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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전두환 생가 본채.
 경남 전두환 생가 본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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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편 시작에 앞서

올해 초부터 시작한 연재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가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10대 최규하 대통령까지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제11대 전두환 대통령편 집필을 앞두고는 보름가량 한 자도 쓰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생존하고 있는 인물인 탓이요, 지금까지 논란이 많은 데다가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한자성어에 '개관사정'(蓋棺事定; 관 두껑을 덮은 뒤에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두보의 시구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 장부는 관 뚜껑을 덮고서야 비로소 결정된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흔히 역사학자들은 사후 100년은 지나야 한 인물에 대한 바른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직계가족·후손, 추종자 및 후학들이 3~4대 지나야 바른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자칫하면 명예훼손(사자명예훼손)의 송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은 곧고 바르게 써야 후세가 참고할 사료가 될 것이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닌 한 글쟁이로서 우리 강토와 겨레에 대한 한 사랑으로, 특히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나라 안팎 지사들의 발자취를 여행기로 좇은 바 있다. 그래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까지는 그분들의 생가 답사기로 당신들의 생애에 대한 일화 및 나의 감회를 쓰고자 한다.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날 전두환 대통령 내외(1980. 9. 1.)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날 전두환 대통령 내외(1980. 9. 1.)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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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답사 길에 나서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다행히 이달 하순부터는 확산 조짐이 다소 주춤하다는 보도가 있어 가벼운 여장을 꾸리고 답사길에 나섰다. 그래도 때가 때인지라 가능한 당일치기나 1박 2일 또는 무박 2일 일정을 잡았다.

그래도 미심쩍어 출발 전날까지 시외버스터미널 시간표를 조회했다. 하지만 인터넷 상의 버스 시각이 혼란스러워 하는 수없이 직접 원주고속버스터미널 및 시외버스 터미널 두 곳에 갔다. 두 곳 모두 대구·진주행 버스는 코로나19 여파로 운행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 

나는 이런 줄도 모르고 대구에 사는 친구에게 노태우 생가 안내를 부탁했었다. 이미 약속까지 해놓은 터라 막막했다. 평소 운전을 배우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지만 '늦은 밥 먹고 파장 간다'는 격이다. 지도를 보니 노태우 생가와 영천역과는 거리가 가까웠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중앙선 열차를 타기로 한 뒤 친구인 김병하 대구대 명예교수와 영천역 대합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튿날(4월 25일) 원주역에서 오전 8시 55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자 낮 12시 37분에 영천역에 닿았다. 텅 빈 영천역 대합실에서 친구가 두 손을 들고 반겼다. 우리는 얼싸안고 우정을 확인했다. 그런 뒤 곧장 그의 차에 오른 다음 팔공산 기슭에 있는 노태우 생가로 향했다(노태우 생가 답사 편은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노태우 편에 게재하겠음).

노태우 생가 앞 밥집에서 친구가 대접하는 점심을 나눈 다음, 경남 합천 전두환 생가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대구서부주차장으로 갔다. 도착하니 오후 3시 20분. 그런데 합천행 버스는 오후 5시 20분에 있었다. 2시간을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할 처지였다. 휴대전화로 검색할 때는 오후 4시 전후 무렵에 분명 버스가 있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임시시간표가 적용돼 그 차가 합천행 막차였다. 

버스 시간 때문에 친구가 대접한 밥조차 후딱 먹고 차 한잔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친구는 내게 글 쓰는 데 참고하라면서 <신현확의 증언>이라는 책을 가방에 넣어 줬다.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삼부 요인을 접견하다(1981. 2. 25.)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삼부 요인을 접견하다(1981. 2. 25.)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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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확의 증언>

책을 펼쳐봤더니 아주 귀한 자료였다. 나는 대합실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신현확의 증언>은 신현확의 아들 신철식이 쓴 책이다. 아래는 저자 서문의 일절이다.
 
"어떤 형태가 됐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여태 살아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내 자랑을 하거나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잘못했다고 평가하는 글이 되기 쉽다. 그런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관련되는 분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게 돼. 내 죽은 뒤에 평전을 남기겠다면 괜찮아."
 
신현확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제1공화국과 유신에서 제5공화국 과도기의 중심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2시간짜리 카세트 녹음테이프 20개를 수십 번 듣고 아들이 엮은 증언록을 남겼다. 책 내용 중 일부만 발췌한다.
 
<신현확의 증언>.
 <신현확의 증언>.
ⓒ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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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의 내용
 
1979년 10월 26일 밤 용산 삼각지 육군본부 벙커에 최규하 국무총리, 신현확 부총리,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내무 ․ 법무 ․ 국방부장관, 그리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둘러 앉아 있었다. 신현확이 최 총리에게 물었다.

"이 시간에 국무회의를 소집하다니 무슨 일입니까?"
"아, 부총리! 나 좀 잠깐 봅시다."

최 총리는 벙커 옆 작은 방으로 신 부총리를 이끌었다. 김재규가 따라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김재규 부장이 가로 막으면서 말했다.

"지금 시급히 비상계엄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갑자기 웬 비상계엄입니까?"
"각하가 지금 유고상태입니다. 이 사실을 김일성이 알면 큰일 아닙니까? 최소한 48시간은 보안을 유지하려고 빨리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유고! 유고의 내용이 뭡니까?"
"그것은 밝힐 수 없습니다."

그 답변에 신현확은 탁자를 치면서 말했다.

"국무위원이 대통령 유고의 내용도 모르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다니 말이나 됩니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니, 선배님! 그게 아니라…."

2014년 3월 20일 37년 만에 공개된 미 국무부 2급 비밀전문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부장에게 피격된 직후 미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먼저 이송된 걸로 보인다. 이 사실을 미국 측에 전한 사람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최 대행은 1979년 10월 27일 오전 8시 글라이스딘 당시 주한 미국 대사에게 전화해 "박 대통령이 국군수도통합병원에 후송되기 직전에 미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후송돼 사망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전두환 생가 대문.
 전두환 생가 대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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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 좋소'

오후 5시 20분 합천행 시외버스가 출발했다. 승객은 5~6명으로 텅 비었다. 건너편 좌석에 앉은 승객이 내게 물었다.

"노형, 올해 몇이오?"
"45년생입니다."
 

나의 대답에 그는 금세 대꾸했다.

"을유생으로 76세로구먼. 나는 댁보다 세 살 더 많은 임오생이오. 나는 댁이 나보다 두세 살 더 많은 여든 이상으로 봤소. 근데 어딜 가시오?"
"합천 전두환 대통령 생가를 갑니다."


"네에? 무슨 일로?"
"팔자가 드센 탓으로 이 나이에도 카메라를 메고 사진을 찍으면서 전국을 두루 다닌답니다."
"팔자 좋소. 그 나이에도 일하러 다닌다니..."


그는 자기 나름대로 역대 대통령 촌평을 늘어놨다. 촌부의 재미있는 인물평을 듣는 사이 버스는 합천 정류장에 닿았다. 택시승강장으로 갔다. 곧 일몰 시간이기에 사진 촬영이 급했다.

"전두환 대통령 생가로 갑시다."

그날 오후 내내 공쳤다는 택시기사는 대단히 반색하면서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를 향해 마구 액셀을 밟았다. 그는 룸미러로 나를 힐끔 쳐다보면 말했다. 
 
"누가 뭐라캐도 우리 합천 사람은 대한민국 각하라 카면 전두환 아입니까?"


(* 다음 기사에 이어집니다)

태그:#전두환, #신현확, #최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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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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