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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무사유는 범죄, 난 이 말을 좋아한다"(http://omn.kr/1n7gk)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은 1968년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좌시위 하는 독일 학생들 모습. 김교수에 따르면 독일의 개혁은, 대학개혁에서 교육개혁으로 다시 교육개혁에서 사회개혁으로 나가갔기에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이 됐다. 이상사회를 꿈꾸는 대학에서 시작된 개혁을 통해 '새로운 인간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사진은 1968년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좌시위 하는 독일 학생들 모습. 김교수에 따르면 독일의 개혁은, 대학개혁에서 교육개혁으로 다시 교육개혁에서 사회개혁으로 나가갔기에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이 됐다. 이상사회를 꿈꾸는 대학에서 시작된 개혁을 통해 "새로운 인간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 Bildarchiv preussi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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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우리교육이 반(反)교육이라고 진단했는데 그 대안이 궁금하다. 진정한 교육으로 나아가려면 대학입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대학입시 '개선'은 답이 아니다. 대학입시 '폐지'가 답이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대입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단 한 번 성공한 예가 없다. 대입 개선을 하면 우리사회 기득권들이 늘 가장 선도적으로 적응했고 그러면서 교육이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우리는 50년간 (대입 '개선'은) 실패한다는 것을 배웠다. 입시제도 개선만으로는 교육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됐다. 입시는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폐지의 대상이다. 입시를 폐지해야 된다.

입시를 폐지해야 비로소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 정상화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다. 새롭게 자라난 아이들을 통해 한국사회가 비로소 새로운 나라가 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길이라고 생각한다.

- 대학입시를 없앤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

대학입시 폐지 우리로선 그런 상상을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다. 이미 유럽 대다수 나라들이 하고 있다. 독일은 아비투어, 프랑스는 바칼로레아라는 이름의 졸업자격시험만 있어 대학에 비교적 자유롭게 다 갈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고 대학 간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 프랑스 등의 학생들은 우리와 같이 상대평가를 전제로 한 대학입학시험이 없고 절대평가에 의한 고교졸업자격시험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 고교 졸업생 대부분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원하는 시기에 진학할 수 있다. 실제 지난달 4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김누리 교수의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독일의 교육' 방송 당시 스튜디오에 나온 독일인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씨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120명 중 단 1명만 뺀 모두가 대학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 기자주)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엘리트 대학 시스템, 대학이 서열화된 시스템의 원형은 미국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점이 (유럽과) 다르다. 우리는 코로나를 맞아 지금 숨겨진 미국의 민낯을 보고 있다. 미국에서 저렇게 코로나가 엄청나게 번져가는 이유는, 초기에는 검사에 4백만 원까지 들었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공공의료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의료를 시장에서 구매할 상품으로 본다. 심지어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렇다. 교육도 똑같다. 미국에선 교육도 시장에서 구매할 상품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하버드, 예일, 스텐포드 중심의 서열이 있는 거다. 우리 대학들에도 그와 유사한 서열이 존재한다.

의료와 교육조차도 시장구매상품으로 보는 구조, 이것을 이제 깰 때가 됐다. 이제는 미국과 같은 엘리트 대학 체제, 대학 서열 체제를 새롭게 보며 유럽모델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 아무리 그래도 입시 폐지는 너무 파격적인 듯한데, 우리 교육의 나아갈 방향과 대안을 좀 더 말해 달라.

