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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중앙대에서 있은 김누리 교수와의 인터뷰 모습. 김 교수는 "우리교육은 반교육"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그에 대비되는 독일교육의 면면을 소개하였다.
 지난 6일 중앙대에서 있은 김누리 교수와의 인터뷰 모습. 김 교수는 "우리교육은 반교육"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그에 대비되는 독일교육의 면면을 소개하였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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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따려고 하는 공부, 100년 했으면 됐다"(http://omn.kr/1n8j0)에서 이어집니다.

- 앞서 '대학 통합 네트워크' 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는 이미 20년 전부터 연구되어 저서도 많이 나오고 운동가들도 많았으며 정치인들도 관심을 기울인 대안이다. 게다가 2016년 민주당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체 왜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 너무 이해가 안 가는데?

(웃으며) 나도 이해가 안 된다. 교육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이 지금 집권세력, 소위 민주화세력에게도 부족한 것 같다. 지금 집권세력의 역사적 과제가 있다면 교육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왜냐면 교육개혁은 하나의 영역에서의 개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을 제대로 해놓으면 새로운 인간들이 자라난다. 그것은 하나의 정파의 승리를 넘어 한국사회의 새로운 정치문화, 정치지형을 만드는 일이다.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아이들이 자라나니 그렇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그 생각을 못한다. 눈앞의 정치적 이해만 생각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지향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너무 안타깝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비전을 가지는 것인데, 한국에선 그런 정치인을 볼 수가 없다. 그게 국민들에게 큰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눈앞의 정치공학적 이해타산에 밝다. 긴 장기적인 꿈을 꾸는 정치인들을 보기가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이라면 시도해봤을 수도 있다.

정치적인 이해타산만 따진다면 교육개혁이 (당장) 정치적으로 많은 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판 자체를 바꾸는, 인간 자체를 바꾸어 새로운 인간들이 성장하게 하는, 100년 동안의 한국사회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그런 구상이다. 그 정도의 구상을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게 (대학 통합 네트워크 등을 실현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68혁명 직후 독일의 빌리 브란트가 내세운 선거구호는 '교육사회'였다. 정말 대단한 비전가다. 그리고 그 비전이 구현이 된 것이 오늘의 독일이다. 독일사회 전체를 바꾸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정치가가 없다.

(빌리 브란트는 '교육사회, 교양사회'를 주장하며 모든 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제안하고 실현해 나갔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대학 등록금까지 무상으로 지원받는 것에 더하여 학생증으로 학교에서 200km 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생활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 기자주)

결국 시민사회가 그런 사회로 가도록 정치가를 움직이는 압력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학부모이자 교사였던 어떤 이가 '우리가 촛불로 정권도 바꿨는데 교육촛불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쓴 글을 봤는데 그것도 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는, 대학개혁을 통해 교육개혁이 시작됐고 다시 교육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이 시작됐으며, 그 사회개혁은 굉장히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새로운 아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니 그렇다.
 독일에서는, 대학개혁을 통해 교육개혁이 시작됐고 다시 교육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이 시작됐으며, 그 사회개혁은 굉장히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새로운 아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니 그렇다.
ⓒ Bildarchiv preussi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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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혁명 없이 교육혁명이 가능할까? 사회가 불평등한데 어떻게 교육을 평등화할 수 있을까?

68혁명의 모습을 두 가지로 크게 프랑스의 길과 독일의 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사회개혁을 통해 교육개혁으로 갔지만 독일은 그 반대로 교육개혁을 통해서 사회개혁으로 갔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개혁이 어느 정도까지 깊은 층위까지 이루어졌는가 하는 맥락에서 보면 독일이 (프랑스보다) 훨씬 더 잘 이뤄진 것 같다.

이는 일종의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68혁명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젊은이들이 특히 자본주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을 중시했고 노학연대라는 말이 그때 나오기도 했다. 프랑스에선 사회개혁운동이 굉장히 활발했다. 하지만 독일에선 긴급조치법이 발동되는 등 시위에 대한 탄압이 심각해 학생들이 대학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학생들은, '일단 대학개혁부터 하자'며 전략을 바꿨다.

