나길 바란다.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흔도 넘고, 여든도 넘은 나이가 됐을 땐, 일 앞에서 여유롭고, 다 비웠으나 모든 것이 가득 차 보이는 여유를 가진 나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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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방송작가로서 나는 몇 살까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오십은 너무 이르고, 요즘 육십은 그래도 청춘 아닌가 싶고, 그렇다고 칠십이라는 숫자만으로 나의 노동 가능성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또 부당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일을 잠깐 그만두었던 선배가 다시 현업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심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은 뒤, 말했다. 다시 와 주어서 나는 참 고맙다고. 선배도 웃었다. 내가 "왜 그런지 아시죠?"라고 했더니, 선배가 말했다.

"내가 걸어 다니는 정년이잖아."

그렇다. 나는 선배가 오래도록 현장에 동료로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 선배가 일을 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나의 일하는 날도 늘어날 것이고, 나이를 들먹이며 나의 노동 가능성을 일축하는 목소리들도 선배의 존재가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법률상 정년퇴직 연령은 만 60세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방송작가의 정년은 정해지지 않았다. 유리한 것일까, 불리한 것일까. 이왕이면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해보려 한다. 정해지지 않았으니, 끝까지 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흔도 넘고, 여든도 넘은 나이가 됐을 땐, 일 앞에서 여유롭고, 다 비웠으나 모든 것이 가득 차 보이는 여유를 가진 나를 만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버티는 중이고, 끝까지 버텨보려 한다.

나는 지금 한창 미혹되지만 불혹을 위해 노력하는 방탄중년단을 지나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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