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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힌샘 주시경 선생 한힌샘 주시경 선생
▲ 한힌샘 주시경 선생 한힌샘 주시경 선생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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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연구나 언어학자가 아니면서 한힌샘 선생의 평전 쓰기에 덤빈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오래 전부터 한힌샘은 내 두뇌의 중심부에 꽂혀 있었고, 서재에는 한글 관련 서책 70여 권이 꽂혀 있다. 전문성이 없어 무리인 줄 알면서도 선생의 높고 넓고 깉은 산맥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한글 사랑 정신에 매혹된 때문이다.
  
 광화문 <한글학회> 입구에 설치된 주시경 선생 흉상. 이곳부터 북쪽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난 길이 '한글가온길'이다.
 광화문 <한글학회> 입구에 설치된 주시경 선생 흉상. 이곳부터 북쪽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난 길이 "한글가온길"이다.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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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말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우국지사들을 기억한다. 나라 지키기와 국권회복에 앞장 선 분들이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생명을 던지거나 일생을 바친 선열이다. 그분들의 헌신으로 나라를 되찾고 어느 정도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의 입구에 이르렀다.

그런데 잊힌 선열들이 있었다. 독립운동의 또 다른 방향의 애국자들이 다 그들은 비록 총을 들거나 지하단체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국내에 남아서 우리말ㆍ우리글을 지키고 연구한 순결한 사람들이다. 그분들의 중심에 아니, 맨 앞에 한힌샘 선생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찍은 주시경 묘비.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찍은 주시경 묘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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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39년의 짧은 삶이었지만 선생은 민족만대에 큰 업적을 남겼다. 시국에 눌리고 생활고에 쪼들리면서도 한글을 지키고 연구하고 교수하느라 한 눈을 팔지 않았다. 숱한 제자들이 민족의 얼을 간직하면서 스승의 길을 따른 것은 백범 김구의 표현을 빌리면 "눈 덮힌 들판을 걸을 때도 바르게" 걸었기 때문이다. 또한 청렴 강직하고 부지런한 학구열이 제자들을 감화시켰다.

저자의 연구부족과 능력의 한계로 한힌샘 선생의 음운론 등은 손도 대지 못하였다. 그래서 선학들의 연구업적으로 면책하고자 한다. 인류 최고의 천재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음을 둔재가 빌린다. 저자의 마음도 이랬다.
 
 1933년 신명균이 간행한 <주시경선생유고>.
 1933년 신명균이 간행한 <주시경선생유고>.
ⓒ 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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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삶을 선물받은 이들이 이미 유익하고 꼭 필요한 주제에 자신의 이름을 걸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리 유익하다거나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런 연유로 나는, 마치 너무도 가난하여 망설이다가 늦은 시각에 비로소 시장에 들렀으나 딱히  사야할 물건을 고를 능력도 되지 않아,이미 다른 사람들의 흥정이 다 끝나고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물건만 수북이 쌓인 곳을 어슬렁거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마치 그 물건들이라도 몽땅 사버리겠다는 듯.

나는 이후 쓸모가 없이 버려진 이 물건을, 수많은 손님들에게서 외면당한 상품들을, 나의 누추한 짐 꾸러미 위에 실으리라. 그리고 대도시가 아닌 가난하고, 순박한 농촌 마을을 돌며 예전에 내게 은혜를 베푼 이들에게 답례를 하며 다니리라.

 
국어문법 주시경 선생의 육필원고본 <국어문법>, 오른쪽에 "주시경 서"라는 글씨가 보인다.
▲ 국어문법 주시경 선생의 육필원고본 <국어문법>, 오른쪽에 "주시경 서"라는 글씨가 보인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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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꼬리(蛇足)는 짧은 것이 좋다고 했지만, 필자가 다하지 못한 말을 선학의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주시경님의 『국어문법』의 서(序)에 따르면 그는 한 영역(공간적)은 독립국가 형성의 바탕(基)이요, 그 영역에 삶을 받은 사람은 독립국가 형성의 몸(體)이요, 거기에서 쓰이는 말은 독립국가 형성의 성(性)이라 하였고, 이 '성'은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이 '성'이 없으면 바탕도 몸도 있을 수 없으니, 국가의 성함과 쇠함, 국가의 있고 없음은 오로지 이 '성'인 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개국 이래 천연 특성의 우리 '국어'가 4천여 년간 전하여 내려 오고 세종대왕에 의하여 국어에 상당한 '국문'을 만들어냈다고 하였다. (주석 2)
 
주시경 선생 흉상(한글회관 입구) 올해는 주시경 선생이 만든 한글학회가 창립된 지 110주년 되는 해이다. 상동교회를 주무대로  한글연구와 한글 보급운동에 혼신을 다했던 주시경 선생은 <우리말이 내리면 우리 정신과 우리 나라도 내린다>고 하였다. 항상 보따리에 국어책을 들고 다니면서 열강을 하였기에 사람들이 <주보따리>라고 불렀다.
▲ 주시경 선생 흉상(한글회관 입구) 올해는 주시경 선생이 만든 한글학회가 창립된 지 110주년 되는 해이다. 상동교회를 주무대로 한글연구와 한글 보급운동에 혼신을 다했던 주시경 선생은 <우리말이 내리면 우리 정신과 우리 나라도 내린다>고 하였다. 항상 보따리에 국어책을 들고 다니면서 열강을 하였기에 사람들이 <주보따리>라고 불렀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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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겨레 정신의 영원한 거울이요 한글문화의 불멸의 봉화이다."
- 비문 중에서.


주석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안중식 옮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첩』, 뒷표지, 지식여행, 2005.
2> 김석득, 『우리말 연구사』, 232쪽, 정음문화사, 1983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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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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