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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비례대표 강은미 당선자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강은미 당선자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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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의당 '비상구'(비정규직 상담창구) 대표로 활동할 때 만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얼굴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때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씨 비정규직 노동자 사건도 있었는데, 주로 그런 분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일하다가 죽는 사람들 숫자를 이제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국회의원 당선이 확정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을 묻자 강은미 정의당 당선인(비례대표 3번)이 내놓은 답변이다. 강 당선인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하며 기대와 아쉬움을 동시에 전했다.

"제가 구의원(광주 서구)과 시의원(광주시)을 8년 정도 하지 않았나. 그때 느꼈던 한계를 넘어 이제 국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 싶었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면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법' 같은 걸 꼭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설명이다.

기초·광역의원을 거쳐 국회에 입성한 강 당선인의 시작은 '현장노동자'였다. 건전지 공장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전남대 해양학과) 때 쭉 학생운동 언저리에 있었다, 졸업 뒤 로케트전기에 입사한 것도 노동운동을 위해서였다"고. 2004년 당시 공장에선 출산·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사고과를 낮게 줘 여성 8명을 해고했다. 이에 분노한 그는 복직투쟁위원장을 맡아 전면에 나섰다. 복직투쟁을 이끌며 정치의 효용과 필요를 느꼈다.

"저를 비롯해 10여 년을 함께 일한 여성노동자들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서 쫓겨났을 때 저는 그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 겨울 한파 속에 광주시민들과 지역노동자의 연대투쟁을 이끌어냈고, 복직투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투쟁의 경험은 노동자 삶과 정치의 연관성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차별·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게 했습니다." - 2월 17일, 강은미 후보 출마선언문 중에서

강 당선인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에는 식당·청소노동자 모두 한 회사 직원이자 정규직이었다, 그러나 노동법이 바뀌자 이분들이 하루아침에 외주업체 소속 비정규직 신분으로 바뀌더라"라며 "평생 해고당하지 않을 든든한 '빽'이 있지 않다면, 노동자이기 때문에 고단하더라도 특히 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최근 관심사도 '코로나19를 핑계로 노동자를 손쉽게 해고하려는 기업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다.

인터뷰날 정장에 세월호 배지와 5.18 40주년 배지를 나란히 달고 온 강 당선인. 그의 휴대전화에는 '세월호 진실을 알고 싶다'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는 "당선 된 기쁨보다 낙선한 동료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 아쉬움이 오래 간다"라면서 씁쓸해했다. "박창진·배복주·양경규 등 정말 열심히 했던 동료 후보들이 떠올라 안타깝다, 의원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정말 좋았겠다 싶어 계속 아쉽다"라고 말했다.

강 당선인은 그럼에도 "거대한 민심의 흐름 가운데서 정의당을 굳건히 응원해준 분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노동자·농민·장애인·청년 등 정의당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을 분명히 대변하겠다"라며 "정당으로서 맡겨진 정치적 역할을 해내겠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총선, 탄핵 잔존 세력에 대한 심판...정의당 목소리 제대로 전달 안돼"
     
 정의당 비례대표 강은미 당선자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강은미 당선자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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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5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 심판은 없었다. 총선 민심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정의당의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가 닿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계속 '비례정당 심판'을 외쳤지만, 정의당에는 심 대표 외엔 큰 스피커가 없었다. 거대한 집권여당이 '미래통합당 횡포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다수 정치인을 통해 여기저기서 크게 낸 데 반해 정의당의 의사는 국민에 충분히 전달되기 어려웠다고 본다. 아쉬운 부분이다.

대통령 탄핵 뒤 처음 치러지는 총선이었는데, 탄핵 잔존 세력에 대한 국민 심판이 있었다고 본다. 미래통합당(옛 자유한국당)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정권 비판에 골몰하며 발목잡기에만 나서지 않았나. 국민 생명과 안전이 달린 중요한 시기에, 집권여당에 제대로 힘을 실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국민적 판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정의당 의석이 6석(지역구 1석·비례 5석)에 그쳤다. 어떻게 평가하나.
"막판에 정의당 지지율이 조금씩 올라가서 (당선인이) 최소 10명은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매우 아쉽다. 여영국·윤소하·이정미 등 현역 의원들의 돌파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시기별로 당이 더 잘 대응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점은 있지만, 무엇보다 거대한 민심의 흐름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굳건하게 정의당을 지지해준 분들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고민 역시 깊다."