우리 교육을 반(反)교육에서 진정한 교육으로 바꾸려면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경쟁교육에서 연대교육 내지 교감교육으로', '인적자원을 기르는 교육에서 인간을 기르는 교육으로'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구성원 각자가 경쟁하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이 결정되게 하여서는 안 된다. 교육이 기회의 평등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나는 경쟁교육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낯선 얘기다. 경쟁을 안 하고 어떻게 교육을 할까 생각한다. 그런데 경쟁교육을 하는 한 '사유하는 인간'을 기를 수 없다. 교육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경쟁교육을 지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많은 전제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서열화된 대학구조가 문제다. 요즘은 심지어 태교 때부터 경쟁교육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없앤다면 중고등학교에서의 경쟁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 결국 모든 문제가 서열화된 대학구조로 모일 수밖에 없고 이것이 해결된다면 우리도 교육다운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 아이들을 경쟁시키지 않고 아이들 하나하나의 소양 이것에 주목하고 이것을 최대한 끌어내는 본연의 교육, 말 그대로 '에듀케이트(educate : 어원에 따라 김 교수는 교육이란 '학생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유한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자주)'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유럽엔 소위 엘리트 대학 체제, 대학 서열 체제를 가진 나라가 거의 없다. 대학 서열을 없애는 것은 꿈이 아니고 유럽에선 상식에 해당되는 얘기다. 소르본 대학은 유럽의 대표적인 명문대였지만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68혁명 때 없앴다. 거리에 수십만이 나와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도 존엄한 인간이다' 라고 외쳤다. 그로써 파리 제1대학, 제2대학 등으로 대학들이 재편되었고 소르본 대학은 1,2,4 대학으로 나뉘게 됐다. 다른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대학이라든가 독일 대학에도 서열 체제가 없다.

독일에도 좋은 대학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훔볼트 대학 등은 전통 깊은 대학인 것이지 엘리트 대학이 아니다. 취업에서의 차이 등이 전혀 없다. 독일에서도 대학 랭킹을 메기는 시사 잡지 같은 것이 있지만 거의 항상 꼴등이 (전통 깊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훔볼트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이다. 왜 그럴까. 학습여건, 연구여건 이런 것으로 순위를 매기는데 학생들이 많이 몰려 그런 게 안 좋으니 맨 바닥인 거다. 독일에서 소위 좋은 대학이라고 하는 대학은 대부분 우리가 이름을 잘 모르는, 처음 듣는 대학이다. 조금 알려진 대학, 유명한 대학은 있어도 소위 엘리트 대학이 있는 건 아니다.

독일에선 어느 대학을 다니다가 다른 대학 다른 과를 가고 싶으면 큰 무리 없이 다 전학을 할 수 있다. 많은 독일 학생들은 보통 2, 3개 대학을 다닌다. 좀 다니다가 자기 적성을 테스트해보고 대학이나 과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때 심리학이 너무 재밌어서 베를린 대학 심리학과를 갔다고 하자, 한 학기를 다니다가 다른 게 더 재밌어 보이면 다른 과나 대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된다.

관련한 많은 구체적 안들이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많은 학자들을 통해 논의되어왔고, 그 중 유력한 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대통령의 공약만 지켜도 대학 서열화 폐지의 방향으로 상당부분 나아간다고 본다. 그 공약은 바로 '대학 통합 네트워크 구축'이다.

우선 국립대학들을 네트워킹 해서 제주대 국립1대학, 서울대 국립5대학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대학을 넘나들 수 있게 열어놓은 뒤 졸업할 때 국립대 졸업장을 주면 된다. 내가 제주도 사는 학생이면 제주도에서 두 학기 다니다가 다음엔 서울에서 한 번 들어볼까 해서 옮길 수도 있게 열어두는 거다.

사립대학들의 경우는 우선 대학 등록금을 한국 정도 국가가 되면 국가에서 대야 한다. 일본도 대학 등록금 무상 논의가 있고, 심지어 미국조차도 워렌과 샌더슨이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하고 대학생들의 학비 부채를 탕감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우리는 총선에서 지금 그런 공약조차 없다. (정의당이 대학무상교육을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민주당, 통합당은 관련 공약이 없다. 관련 논의가 이번 총선의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 기자주) 대학무상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 등록금을 국가가 떠맡게 되면 당연히 사립대학들을 공영화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서서히 점진적으로 서열체제를 없애가야 어느 대학을 나왔다는 게 의미가 없게 되면서 우리 아이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대학에서 정말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 간판을 위해서 하는 공부, 100년 했으면 됐다. 이제는 그만 끝낼 때가 됐다.
 
