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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걸음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2016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약 100여 장의 헌혈증을 모았다. 삼성서울병원에 근무하던 학교 후배를 통해 알게 된 친구를 위해서였다. 열 넷이었던 윤지아(가명)양은 횡문근육종 소아암 판정을 받고 기대하던 중학교 생활을 해보기도 전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외롭게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순례길을 걸으며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인 사회활동가 임충만씨의 이야기다.

"세계 곳곳에 널 응원하는 많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충만 씨가 스페인 순례길 여행 중 만난 외국인 친구들에게 지아 양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응원메시지를 받은 다이어리
 충만 씨가 스페인 순례길 여행 중 만난 외국인 친구들에게 지아 양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응원메시지를 받은 다이어리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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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꺼낸 다이어리에는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지아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가득 적혀 있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지아의 사진과 사연을 소개하고 티셔츠와 다이어리에 직접 응원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선물은 끝내 전해지지 못했다. 1년 9개월의 투병 생활 끝에 지아가 하늘나라로 떠난 것. 충만씨가 귀국하기 딱 일주일 전이었다.
 
 생전 윤지아 양이 색종이로 만든 여권
 생전 윤지아 양이 색종이로 만든 여권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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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었어요. 병이 다 나으면 여기저기 함께 여행하자고." 인터뷰 도중 지아가 병동에서 만든 가짜 여권 사진을 보던 충만 씨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가고 싶은 곳 : 강원도', '좋아하는 가수 : 트와이스'가 적혀 있는 여권 안 지아양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종일 묵묵히 걷다 지친 몸으로 순례자 숙소에 들어가면 매일 지아를 위해 기도했어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귀국하고 모은 헌혈증과 기부금을 드리러 간호사 지인이 근무하는 병원에 갔어요. 병동 생활을 함께 했던 그 친구와 지아 어머님이 만나자마자 껴안고 5분 동안 내내 펑펑 우셨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죽을 때까지 그 장면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지난 3월 말 충만씨를 만나 특별한 여정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의 의미 있는 걸음은 2016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를 돕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다
 
 2016년 응답하라 1988 프로젝트로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은 사진. 충만 씨는 순례길에서 만난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에게 캠페인의 의미를 설명하고 함께 사진을 남겼다.
 2016년 응답하라 1988 프로젝트로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은 사진. 충만 씨는 순례길에서 만난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에게 캠페인의 의미를 설명하고 함께 사진을 남겼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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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씨의 첫 번째 사회공헌활동은 2016년 진행한 '응답한다 1988' 프로젝트였다. 88번 헌혈에 참여해 세상에 팔팔(88)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88년생 임충만의 도전이라는 테마 아래 한 달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1200km를 걸으며 SNS로 모금 현황을 중계했다.

2015년부터 기획한 '응답한다 1988' 프로젝트를 통해 모금한 헌혈증 100여 장은 한양대 병원에 기부했다. 또한 순례길에서 촬영한 사진을 엽서로 제작하여 판매수익금과 헌혈증을 소아암 환우들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2016년 여름엔 모교 프로그램을 통해 CSR 연수를 위해 스위스로 떠났다. 2주 간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탐구할 수 있었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 적십자 위원회에서 헌혈을 어떻게 독려하는 시스템을 펼지 공부하는 데 좋은 기회였다.

그의 가치 있는 걸음은 스페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7년 충만씨는 100회 헌혈을 기념하기 위해 네팔로 향했다. 2015년 4월 최소 8000명이 사망한 네팔 대지진 이후 자신의 도움이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였다.
 
 학용품 전달 프로젝트로 기업에서 후원받은 가방을 네팔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학용품 전달 프로젝트로 기업에서 후원받은 가방을 네팔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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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씨는 학교와 기업의 후원을 받아 학용품을 챙겨 네팔의 작은 마을길을 걷다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전해줬다. 연필과 노트를 주며 친해진 한 아이의 마을에 충만 씨는 그 후 지속적으로 학용품을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2019년에도 그는 네팔 아이들을 위해 1500개의 연필, 50개의 가방을 싣고 비행기에 올랐다.

네팔에 처음 다녀온 해 8월에는 오랜 친구와 서울과 부산을 일주일 간 자전거로 종주하며 헌혈증 기부를 독려하는 '레드 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했다.

서울 최고 기온 36도를 찍을 만큼 유독 더운 여름이었지만 그 뜻에 동참하기 위해 헌혈증을 들고 찾아오는 시민들과 만나며 충만씨는 선순환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헌혈증 프로젝트
 
 2017년 헌혈증 전달을 위한 국토종주 프로젝트에 쓰인 자전거
 2017년 헌혈증 전달을 위한 국토종주 프로젝트에 쓰인 자전거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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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헌혈증 모을 생각을 하시게 됐나요?
"태안 기름유출 사태 때 2박3일 자원봉사를 갔어요. 하루는 해변에 앉아 돌 한 덩이를 닦는데 종일 매달려도 기름때가 안 벗겨지더라고요. 탁해진 바다를 보며 문득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 뭐가 있을까 찾다보니 그게 '헌혈'이었어요.

헌혈은 전혈과 성분헌혈 2가지가 있어요. 성분헌혈은 2주마다 가능합니다. 편입 준비를 하던 1년간 24번 헌혈했어요. 한 주도 안쉬었던 거죠(웃음). 그때부터 지금까지 헌혈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사회단체의 헌혈증 기부 실적이 매우 저조하니 저 한사람의 도움도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2018년 2월 서울 대학로에서 진행한 프리허그 캠페인
 2018년 2월 서울 대학로에서 진행한 프리허그 캠페인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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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동기가 뭔가요?
"평범한 취업준비생으로 살며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뭘까 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러다 런던에서 인턴생활을 마치며 스페인을 종착지로 하는 유럽여행 계획을 세웠어요.

여행 중 지인의 추천으로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고, 여행 마지막 10일 일정을 통째로 거기에 할애했어요.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곳에 가면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거든요."
 
 2020년 현재 충만씨는 2015년 이후 총 4번 순례길을 걸었다.
 2020년 현재 충만씨는 2015년 이후 총 4번 순례길을 걸었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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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셨나요?
"10일간 300km를 걸었어요. 순례객을 위해 길 위에 노란 화살표가 있어요. 그 화살표들을 따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미지의 세계를 걷는 기분이었어요. 그 과정이 행복했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 경험을 할 수는 없잖아요. 세상에는 여행이 사치인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때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서도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헌혈증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그는 운명처럼 만난 순례길을 시작으로 세계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누군가의 삶에 희망의 거름이 되고자 세상을 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걸음이 거름이 된다면>을 출간하기도 했다.

충만씨는 작년 2019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90일 간 다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2000km를 걸으며 헌혈독려캠페인을 펼쳤다. 귀국 후에는 모금한 헌혈증을 백혈병협회에 전달했다. 최근에는 순례길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행 중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고 있다.

아직 다 하지 못한 말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다양하게 사람들에게 헌혈을 독려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생각해요."

충만씨는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 치료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 닿는 데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헌혈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를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소외된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다 보면, 지금은 저 혼자 길 위에 있지만, 언젠간 모두 함께 걷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여행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하는 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그와 함께 할 방법이 없어졌지만 충만씨는 또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언젠가 코로나19는 없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사람의 마음을 전달할 그의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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