그래서 프랑스에 선 사회개혁이 중심이 되어갈 때 독일에선 대학개혁이 중심이 되어갔다. 68년, 69년을 거치면서 전 세계에서 독일대학이 가장 민주적인 대학이 됐다. 거기서 유명한 '3분할 원칙'이 나오기도 했다. 3분할 원칙이란, 대학에서 교수, 학생, 조교‧강사라는 세 주체가 권력을 동등하게 나눠 갖는 것을 말하는데 전 세계에서 유래 없는 이 원칙으로 베를린 대학의 총장 선거에서 롤프 크라이빗이란 사회연구소 조교가 30세에 총장이 돼 8년간 연임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독일대학은 급진적으로 민주화됐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대학이 민주화 되면서 대학 내의 커리큘럼이 확 바뀌었다. 교육학도 인간을 해방하는 교육, 비판적 사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당시 나온 유명한 말이 바로 '제도 속으로의 행진'이다. '이제 우리가 사회를 바꿔야 하니 사회 제도 속으로 들어가자'면서, 대학에서 새로운 제도와 신념을 배운 학생들이 사회 속으로 제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특히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70년대 초부터 이들이 사회로 나아갈 때 가장 중시한 것이 학교와 언론이었다. 학교와 언론은 일종의 이데올로기 기구 아닌가. 그렇게 교육개혁이 사회개혁으로 확산되어갔다.

이렇듯 독일에서는, 대학개혁을 통해 교육개혁이 시작됐고 다시 교육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이 시작됐으며, 그 사회개혁은 굉장히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새로운 아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니 그렇다. 그것이 독일의 교육개혁 방식이었다. 우리는 교육개혁을 입시 방향을 바꾸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새로운 한국이라는 공동체 그 안에 사는 새로운 인간, 새로운 한반도, 그걸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개혁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 역사는 해방의 역사였고 모든 해방은 자기 해방

- '선 교육개혁, 후 사회개혁'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주장으로 정리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개혁도 필요하단 얘기를 하는데, 공무원시험에서는 블라인드채용을 도입할 수 있다 해도 사기업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독일에서 사기업 채용 시 그런 작동원리가 있나?

채용 등에 있어 그런 작동원리가 있다. 이는 전체 틀에서 사회민주화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컨대 독일 지멘스에서 채용한다고 할 때 지멘스 전체의 채용이 투명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동자 이사가 50% 이상이기 때문이다. 회사 운영 자체가 민주적 구조로 되어 있어 투명성이 자명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회사의 규모에 따른 차별 등은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 99%가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자들이 앉아있기 때문에 잘 되지 않고 있다. 이는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로 그렇게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우리는 한국사회가 왜 이런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의회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주의자가 99%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시장이 너무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고 시장에서의 강자가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조율하는 형태로 정치 구조를 이루고 있어 이렇게 된 거다. 말하자면 대기업과 정규직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할 수 있는 구조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 독일의 교육개혁은 68혁명을 통해 가능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68혁명이 없었으니 우리에겐 희망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특히 우리사회의 청소년‧청년들에게 해줄 말은?

68혁명이 있어야만 교육혁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 교육혁명을 이루려면 미국 모델을 절대시하던 우리의 관점을 좀 상대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코로나 상황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정 정도 성장했다. 대구를 보면서 우리 속에서 의연함이 자랐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00년간 어느 나라도 겪지 않은 끔찍한 역사를 겪었다. 식민의 역사, 분단의 역사, 내전의 역사, 군사독재의 역사. 이런 끔찍한 한 세기를 겪은 정말 아주 예외적인 나라인데 그 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연함도 동시에 좀 키워준 것 같다. 이번에 보니 그렇다.

우리의 성숙한 의식을 어떻게 정치적인 동력으로 활성화할 것인가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또 그런 것이(우리의 잠재력이) 드러난 게 촛불혁명이기도 한데 이것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무언가 이뤄내기보다는 쉽게 사그라지는 불꽃이 될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믿는다. 그 잠재력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변화의 동력으로 끌어낼 수 있는가, 그것이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잘 해낼 수 있는 (정치적)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다.

다음으로 젊은 세대에게는 우선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다. 우리 세대는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어떻게 이런 세계를 아이들에게 남겨주는지. 내가 교육에 대해 발언해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동인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어린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어디 있는가. 이 고통을 견디면 승자는 행복한가. 그게 아니다. 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자들도 불행하다. 승자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불행하다.