미국의 노동변호사 토마스 게이건이 자유시장주의 미국사회와 보편적 복지주의 독일사회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비교한 뒤 마지막에 독일 이민을 택하는 모습을 그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김누리 교수의 교육혁명이나 복지국가에 관심 있는 이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미국의 노동변호사 토마스 게이건이 자유시장주의 미국사회와 보편적 복지주의 독일사회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비교한 뒤 마지막에 독일 이민을 택하는 모습을 그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김누리 교수의 교육혁명이나 복지국가에 관심 있는 이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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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입 시험이 사라지고 고교졸업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에 간대도 학과 서열은 존속하거나 더 심해지지 않을까? 의대 등 인기학과 쏠림현상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독일에도 학생들이 선호하는 인기 학과가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해 선발 및 정원제한을 할 수밖에 없는 학과들, 이른바 '정원제한학과'(NC)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 선발 방법에서도 독일의 교육관이 잘 드러난다.

선발이 필요한 경우라도 '줄 세우기'가 우리만큼 살인적이지는 않다. 어느 정도냐면, 과거에는 '추첨'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 요즘엔 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인 아비투어의 성적을 반영하는 대학도 생겼지만 여기엔 제한이 있다. 선발 시 대학이 성적을 20% 이상 반영할 수는 없게 하고 있다. 나머지 20%는 대기기간을 반영해야 하고, 60%는 대학이 자유재량으로 결정한다. 즉 독일에서는 성적이 조금 모자라는 학생도 3~4년 대기하면 의대에 갈 수 있고, 그 기간에는 관련 분야의 학점을 미리 따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성적이 미흡하지만 대기 기간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이 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는 연구 보고서도 많고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다.

사회에서 추첨제가 허용된다는 것, 낙오한 학생의 대기기간을 중시한다는 것.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추첨제의 허용은, 특정 학과에서 교육 받을 기회를 최대한 모두에게 주어야 진정한 '교육권의 보장'이라는 전제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교육자원이 부족할 때는 '추첨으로 결정해도 이는 차별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 의미다. 대기기간을 중시한다는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을 교육기관에서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 교육을 어떻게 바꾸든 좋은 직업이나 지위가 한정돼 있는 한 그에 대한 다툼과 그 해결방법으로서의 줄 세우기와 선발 같은 것들이 없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질문들은 모두 자유시장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인들에게는 자유주의적 의식만이 유일하고 보편적으로 여겨진다. 한국인들에게는 '더 소셜(the social)'이 결여되어 있다.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반면 유럽인들은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의식을 갖고 있다.

독일에선 '사회적이지 않다'는 뜻의 '아조찌알(asozial. '사회부적응자'로 번역된다 - 기자주)'이 가장 경멸적인 말로 취급된다. 그런데 우리는 '소셜'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인다. 저 놈 소셜리스트인가봐, 이 말은 옛날엔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낙인이었다. 한국이란 나라처럼 소셜이 낙인으로 기능하고 부정적인 의미를 함의하는 나라가 없다. 이에 대한 각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란 기본적으로 같이 가야 하는 것이고 나눠야 하는 것이고, 타인의 불행도 나의 책임으로 공유해야 한다. 이런 의식이 한국에 전혀 없다. 이탈리아 철학자 베라르디 같은 경우 그래서 한국인 의식의 특징이 '극단적 개인주의'라고도 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의식이 그러하기 때문에 지금 나오는 것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이 나온다. 일정한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인 일종의 의식, 아비투스 같은 것을 형성하면서 한국인들에게는 '소셜'의 전적인 결여가 펼쳐졌다.

