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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창밖에 햇살이 환하다. 길가에는 옅은 연둣빛 옷을 입기 시작한 나무들이 보인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창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차도에는 차들이 늘었다. 불과 며칠전에도 한적하던 길인데. 잠깐 동안 햇살 좋은 바깥에 나가 걷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지난 3월, 코로나19로 도서관이 휴관하면서 빌려 놓았던 도서 반납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며칠 전 도서 대출 반납일을 알리는 톡이 왔다. 다시 도서관을 여는 걸까. 책도 반납할 겸 나가 볼까. 그동안 지나치게 자신을 가둔 것은 아닌가 반문하면서 이제 지나가는 계절의 냄새를 맡으러 나가보고 싶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봄볕을 한참 바라보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눈에 띄는 가리개를 떼어냈다. 베란다에 잡동사니들을 수납하고 가려두었던 작은 가림막이다. 오랫동안 걸어두어 먼지가 풀풀 나는 가리개를 세탁기에 넣고 다른 것을 꺼냈다. 역시 오랫동안 접어두어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물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가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집안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집은 그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다시 나가는 곳이었고 청소를 한다고 해도 세심히 살피지 않아서 구석에는 묵은 때가 앉았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니 묵은 때가 눈에 띄었다. 이번 참에 맘 먹고 집 정리를 해보자며 몇 년 동안 자리했던 가구를 옮기자 오래 찌든 먼지들이 보였다. 보이는 곳의 때를 닦아냈다. 코로나19로 집콕이 길어지니 좋은 점도 있구나. 켜켜이 쌓였던 세월의 흔적을 닦으며 청소의 기쁨을 생각했다. '묵혔다 닦으니 더 뿌듯하네', 엄마가 들었으면 등짝 스매싱 맞았을 소리도 해 가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부러 알찬 시간을 보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책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새로운 소일거리로 찾아낸 것이 눈에 보이는 묵은 일들을 처리하는 것. 그 중 하나가 다림질이다.
 
 다리미로 꾹꾹 눌러 자국을 지우니 그동안 구겨졌던 마음도 펴지는 것 같다.
 다리미로 꾹꾹 눌러 자국을 지우니 그동안 구겨졌던 마음도 펴지는 것 같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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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봄 기분을 내는 것이면 깔끔하게 다려진 가리개를 달고 싶었다. 가리개를 떼어내고 다리미를 폈다. 오랫동안 접어 두었던 가리개의 주름은 쉽사리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리미로 꾹꾹 눌러 자국을 지우니 그동안 구겨졌던 마음도 펴지는 것 같다.

내친김에 빨아서 걸어 둔 남편의 바지도 다렸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탓에 온통 주름이었다. 남편은 어차피 금방 구겨질 텐데 뭐하러 다리느냐고 했지만 꼬깃꼬깃한 주름이 펴질 때 기분까지 밝아졌다.

마침내 방에 걸려있던 남편의 와이셔츠 다섯 장도 들고 나온다. 아이들의 교복 와이셔츠를 다리는 아침이면 작은 스팀다리미로 함께 대충 다리던 남편의 와이셔츠. 속에 입어서 티도 안 난다며 다리지 말라는 남편 말에 그마저도 기분이 내킬 때만 했다. 요즘은 아이들이 등교를 안 하니 그조차 할 일이 없었다.

빨아서 걸어두었던 남편의 와이셔츠를 하나하나 다릴 때마다 주욱 주욱 시원스레 펴지는 셔츠를 보며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깔끔하게 다려진 와이셔츠를 다시 햇살 아래 걸고 보니 마음속에 보람이 가득 차오른다. 이런 걸 소소한 행복이라고 하는 거지.

햇살 좋은 토요일 오후, 창 밖을 바라보며 다림질을 한다. 빨아서 우글쭈글한 채로 걸어 두었던 방의 커튼도 떼어 다리고 서랍에서 깨끗한 식탁보도 꺼내 다렸다.

TV에선 '놀면 뭐하니?' 방구석 공연이 한창이다. 코로나로 문화 공연까지 취소되는 요즘, 방구석 관객을 위한 미니 공연이라고 했다. 마음속에 힘든 일이 있을 때 빨래를 하라고, 너의 구겨진 마음도 빨아서 바람에 말리라고. 바짝 마른 너를 입고 다시 시작하라고. 뮤지컬 <빨래>를 보며 다림질하는 손길에 답답했던 마음까지 후련하게 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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