2018년 서울대 심리상담 결과를 보면 서울대 아이들의 50% 이상이 우울증 상태란다. 한국 교육의 승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보면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한 상태에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아이들은 1등을 해야 한다는 그 불안을 지속적으로 십몇 년 동안 견디며 압박을 버텼으니 그 내면이 어떻겠나. 그들도 이 질서의 피해자다. 루저라고 하는 수많은 대다수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더 이상 이 질서는 지속 자체가 안 된다고 본다. 이게 더 낫냐, 저게 더 낫냐의 문제가 아니다. 너무 인간들을 망가트린다.

그럼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18세 학생들이 약 50만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를 보면 50만 표 이상 차이가 난 선거가 별로 없다. 딱 두 번 있다. 이명박,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때. 나머지는 49 대 51, 2~3% 차이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새로 투표권을 얻은 고3 학생들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유권자 연대 같은 것을 결성해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자를 뽑겠다는 강력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 50만 표가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못 이루더라도) 다음 대선에선 아마도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학생들을 해방시키는 그런 방안들을 가지고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을 무력하고 무지한 상태로 잡아두려 한다는 사실을, 그러한 책략이 있음을 젊은이들이 스스로 인지하는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단 한 번도 타자가 누군가를 해방시켜준 적은 없다. 인류의 역사는 해방의 역사였고 모든 해방은 자기 해방이었다. 여성 해방은 여성이 했고 흑인 해방은 흑인이 했다. 학생들 해방의 주체는 학생들 자신이어야 한다. 그것은 역사과정을 돌아보면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투쟁의 선봉에 고등학생들이 있었고 민주화운동에서도 학생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젊은 학생들은 자신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만들어놓은 룰 속에서 내가 경쟁에서 이겨서 이 체제 안에서 지배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를, 오히려 그 생각이 자신을 더 큰 희생자로 만들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라든가 나와 같은 연구자라든가 학부모라든가 하는 교육 관계자들이나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자기해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학생들이 교육개혁의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짐을 지운 거대한 무력감에서 해방되는 것, 무력감을 떨치는 것. 학생들이 해방되면 주변의 많은 원군들이 같이 움직일 거라는 것. 그것을 아는 것이다.  

교육이 4.15 총선 이슈 못되는 현실 안타까워

김누리 교수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독일의 교육'은 학생, 교사, 학부모 등 우리사회 교육주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 방송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세상'이 있음에 대한 놀라움만큼 그와 너무도 대조적인 우리의 현실이 새삼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을 보며 내가 가장 충격 받은 것은 '독일 초등학생들의 시위' 모습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고민하기엔 너무 어리다'며 눈 감고 귀 막도록 어른들의 보호(?)를 받는다. 그조차 독일과 다른 모습이지만 더 기막힌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 보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도 가혹한 경쟁적 학습에 있어서는 보호는커녕 오히려 그에 적극 뛰어들어 친구들을 밟고 자신을 착취할 것을 장려한다. 눈 감고 귀 막은 아이들은 시야 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오로지 한 방향만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 그 방향의 끝에 놓인 것은 대학, 명문대학, 명문학과다.

코로나19가 학교 문들을 닫아도 학원 문들은 닫지 못했다. '코로나보다 두려운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되든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만 있다. 김 교수는 이런 반(反)교육에 대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대학평준화 운동은 이미 20년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김 교수가 한 방송에서 독일 교육과 우리 교육을 낱낱이 비교하며 우리 교육의 참혹함을 새롭게 직시하도록 한 뒤 다시금 그 대안을 언급하는 지금, 그 불가능해보였던 대안에 대한 불씨, 교육평등과 사회평등 꿈의 불씨가 다시금 피어나는 듯하다.

지난 조국 사건 당시 우리는 교육문제로 뜨거웠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정치권의 침묵과 혼돈 속에서 교육은 4.15 총선의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누리 교수의 지난 방송에 대한 우리들의 뜨거운 관심은 새로운 불씨가 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교육에 관심을 갖고 표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를, 선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총선 주자들이 교육을 고려하여 공약의 방향을 바꿔주기를 바란다.

그 간절함을 담아 김 교수와의 인터뷰를 최대한 생략 없이 모두 담아내고 영상의 일부도 함께 게시한다. '코로나보다 두려운 루저'가 존재하는 우리 교육과 사회. 김교수의 말대로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다. 100년 했으면 됐다.
 
▲ 김 누리 교수님 인터뷰 6 (마지막)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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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누리 교수, #교육혁명, #차이나는 클라스, #4.15 총선, #코로나 보다 두려운 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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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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