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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이른바 '검언유착' 논란과 관련된 채널A 기자와 검사 1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민언련은 7일 오전 10시 고발장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고발인들을 형법 제283조(협박) 등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라고 밝혔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이른바 "검언유착" 논란과 관련된 채널A 기자와 검사 1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민언련은 7일 오전 10시 고발장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고발인들을 형법 제283조(협박) 등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라고 밝혔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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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채널A 법조팀 A기자와 검찰의 유착으로 인한 파문이 점차 커지고 있다. A기자가 금융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이철 전 신라젠 대주주와 그 지인에게 접근해 검찰총장 최측근 검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유시민의 비위를 제보하면 선처받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한 사건의 파장이 중대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보도 다음 날인 4월 1일, 추미애 법무장관은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합리적으로 의심을 배제할 수 없는 단계라고 본다면 감찰이라든가,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며 법무부 감찰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7일에는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이 A기자와 '성명불상'의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8일에는 방송독립시민행동(방송의 정치적독립과 국민참여 방송법 쟁취 시민행동)이 정부 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채널A에 대한 승인 취소를 촉구했다.

비판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채널A는 취재윤리 위반 사실을 자인했다. 김재호 채널A 및 <동아일보> 대표가 9일 방송통신위에 출석해 위반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는 진상조사 및 추가 검토를 거쳐 채널A에 대한 재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채널A의 존폐 문제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슬롯머신 사건, 급변한 언론의 반응
 
 93년도 당시 KBS 보도
 93년도 당시 KBS 보도
ⓒ 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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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외부세력의 이 같은 유착은 과거에도 이따금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1993년에는 언론·재계·관계·정계의 유착이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오르는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이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각계 인사들이 정덕진 형제의 슬롯머신 업체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일로 인해 불거진 이 스캔들은, '6공 황태자' 박철언과 이건개 대전고검장 등이 김영삼 정권하에서 구속된 대형 사건이었다.

사건 초기에 언론들은 대체로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 그해 5월 5일 자 <동아일보> 사설 '도박 마피아의 권력유착'은 "빠찡꼬 업계의 대부 정덕진의 기업 규모나 범죄 규모는 선량한 시민에게는 상상의 범위를 넘는다"며 "너무 어이없고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을 지경"이라고 한 뒤 "검찰의 수사를 주시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조선일보> 역시 검찰의 엄정 수사를 희망했다. 5월 10일자 기사 '빠찡꼬 수사정보 유출 의혹'은 검찰의 내사 정보가 사전에 유출되고 관련자들이 해외로 도피했다면서 방해 세력에 의해 수사가 부실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런데 5월 말부터 그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슬롯머신 스캔들은 온통 루머뿐'이라며 수사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표출하는 쪽으로 자세를 바꾼 것이다.

5월 31일 자 <조선일보> 기사 '루머 누가 왜 만드나'의 첫 문장은 "루머가 판을 친다. 모두는 루머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는 약간 시적인 문구로 시작해 "사정 바람에 편승한 각종 루머가 사회 각 분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며 "최근의 슬롯머신 관련 루머가 좋은 예다"라는 말을 던진다. 수사를 계속하다가는 대한민국이 온통 루머에 빠지고 나라가 결딴날 듯한 분위기를 풍긴 것이다.

그들의 태도가 확 달라진 이유는 명확하다. 재계·정계·관계만 연루된 게 아니라 언론까지 뒤엉켰다는 사실이 폭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6월 8일자 <한겨레> 기사 '슬롯머신·카지노 관련 보도... 언론계 혐의 치졸한 꼬리 빼기'는 <조선일보> 등이 갑자기 표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5월 27일 검찰의 수사확대 방침이 전해지고 잇달아 28일 카지노 비리 수사방침이 알려지면서 유착 혐의 언론인들의 명단이 계속 흘러나오자, 투전기 업소와 카지노 비리에 대한 추적 보도를 계속하면서 시종일관 유착·비호 인사 수사 확대를 요구해온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다른 신문들은 혼란스럽고 축소 지향적인 논조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5월 31일 검찰이 혐의 입증 곤란을 내세우며 발을 빼면서부터, 이들 신문은 뒤집어진 검찰의 방침에 적극 호응해 침묵·축소에서부터 본질의 왜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검찰의 수사 종결을 성원했다."


