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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소식을 듣고 차 펜을 들었습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위기 때문에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온 소형 여행사 사장님께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비통한 소식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은 누구보다 성실한 기업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결국 직원들을 내보내고, 사무실을 폐쇄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내몰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지원 금융자금을 받지 못하자 지인들에게 급전을 빌려 직원과 거래처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발버둥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떨쳐낼 수 있는 무게의 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지만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 선거운동기간 유세차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 선거운동기간 유세차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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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소식을 듣고, 며칠 전 막을 내린 21대 총선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총선 선거운동기간 동안, 저는 정의당 마포을 지역구 오현주 후보 선거사무소의 선거사무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유세차를 타고 지역구를 돌며 정당과 후보자의 정견과 공약을 주민 여러분께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무원보다는 연설원이라 스스로를 부르는 것이 맞겠다 싶을 정도로 연설을 많이 했습니다. 촛불 이후 첫 총선이었던 만큼, 차별과 불평등 해소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관철시킬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한 사람이라도 더 여의도로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선거운동에 임했습니다.

정의당 연설원으로 가장 많이 발음한 문장 중 하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선거운동을 시작할 때는 시장·상점가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조차 송구스러워 쉽게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입에 올리는 '경제 위기'라는 네 글자에 전부 담을 수 없는 무게감과 위기감이 골목마다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마스크에 가려 사람들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가려지지 않은 눈빛에 담긴 분노와 무기력함은 단번에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해있던 캠프에서는 득표만을 위한 선거운동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민생위기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골목에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찾아 현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정책을 직접 물어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다른 지역구 정의당 선거캠프도 그와 같은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 민생위기에 맞선 정의당의 대책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유세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주민 여러분께 말씀을 드릴 용기가 났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정부의 대출 위주 지원책은 문턱이 높고 대기기간도 길어 당장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이라기보다 미봉책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상황이나 매출회복 여부에 관계없이 일시에 상환해야 하는 대출 지원이 아닌 모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임대료를 지원하고 부가가치세를 감면해야 한다. '착한 건물주'를 기다리지 말고 제대로 일하는 국회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걸리기 전에 굶어 죽겠다' '지금 상황에서 대출을 더 받으면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진다'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주민 여러분의 말씀도 여과 없이 그대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연설을 듣던 주민 분들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경청해주시는 분들,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박수 치며 응원한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메모와 함께 '지지한다'며 유세차에 커피를 남겨주고 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정의당과 지역구 후보자를 지지해달라고 말하는 일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해졌습니다. 발로 뛰어 들은 민심과 가슴 뛰는 진심이 더해지자, 5시간 넘게 유세차에 서서 지역구 곳곳을 돌아도 힘든 줄 모르게 됐습니다. 마지막 이틀은 주민 분들께 약속드린 내용을 꼭 지키고 싶다고 말씀드리던 와중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 선거운동기간 필자가 받은 선물과 응원 메시지.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 선거운동기간 필자가 받은 선물과 응원 메시지.
ⓒ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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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곁, 진보정당 존재 이유

선거가 끝나고, 저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 유세차에 오르지도, 마이크를 잡지도 않습니다. 특별히 당직을 점하고 있거나 당 활동에 주력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평범한 청년이고, 직장인입니다.

그러나 저는 스스로 정의당과 후보자의 이름을 내걸고 한 약속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진보정치가 '투명인간'에 대한 기성정치의 무책임함을 비판하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진보정치의 일원으로서, 고인의 죽음에 한없이 무거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는 까닭도 다름 아닌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에 있습니다.

고인의 삶을 기억하며, 저는 스스로 정의당과 후보자의 이름을 내걸고 한 약속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기에, 우선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소리내어 외치겠습니다.

비록 한 순간의 선거운동 연설원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저는 주어진 정치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선거운동기간 "선거 때만 찾아와 시끄럽게 굴며 한 표를 호소하고, 정작 당선되고 나서는 주민의 삶을 바꾸거나 지키는 데 소홀한 정치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주권자로서, 권력의 대리자인 국회를 향해 '나의 삶을 지키는 데 소홀하지 말라'고 외치겠습니다. 

코로나19 민생위기가 노동자와 소상공인을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20대 국회는 남은 임기, 코로나19 민생위기 해결을 위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선거운동기간, 주민의 삶을 바꾸고 지키겠다 외친 국회의원이라면 지금 당장 맡은 바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하겠다고 밝힌 대책의 상당수는 지원이 필요한 곳에 지원책이 닿지 못하거나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데 과도한 행정비용이 소요되는 등의 비효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에 투입되는 공적자금과 서민에게 투입되는 공적자금 간의 양적 불평등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21대 총선에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했습니다. 일꾼을 뽑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벌써부터 '전례 없는 민생위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절규하는 국민들을 위해, 뒤늦게라도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무능한 정치가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각 정당은 사람을 살리고 지키는 일은 방역뿐만 아니라 정치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명심하고,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민생대책이 최대한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쟁을 멈추고 건설적 논의에 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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