내가 독일에 가서 처음에 경악한 것이 '소셜'이 사회 곳곳에 배어있단 사실이었다. 독일은, 너무나 많은 걸 주었다. 외국인인데도 학비도 안 받고 주택보조금 같은 것도 주고. 한국에서 생전 그런 걸 받아본 적이 없으니 너무 낯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 자란 사람, 한국에서 자란 사람, 대부분이 유럽에서 느끼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그려진 대로 미국적 삶과 독일적 삶은 너무 다른 삶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적 삶의 모습이 당연한 모델, 나아가 선진적인 모델이라며 그것만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민낯을 보지 않았나. 선진적인 모델도 아니고 사실은 미국 자체가 제3세계다. 그걸 우리가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미국인들 자신이 '아메리칸 익셉셔니즘((American exceptionalism : 미국 예외주의)'란 말을 쓴다. 미국은 전세계 구조에서 볼 때 아주 예외적인 나라다. 표준은 오히려 유럽이다. 우리는 미국을 선진국이나 표준이라고 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추구해온 미국적 가치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확실히 보여준다. 훌륭한 사례다.

미국식 삶을 넘어 다른 삶도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기존 가치와 충돌, 갈등, 혼돈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아, 이런 세계 속에서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았구나' 하며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보게 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이 그런 고민을 견인하고 그것이 마찰을 가져오고, 그 마찰이 또 새로운 성찰을 가져오고, 그 속에서 우리가 변해가며 또 다른 변화를 견인하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 고교졸업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평등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시키지 않을까? 교육피라미드를 평평하게 만든다는 것이 좋은 말이긴 하지만 사회불평등은 현실이거늘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치우면 어쩌자는 거냐, 사다리의 공정성만이 중요한 거다라는 주장도 있다. '교육다운 교육'이냐 '계층이동‧신분상승 도구로서의 교육'이냐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은 신분상승의 사다리로서 교육이 작동하는가 그걸 들여다보자.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이 일종의 신분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해주기보다는 기존의 세습된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 같다.

90년대 중반에 유학하고 와서 서울대에서 4년간 강사를 하다가 중앙대로 왔는데, 많이 놀랐다. 예전에 내가 다닐 때만 해도 가난한 애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학이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구나 싶었다. 부와 권력뿐이 아니라 기회까지 독점하는 특권기관이 되었다는 것도 또 느꼈다. 우리나라는 과연 대학들이 과거에 일부 역할 했던 계층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나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한편,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그마저 없으면 지금 한국의 엄청난 계급이나 계층, 부 이런 데에서의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 상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계층이동을 교육으로 푼다는 것 자체가 자유주의적 사고다. 교육에 의한 계층이동 기회 제공, 이것은 계급불평등을 은폐하는 기만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미국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버드, 스탠포드에도 가난한 집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다. 그런데 그게 몇 프로나 되겠나. 그런 식으로 뒷문 좀 열어놓고 야 너희들도 들어와 하며 평등사회의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만 대부분의 명문대 입학생들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들(의 자녀들)이다. 한국사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 내지 완화한다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하겠나.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 이후 교육이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평등한 세상이라는 환상을 주는 기능, 그 기능을 한다. 사회불평등의 문제는 그렇게(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기회 제공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풀 문제다. 나는 이를 교육이란 우회로로 푼다는 것 자체가 상당부분 환상이라고 본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사유하는 교육, 비판하는 교육,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놓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학교의 분위기를 통해서 정의의 분위기가 활성화되는 사회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굉장히 수준 높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독일에서 아이들에게 키워내려는 3대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가르친 것이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억압에 저항하는 능력. 불의에 분노하는 능력. 약자와 억눌린 자의 고통에 교감하는 능력. 이 세 가지를 가르치는 것이 독일 정치교육의 핵심 목표다. 그런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 공동체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을 때 그 사회가 어떻게 가겠나. 그것은 자명하다. 그런 맥락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둘째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2, 3년 내에 이것(교육으로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 이들을 통해 계층 피라미드를 해소하는 것)이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굉장히 많은, 지금 우리가 논의한 것 이상의 전제들이 필요하다.

