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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보신각 맞은편에서 찍은 ‘바르게 살자’ 돌비석.
 서울 종로구 보신각 맞은편에서 찍은 ‘바르게 살자’ 돌비석.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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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는 것이 꼭 개인들만의 일은 아니다. 단체의 경우에도 있을 수 있다.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도로변을 걷거나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바르게 살자'라고 적힌 직사각형 돌비석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을 세우는 주체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라는 관변단체다.

바르게살기운동조직육성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이 단체는 그 명칭에 걸맞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일례로, 효행을 실천하고 선행을 베푸는 시민들을 찾아내 시상하고 격려한다. 2018년 12월 6일자 <연합뉴스> 기사 '바르게살기울산시협, 효자·효녀 발굴해 시상'에는 효녀·효자·효부·의인들을 발굴해 시상하는 이 단체 울산시협의회의 활동이 나타난다.

이들의 선행은 코로나19와 관련해서도 전개되고 있다. 3월에는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회장 정원주)가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2억 9449만원어치를 기부했다. 본부뿐 아니라 지부 차원에서도 이런 활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이 단체는 규모도 상당하다. 전국 17개 시·도 및 233개 시·군·구에 지부를 두고 있다. 등록된 회원 숫자도 대단하다. 2019년 언론 보도에는 70만 명으로 나오고, 금년 보도에는 80만 명으로 나오고 있다.

작년 5월 26일자 <전남일보> 기사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2019 전국 핵심인원 워크숍 개최'에 다르면, 그해 5월 22일과 23일 강원도 고성군 어느 리조트에서 개최된 '2019 바르게살기운동 전국 핵심인원 워크숍'에는 17개 광역 시·도협의회 및 233개 기초 시·군·구협의회에서 핵심 인원 6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도 참석했다.

작년 9월 30일자 <뉴스포털1> 기사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 광주여대 체육관에서 성대히 열려'에 따르면, 그해 9월 26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체육관에서 열린 '2019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는 7천여 명이나 참가했다. 단체의 조직력이 꽤 튼튼하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정권 '사회정화위원회'의 후신
 
삼청교육대  신군부가 군부대내에 설치한 삼청교육대에선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인권유린을 당했다.
▲ 삼청교육대  신군부가 군부대내에 설치한 삼청교육대에선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인권유린을 당했다.
ⓒ 공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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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가 발족된 것은 31년 전이다. 1989년 4월 1일의 일이다. 그런데 창립 시점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4월 1일이라서가 아니라, 1989년이라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1년 10개월 뒤에 생겨났던 것이다.

일반 단체도 아니고 전국적인 대규모 관변단체가 6월 항쟁 얼마 뒤에 창설됐다는 것은 주목해볼 만한 사안이다. 민주정의당(민정당) 정권은 1987년 12월 대선 승리로 수명을 연장하기는 했어도, 국민적인 항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인 집단이다. 그런 집단이 얼마 안 있어 대규모 관변단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989년 9월 4일자 <경향신문> 기사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전두환 정권을 계승한 노태우 정권은 6월 항쟁의 여파로 인해 민중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종인 등을 비롯한 노태우 측근들이 경제민주화를 거론하며 대중의 환심을 사려 한 것도 '6월 항쟁 2탄'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위축돼 있었던 보수정권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대규모 관변단체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이례에 가까운 일이다. 그럴 힘이 있었다면, 민중혁명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 단체의 실질적 창립 시점이 1989년이 아님을 뜻한다. 그 전부터 존재했던 단체가 이 시기에 간판을 바꾸고 '새 삶'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1989년 가을의 정치권 논쟁에서도 드러난다. 논쟁의 무대는 국회 국정감사장이었다. 1989년 10월 6일자 <동아일보> 기사 '바르게살기운동협 치열한 공방'은 전날 국회 내무위원회의 내무부 감사 때 있었던 일을 이렇게 보도했다.
 
"이날 오전 김 장관의 인사말이 끝난 뒤 첫 질의자로 나선 문정수 의원(민주)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지난 4월 사회정화위원회가 해체되면서 갑자기 만들어진 후속 단체로, 이는 정부가 기만적인 방법으로 사회정화위를 존속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성격을 규정하면서 '여야가 사회정화위를 해체토록 결의한 정신에 따라 이 단체를 당장 해체하라'고 다그쳤다."

김태호 내무장관에 대한 의원들의 비판은 빗발쳤다. 문정수는 "예산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예산을 축내고 있으니, 바르게살기가 아니라 바르게 못 살게 하는 협의회"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평화민주당(평민당) 정균환 의원은 "국고 보조를 끊고 하루빨리 해체하라"며 다그쳤다. 평민당 이영권 의원은 "이 문제는 5공 청산이 아니라 5공 회귀의 상징적인 사안이니 장관의 결연한 의지 표명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내무장관은 처음에는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자발적인 단체이며 사회정화위원회와 무관하다면서 공격을 피해 나갔다. 하지만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의) 구성원·조직 등을 여러 각도에서 파악한 뒤 예산지원 문제 등의 개선 방안을 검토, 추후 보고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추궁에 대해 합리적으로 반박할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반발이 그처럼 강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영권 의원의 말처럼 그것이 '제5공화국의 상징물'이나 마찬가지여서다. 전두환이 국민을 억압할 목적으로 만든 사회정화위원회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둔갑한 것이라면, 전두환 시대로의 복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만도 했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전두환이 막후 실력자에서 대통령으로 변신한 지 2개월이 좀 안 되는 1980년 10월 28일 제정된 사회정화위원회설치령에 의해 세워졌다. 국무총리에 속한 중앙행정기관인 이 위원회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역사에 길이 남을 악행을 저질렀다. 국민들을 전두환 체제에 순응시키고자 희대의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유명한 삼청교육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청교육대는 폭력배 등을 일소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상은 무고한 국민들을 끌고 가 가혹하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전두환 정권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민들을 심리적으로 굴복시키는 데 이용되었다.