- 당선이 확정된 뒤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누구였나.
"제가 정의당 '비상구'에서 만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정의당 선거결과가 좋았다면 제가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기는 어렵더라. 박창진·배복주·양경규 후보 등 정말 열심히 했던 동료들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좀 더 큰 성과를 냈어야 하는데, 어려운 시기에 의원이 한 명만 더 있어도 큰 힘이 됐을 텐데... 이런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기대가 컸다. 드디어 많은 게 변화해서 '국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겠다' '정치가 사람들에게 희망과 힘을 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되면 정말 한국 사회가 획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고, 정의당 말고 다른 소수정당들 또한 국회에 들어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게 오래 갔다."

- 2번의 지역구 출마(2015년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 2016년 광주 서구을 총선) 이후 3번째 도전이었다. 당선 소감에서 '정의당다운 길을 가겠다'고 했는데.
"정의당은 늘 정치적 소수였다. 그러나 2016년 국정농단 문제가 불거지자, '6석 정의당'이 원내정당 중 가장 먼저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정의당은 민심의 흐름에 가장 먼저 반응해 결국 탄핵을 만들어냈다. '정의당다운 길'은 민심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본다. 노동자와 농민, 장애인 등 정의당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을 분명히 정치적으로 대변하면서, 국회 안에서 분명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삐삐밥' 만들던 공장 노동자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
 
 정의당 비례대표 강은미 당선자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강은미 당선자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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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로케트전기 재직 당시 겪은 정리해고 사태가 정치 입문 계기가 됐다.
"입사 전 정치에 관심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대학 때도 학생운동 언저리에 있었다. 공장에 간 것도 현장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로케트전기는 건전지, 특히 당시에 유행하던 '삐삐' 건전지인 '삐삐밥'을 주로 만드는 회사였다. (현장 공장에선) 갑자기 출산·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인사고과를 낮게 줘 8명을 일시 해고했다. 모두 다 여성이었고,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억울하고 다음엔 분노했다. 당시에 제 아이들이 어렸는데 눈뜨기 전 출근해 잠잘 때 퇴근했다.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이렇게 손쉽게 자른다는 데 분노했다. 부당한 일이라며 해고자들끼리 똘똘 뭉쳤고, 당시 35세였던 제가 복직투쟁위원장을 맡았다. 중도 포기한 1명 빼고 나머지는 모두 복직했다. 그 뒤에 치러진 지방선거 때 주변에서 '정치를 해보라' 권유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 광주에서 정치활동을 해왔다. 전남 목포 윤소하 의원의 낙선(3위) 등 정의당이 대안 정당·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호남 민심을 어떻게 봤나.
"늘 호남은 정치적·전략적 판단을 한다고들 하지 않나. 비정규직 해고로 논란을 빚었던 전북 남원 이강래 후보(전 한국도로공사 사장)를 제외하곤 다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했다. 호남 유권자들도 집권당에 확실히 힘을 실어줘야겠다고 결정해 선택한 것 같다. 정의당이 대안 세력으로서 부족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민심의 거대한 흐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 180석 슈퍼 여당 출현으로 진보 야당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정의당의 역할이 있다면.
"IMF 외환위기 직후 몰아친 기업의 정리해고·비정규직화로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들이 힘들었듯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인 지금, 기업들이 모여 경영상 이유로 정부에 규제 완화를 건의했다고 들었다. 해고·고용불안이 시작된 지금 정의당의 역할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아질 것이다. 정치는 의석수도 중요하지만, 민심이 바탕이다. 협력할 땐 충분히 협력하되, 더 힘차게 개혁을 견인하겠다."

- 최근 불거진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과 사퇴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인에게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그분은 예전부터 구설이 잦아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는 보도를 봤다. 민주당 시스템도 재점검해야 한다. 부산같은 대도시에 집권여당이 그 정도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사람을 공천한 게 맞았나 돌아봐야 한다. 사퇴시 쓴 '불필요한 접촉' 등 표현을 보면 사과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총선에서 압승한 지금, 민주당이 특히 유의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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