일단 선생님들이 바뀌어야 한다. 경쟁하지 않는 교육,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교육, 그런 교육을 하려면 선생님들이 거기에 맞는 역량을 갖춰야 하고 단순히 지식만이 아니라 잠재력을 끌어내는 능력을 가진 자로서의 교사로 바뀌어야 한다. 교사양성과정의 변화도 또 같이 가야 한다. 그렇게 가겠다고 합의를 하고 교육개혁위원회를 통해 교사양성부터 사회적 구조변화 이런 문제들이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내가 '교육개혁이란 말은 사실 불가능하고 교육혁명만이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혁명적 변화가 아니면 내가 보기에 불가능하다고 본다. 전체가 같이 가야 한단 얘기다.

- 대학의 서열이 없어진대도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와 관성에서는 어느 단계에서든 서열은 존속될 듯 한데... 우리는 줄세우기를 끊을 수 없지 않을까.

나는 그에 대해 달리 생각한다. 과도기적 혼돈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에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성숙한 의식만 보더라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특히 대구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시민의식에 정말 경탄했다. 많은 대구 시민들이 스스로 이동을 제한하고 사재기도 자제하는 등 대구에선 어떤 형태의 패닉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이 존재함을 보여준 거다. 이번에 코로나에서 드러난 성숙한 시민의식이 재현될 수 있다고 보고 따라서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대학을 평등화하여도) 취직을 한다거나 할 때에 서열 문제들이 불거질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정책적으로 그런 문제들도 해결해나가야 한다. 즉, 교육개혁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고 교육개혁이 사회개혁을 견인해야 한다. 교육 영역에서의 절대적 경쟁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차별과 위계 같은 것들이 존재하므로 양자의 개혁이 같이 가야 한다.

한국은 너무나 차별이 심하다. 그 원형은 학벌에 있다. 학벌사회의 차별방식이 사회의 다른 영역에 다 퍼져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런 식으로 완전히 전사회적으로 차별이 구조화된 것이 한국이다. 교육에서의 학벌체제 타계가 다른 사회 영역에서의 서열 파괴의 힘이 되면서 (교육과 사회의 변화가) 함께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교육개혁이 사회개혁을 촉발시켜야 한다.
 
김교수는 극단적 경쟁교육인 우리교육을 반(反)교육이라고 비판한다. 그 반교육의 모습을 잘 그린 것이 드라마 ‘SKY 캐슬’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엿보이는 반교육의 근본 이유 중 하나가 ‘특권직업’이다. 스스로 김주영 선생님을 따라 최고의 내신과 스펙을 갖추려 안간힘을 쓰며 친구고 뭐고 없는 예서의 단 하나의 목표는 오로지 ‘서울대 의대’다. 사진은 드라마 ‘SKY 캐슬’에서 피라미드를 신봉하는 전직 법조인 차민혁 교수.
 김교수는 극단적 경쟁교육인 우리교육을 반(反)교육이라고 비판한다. 그 반교육의 모습을 잘 그린 것이 드라마 ‘SKY 캐슬’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엿보이는 반교육의 근본 이유 중 하나가 ‘특권직업’이다. 스스로 김주영 선생님을 따라 최고의 내신과 스펙을 갖추려 안간힘을 쓰며 친구고 뭐고 없는 예서의 단 하나의 목표는 오로지 ‘서울대 의대’다. 사진은 드라마 ‘SKY 캐슬’에서 피라미드를 신봉하는 전직 법조인 차민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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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평등화, 의대나 로스쿨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김누리 교수는 몽상가가 아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미국식 삶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진정한 글로벌 스탠다드인 유럽식 삶을 살아야 한다면서, 그는 그저 유럽을 미화만 하며 두루뭉술 말하는 게 아니다. '대학입시폐지와 고교졸업자격시험화'. '대학 통합네트워크를 통한 대학서열폐지'. 그는 이러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한다.

