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 애플이 8년 만에 발매한 정규 5집은 발매와 동시에 음악신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음악 웹진 피치포크가 그의 신보에 최고 점수인 10점을 주는가 하면 여러 음악 사이트의 점수를 평균 내어 보여주는 메타 크리틱에서 역시 앨범은 100점을 획득했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지에서는 만점을, 롤링스톤에서는 그보다 살짝 못미친 4.5점을 얻는 등 신작의 반응이 그야말로 어마무시하다.

하지만 작품은 엄연히 반대중적이다. 아니, 반대할 때의 반(反)이라기보다 아닐 비(非)의 비를 써 비대중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17살에 발표한 < Tidal > 이후 그의 음악이 줄곧 그래왔듯 이번 앨범 역시 표현의 화살은 밖이 아닌 '나'에게 찍힌다. 마치 그간 쌓아온 이야기를 응축해 한 번에 터뜨리고 순간에 영감 받아 일필휘지로 휘갈긴 듯 직선적인 노래들은 청취자에게 쉽게 풀어 전달되기보다 지금 내 심정을 표현하는 데 더 큰 무게를 둔다. 미술로 보면 표현주의요, 영화로 보면 누벨바그의 작가주의. 한 마디로 이 음반은 쉽지 않다.

그 양겹의 두터운 철가루를 털어내면 비소로 메시지가 귀에 들어온다. 그가 스스로 밝혔듯 이번 음반은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침묵을 거부하자"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각오는 다시 한 번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Shameika'는 중학교 시절 느낀 외로움과 부당 대우에 대해 일갈하고 앨범명과 동명의 'Fetch the bolt cutters'는 '난 남들이 정해준 방향 속에서 자랐지/ 그들이 올 때 나는 가만히 서 있어야 해' 고백하며 과거의 움츠러듬을, 동시에 이제 소리 내는 걸 망설이지 않을 것임을 목소리 높여 표현한다.
 
 피오나 애플의 정규 5집 < Fetch the bolt cutters >의 앨범 커버 이미지

피오나 애플의 정규 5집 < Fetch the bolt cutters >의 앨범 커버 이미지 ⓒ Sony

 
이 자기성이 온갖 곡의 영감이자 주제이고 에너지원이자 매개체다. 거친 상상으로 여성에게 쪽지를 건네는 'Ladies', 록의 하드함과 아프로비트의 주술적인 리듬감, 타악기가 한데 뒤엉킨 'Heavy balloon'은 "나는 딸기처럼 퍼지고/ 완두콩처럼 기어올라/ 너무 오랫동안 빨아들여 왔고/ 나는 경계를 뚫고 터져 나와" 소리친다. 개인성에 뿌리를 둔 비정형적인 가사가 쏟아지는 와중 사운드는 한 술 더 나간다. 홈 레코딩으로 완성된 만큼 집안 곳곳의 물건이 사운드의 한 조각으로 자리하는데 이 투박함과 거침없음이 앨범의 또 하나의 동력이다.

'Cosmonauts'에 담긴 두껍게 퍼지는 음악적 아우라와 변주. 앞선 곡의 거대한 전위성을 금방이라도 잊은 듯 'For her'이 갖고 있는 재기발랄한 코러스와 박수소리. 목소리조차 악기의 하나로 자리해 기묘하게 마무리되는 'Replay'까지, 앨범 곳곳에는 정제되지 않은 활력과 파괴적인 소리들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 비균질적인 조합이 하나로 뭉쳐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기괴함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실험적이고 그래서 더 곁을 주기 어려운 음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음반의 가치는 그 실험성의 장벽 너머 존재하는 메시지와 그림 그리듯 흩뿌려진 여러 사운드의 배합을 거쳐 그 꼭대기에 놓여있는 피오나 애플의 진두지휘에서 완성된다. 13개의 수록곡이 그의 손아귀에 꽉 묶여있다. 소리는 힘차고 메시지는 더 힘차다. 눈치 보지 않는 창작력을 겸비한 마이웨이 싱어송라이터가 기록적인 승전보를 울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 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앨범 피오나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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