이로 인해 '교육' 현장에서 52명이 사망하고, 후유증으로 397명이 사망하고, 정신장애 등으로 2678명이 상해를 입었다. 삼청교육이란 명분하에 1981년 1월까지 끌려간 국민만도 무려 6만 755명이다. 제5공화국의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이었다.

관(官)에 사회정화위원회가 있었다면, 민(民)에는 사회정화추진협의회가 있었다. 삼청교육대를 비롯한 각종 사회정화운동은 두 기구의 합작 속에 이루어졌다.

훗날 국가안전기획부장(국정원장)이 되는 안무혁 사회정화위원장은 1981년 6월 13일자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인 '안무혁 사회정화위원장 사회정화엔 안일·정체 없다'에서 "사회정화운동은 결국 민간 주도에 의한 국민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성공이 가능할 것입니다. 민간운동으로서의 활성화 방안은 어떠한지요?"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모든 국민들이 진정으로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재 시·도 및 시·군·구 단위로 사회단체 대표들을 포함한 사회정화추진협의회가 구성돼 있고 그 이하 지역에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각급 민간 정화추진 조직 간의 보다 유기적인 상호협조 체제를 보강하고 범국민적인 정화운동을 활성화할 방안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민간기구인 사회정화추진협의회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입법 조치도 있었다. 1983년 5월 21일 제정된 사회정화운동조직육성법이 그것이다. 이 법은 제2조에서 운동조직의 종류로 지역 및 직장의 정화추진협의회 등을 열거한 뒤, 제3조에서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출연금과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규정했다.

92년엔 회원 대다수가 민자당원... MB정부 땐 전경련 지원도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은 6·29 선언을 준비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선제 개헌을 건의할 테니 크게 노해 호통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었다고 증언했다.

전 전 대통령은 30일 연합뉴스가 단독 입수한 『전두환 회고록』2권 '청와대 시절'에서 6·29 선언 비화를 소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사진은 1987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이 힐튼호텔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후보를 축하해 주는 모습.
 사진은 1987년 6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힐튼호텔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후보를 축하해 주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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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져서 전두환 정권의 국민억압 정책을 수행했던 사회정화위원회와 사회정화추진협의회는 6월 항쟁을 겪으며 더 이상 존속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해체 요구를 감당하기 벅찼던 것이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 이것을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둔갑시키는 일이었다. 해체하는 듯하다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슬그머니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사회정화위원회 같은 조직이 없으면 정권 유지에 불안을 느끼는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이다.

사회정화위원회 및 추진협의회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형식상으로는 전혀 별개 같지만, 사실상 동일한 단체와 마찬가지였다. 1991년 9월 30일자 <동아일보> 기사 '바르게살기운동 또 국고 지원'은 "5공 때의 사회정화위원회의 조직과 인원을 흡수해 지난 89년 4월 민간단체로 발족된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회장 김동수)에 대해 내무부가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국고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며, 각 시·도, 시·군·구에서 이 단체에 무료로 사무실을 빌려주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1992년 9월 27일자 <한겨레> 기사 '관권선거 이제는 뿌리 뽑아야 (3)'가 서울시 어느 구청 국민운동지원과 간부의 말을 인용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자유총연맹·새마을운동협의회 등 대표적인 관변단체 회원의 95% 이상은 민자당원"이라고 보도한 데서도 나타나듯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속성을 그대로 갖고 있는 단체였다.

이렇게 사회정화위원회 및 추진협의회의 기반을 그대로 인수했기에, 6월 항쟁 얼마 뒤 이런 대규모 보수 단체를 재가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보수 정권이 크게 위축된 그 시기에 대규모 관변단체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 뒤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는 안전문화 시민교육, 바른생활학생봉사단 운영, 극단적 선택 방지 운동, 저출산 극복 운동, 법질서 및 교통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그런 활동만 해온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정권이 국민과 야권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이들을 살려놓은 것은 그런 선행만 베풀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들이 각종 선거 때마다 보수 정당을 지원한다는 의혹이 나오는 사실은 노태우 정권이 이 단체를 살린 의도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이명박 정권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이 이 단체를 지원하도록 배려한 사실이 드러나거나, 박근혜 정권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을 2016년 20대 총선에 동원하려 했다는 정황이 2017년에 청와대 정무수석실 문건에서 드러난 사실은, 그간 이 단체가 선행뿐 아니라 정치와도 꾸준히 관련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반성은 없었다.

1993년 9월 22일자 <매일경제> 기사 '시민단체로 거듭나기 몸부림'에서 이 단체 한춘기 사무총장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기보다는 "예전의 정화위원회와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조직에서 떠나게" 하겠다는 안이한 발언을 했다. 이런 비판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7년 8월 20일자 <한겨레>는 '바르게살자 돌 세우면 바르게 사는 데 도움되나'라는 제목의 비판적 기사를 내보냈다.

또 2019년에는 바르게살기협의회 전국대회가 열린 광주시의 31개 시민단체들이 바르게살기협의회를 성토하는 일도 있었다. 작년 9월 25일자 <광주일보> 기사 '신군부의 유산 바살협 지원 중단하라'에 따르면, 광주 지역 시민사회는 "5.18 정신모독"이라며 바르게살기협의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이 단체가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된 자세를 표명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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