한국 언론의 이 같은 부조리는 언론과 정권의 관계에서부터 공고해졌다. 언론이 대중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독재정권의 언론정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박정희의 언론정책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건물에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대표는 조선일보 방상훈 대표의 동생이며, 조선일보 사무실 일부가 입주해 있다.
 2019년 3월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건물에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대표는 조선일보 방상훈 대표의 동생이며, 조선일보 사무실 일부가 입주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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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커뮤니케이션 이론> 제10권 제4호에 실린 최영재 한림대 교수의 논문 '공영방송 보도국의 정파적 분열: 민주화의 역설, 정치적 종속의 결과' 속에 "언론에 대한 정치적 지배와 통제 욕망이 상대적으로 강한 보수 정권"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 문구처럼 보수 정권들은 언론에 대한 통제 욕망을 강하게 표출했다. 선비 문화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로 사회적 독자노선을 지향하는 언론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조차 자기 주도의 종속 구조 속에 편입시키려는 보수정권의 시도가 항상 있어 왔다. 그중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언론정책은 이후 정권들의 참고가 될 만한 측면들을 갖고 있다.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월간 <말>에 제보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김주언 <서울경제신문> 기자는 1989년에 <현상과 인식> 제12권 제4호에 기고한 '군부정권의 언론통제와 언론운동'에서 "무력으로 정권을 휘어잡은 군부세력 등은 정권의 비정통성을 은폐하기 위해 비판적인 언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하는가를 제1의 목표로 삼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 정권이 언론을 끌어들이고자 구사한 각종 방법들을 소개한다. "군부 정권의 당근과 채찍에 의한 언론통제는 80년대 이후 권언유착의 단계를 넘어서 언론을 정권유지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내는 권력의 상부구조로 편입시켰다"고 말하면서 김진홍의 <언론통제의 정치학>을 근거로 그 같은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이에 따르면, 박 정권은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각종 입법, 프레스카드제, 정부기관 대변인제도, 정부기관 취재제한 조치, 언론기관에 대한 협조 요청 등을 통해 언론과의 관계를 밀착시키는 한편, 정보기관원의 언론기관 출입, 임의동행 형식의 연행 및 조사, 기자에 대한 폭언·폭행 등을 통해 기자들을 위협하는 방식을 구사했다.

또 언론사 사주나 경영진을 통해 기자들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자 광고탄압이라는 수단도 동원했다. 이미 광고계약을 체결한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어 신문 발행 당일에 광고란이 백지로 나가도록 하는 방법을 구사한 것이다. 그 같은 광고탄압의 본보기는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박 정권을 상대로 자유언론 수호운동을 벌인 데 대한 보복이었다. 위 기고문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언론인들의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압살하기 위해 경영주를 통한 간접적 통제 방식으로 광고통제를 가했다. 언론계가 겪은 가장 큰 시련으로서 한국 언론사에 기록될 동아일보의 광고통제는 74년 12월 20일부터 시작되어 75년 7월 14일까지 무려 7개월 동안이나 계속됐다."

위와 같이 언론에 대한 통제의 방식도 상식을 벗어났지만, 그에 대한 회유의 방식 역시 상식을 초월했다. 박 정권이 언론에 제시한 당근 역시 매우 파격적이었다.

<한국언론정보학보> 2013년 5월호에 실린 채백 부산대 교수의 논문 '박정희 정권의 언론정책과 지역 신문: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는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채찍과 당근 즉 통제와 회유의 양면 정책"이었다면서 이런 내용을 소개한다.

"정부의 언론통제에 협조 내지는 순응하는 반대급부로 언론사에 여러 가지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여 이를 바탕으로 기업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언론에 제공한 경제적 혜택의 일환으로, 1960년대의 차관경제 속에서 언론사들에 매우 유리한 조건에 차관을 제공하였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 차관을 통해 고속윤전기를 도입하였다. 1968년 11월 조선일보가 차관을 들여 코리아나호텔을 지은 것을 시초로 1970년도에 동아일보와 서울신문, 경향신문, 중앙일보가 차관으로 고속윤전기를 도입하였다."

광화문광장 남쪽 코리아나호텔과 주요 신문사들의 고속윤전기 도입이 박 정권의 언론정책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통제정책과 더불어 이런 당근 정책이 언론과 정권의 유착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고, 이것이 권언유착의 폐해를 낳은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권언유착이 언론과 정권은 물론이고 언론과 재계·관계·검찰을 유착시키는 저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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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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