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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을 강타하는 듯했던 코로나19 사태가 서쪽으로 번져가 이란과 남동유럽을 괴롭히더니, 서쪽으로 더 흘러가 이제는 미국과 서유럽을 타격하고 있다. 처음에는 태평양 서쪽에서 두드러졌던 이 사태가, 지금은 대서양 양안에서 대규모 현상을 이루고 있다.

이 사태의 터널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분명해진 것은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대서양 양안의 미국과 서유럽이 최대 피해를 입고 있으며, 이 나라들의 문제해결 능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의외로 낮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경우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불과 12년 만에 새로운 재앙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충격이 훨씬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8년 위기가 미국에게 준 두 가지 충격이 있다. '미국의 세계정책 중 하나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대기업 우선+국경 타파)의 정당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과 '중국위협론을 부각시켜 끊임없이 견제했는데도 결국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미국이 제1주적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바꾸고, 중국의 인도양 및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가동된 것은 2008년 이후로 미국인들이 느끼는 절박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코로나19가 최초 발생지인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기대처 능력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킬 뿐 아니라 이들의 세계진출 무기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마저 폭로시키고 있다.

그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구해온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일본은 자본 및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만 신경을 썼지, 그것에 편승해 바이러스까지 덩달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대기업 특히 다국적기업의 이윤만 중시하다가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 같은 부작용에는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자본과 노동이 국경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위해 미국과 동맹국들이 닦아놓은 루트가 바이러스의 세계 확산에 역이용되는 현실이 그 점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제국이 닦아놓은 루트가 도리어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가 되고 이것이 제국의 약화를 부추기는 현상은 로마제국의 전성기 끝자락에도 있었다. 로마제국에 의한 질서 유지 및 국제 평화(팍스)가 이루어졌던 '팍스 로마나' 기간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재위 161~180년) 때에 있었던 일이다.

인류 문명의 길을 따라 번진 역병
 
 로마 주화에 새겨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로마 주화에 새겨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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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에서는 역병이 페스틸렌시아(pestilentia)로 불린다. 페스트(pest)의 어원이 되는 말이다. 전성기의 로마를 강타한 역병은 당시 황제의 성을 따서 '안토니우스 역병' 또는 '안토니누스 역병'으로 불리고 있다. 역병을 기록으로 남긴 의사의 이름을 따서 '갈레노스 역병'으로도 불린다. 

이 역병은 서기 165년 혹은 166년에 발병해 180년 또는 189년까지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병의 실체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천연두(두창·마마)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 전염병의 최초 발생 상황을, 미국의 과학저술가인 아노 카렌(Arno Karlen, 1937~2010)의 <전염병의 문화사(원제는 Man and Microbes)>는 이렇게 설명한다.

"164년, 로마의 한 군대가 지방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시리아로 파견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2년 동안 싸우면서 전상뿐 아니라 낯선 전염병으로도 죽어갔다. 166년, 이 군대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전염병과 함께 왔으며, 이것은 제국의 모든 지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 역병은 14년 동안이나 창궐하면서 이탈리아 인구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400~700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역병 확산을 부추긴 것은 인류 문명이 만든 이동 경로였다. 지금 식으로 표현하면, 로마제국이 자국 중심의 세계화를 위해서 만든 루트를 따라서 역병이 번져갔다. 2014년에 <서양고대사연구> 제37권에 수록된 김경현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논문 '안토니누스 역병의 역사적 배경과 영향'은 이렇게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역병은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문명의 부산물이었다. 로마제국의 발전과 문명의 교류는 병원균의 발전과 교류를 동반했다.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인 셀레우키아(중동지방 도시)에서 전염병이 발생하고 로마제국의 도로와 도시를 따라 확산되었음은 이를 방증한다."

역병으로 초래된 직접적 피해는 인구 감소였다. 아노 카레은 위의 수치에 더해 "이 병이 극에 달했을 때 로마에서만 매일 2000명이 죽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수치들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점에는 학자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2014년 10월호 월간 <문예춘추> 기고문에 "네덜란드 여자들까지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라며 "그 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썼다가 국제적 비판을 받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제11권은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인해 인명이 희생되는 양상을 "역병으로 쓰러지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며 "마치 출혈이 좀처럼 멎지 않고 피가 조금씩 계속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죽음의 천사가 문을 두드리는 모습. 로마제국의 전염병을 묘사한 그림이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쥘 엘리 들로네(Jules-Elie Delaunay)의 작품.
 죽음의 천사가 문을 두드리는 모습. 로마제국의 전염병을 묘사한 그림이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쥘 엘리 들로네(Jules-Elie Delaunay)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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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국가에서 백성은 조세 수입원인 동시에 병력 자원이었다. 약 15년간이나 전염병 피해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은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처럼 출혈이 멎지 않아 위태해지는 상황에 비견될 만했다. 백성의 대규모 감소는 제국의 경제와 군사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위 김경헌 논문에 인용된 외국 학설들에 따르면, 역병 발생 이후에 임대농지의 크기가 절반보다 훨씬 이하로 떨어지는 사례들이 발견됐다. 또 임대 기간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사례들도 발견됐다. 김경현 교수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농지를 빌려 경작하는 농민들의 숫자가 감소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사례들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농업생산에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161~192년 기간에는 황제의 재정 지원을 받은 공공건물 건축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지방 정부들이 경쟁적으로 짓던 목욕탕·극장·아치 등이 이 시기에 건축되지 않았다는 것은 역병으로 인한 재정능력 약화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인구 감소는 군사력 약화로도 이어졌다. 위 논문에 인용된 외국 학설에 따르면, 황제가 근위대 등에서 제대하는 군인들에게 지급하던 청동 제대증이 167년부터 16년간은 발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병 충원이 되지 않아 제대를 시켜줄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또 노예·검투사는 물론이고 산적들까지 군인으로 충원됐다고 한다. 일반 백성들한테서 병력을 충원하는 일이 예전 같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군사력 약화는 주변 민족들이 세계제국을 얕보고 공격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로마인 이야기> 제11권은 "특히 제국의 가장 중요한 방위선인 라인강과 도나우강의 군단 기지에서 계속 페스트 환자가 발생한 것이 로마에는 뼈아픈 타격이었다"며 "로마의 방위력이 약해진 것을 눈치챈 야만족이 이 북방전선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상황들은 결국 제국의 약화로 이어졌다. 안토니우스 황제는 이 역병으로 자기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팍스 로마나를 자기 대에서 끝내는 군주가 됐다. 역병이 확산된 시점에 팍스 로마나가 끝났다는 것은 역병이 세계패권에 영향을 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돼도 무방할 것이다.

안토니우스 역병이 로마제국에 영향을 준 것처럼, 코로나19가 미국의 위상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주게 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사태가 미국의 재정과 군사력 가동에 어떤 파급력을 얼마나 끼치느냐에 따라 팍스 아메리카나에 영향을 줄지, 주게 된다면 어느 정도나 주게 될지가 판가름될 것이다. 북한 및 이란 핵문제, 중국 경제의 급부상, 중남미의 반미노선 등과 더불어 코로나19 역시 미국의 세계 패권과 관련해 관찰할 만한 대상으로 급부상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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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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