그 대안들은 '평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를 이미 이룬 독일 등의 나라에선 대학의 문뿐 아니라 인기학과의 문도 모두에게 열고자, 그 앞에 학생들을 줄세우지 않으려 노력한다. 김 교수의 설명대로 의대의 신입생 선발을 '추첨'으로 하고 '대기기간'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지방대 의대가 서울대 모든 학과들의 위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과에선 의대가 인기다. 또 문과에선 소위 명문대 법대가 사라진 탓에 소위 스카이 상경대학을 졸업하고 스카이 로스쿨로 진학하는 것이 이른바 진골 코스로 여겨진다. 여기에 유럽식 '추첨'이나 '대기기간'은 끼어들 틈이 없다. 누가 추첨이나 대기기간을 언급한다면 당장 '말도 안 돼!'란 말이 튀어나올 법 하다. 이런 인기학과에 가려면 고등학교 과정에서 앞쪽에 줄을 서야만 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상식 중의 상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인이나 법조인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의사 국가고시는 자격시험, 즉 절대평가다. 의대 과정을 충실히 이수했다면 대부분 그 자격을 취득 가능해 실제 졸업생의 90% 이상이 의사가 된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의대 입학의 문에서 의료인의 수 통제가 이뤄진다. 현재 약 3천명이 의대 입학 정원인데, 독일과 같은 추첨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오로지 수능시험 내지 내신시험으로 줄 세워진 학생들 중 상대적으로 앞쪽에 선 일부만이 의대생으로 선발되어 이후 의사가 될 수 있다.

로스쿨의 경우 이중의 통제가 존재한다. 일단 로스쿨 입학의 문에서 입학 정원 2천명이라는 제한이 있고, 졸업할 때부터 치를 수 있는 변호사시험조차 자격시험 아닌 정원제 상대평가로 해 (점수가 몇 점이든) 응시자들의 50% 정도만 변호사가 될 수 있게 함으로써 수 통제가 또 한 번 이뤄진다. 역시 독일과 같은 추첨 등은 없다. 대입에서 상대적으로 앞쪽에 줄 선 일부만이 명문대를 거쳐 로스쿨생이 되기 쉽고, 그들 중에서도 또다시 판례 결론 단순 암기가 가장 중요한 변호사 시험에 의한 줄세우기에서 앞쪽에 선 일부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어떤 학문의 교육기회가 최대로 모두에게 돌아가는지,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특정 분야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우리의 의대, 로스쿨 등의 전문직 관련 교육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 문제의 핵심으로 생각되는 '특권 내지 기득권 유지'는 아무래도 교육적이지도 않고 사회정의에 적합하지도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김 교수의 대안, 고교졸업자격시험화와 대학 서열폐지에 의한 '교육 평등화'가 의대나 로스쿨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공식적인 인터뷰와 별개로 대화를 나누던 중 김 교수는 이와 같은 전문직 관련 학과들에 대해 '직능특권화'라는 표현을 썼다. 아직 이 부분을 깊게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관련한 독일에서의 경험들을 언급하며 의료인, 법조인 등의 특권계급화가 우리의 치열한 교육경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한 만큼 독일의 경우와 비교하며 앞으로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교수의 '직능특권화'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의료인과 법조인만을 언급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직업 내지 사회적 지위의 '특권'과 우리 대학의 서열화, 초중고 어린 시절부터의 경쟁교육이 깊은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결국 각론에서 들여다본대도 궁극적 대안은 그가 말한 대로 우리의 교육과 삶을 이제라도 진정한 글로벌 스탠다드인 유럽식 교육과 삶으로 바꾸는 것이고, 이를 위해 '대학입시폐지와 고교졸업자격시험화'. '대학 통합네트워크를 통한 대학서열폐지'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기사에서는 대학서열폐지와 같은 대안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본다. 이미 20년 전부터 나왔던 이 대안이 왜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 그 실현을 조금이라도 더 앞당기려면 평범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들어본다.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은이), 한상연 (옮긴이), 부키(2011)


태그:#김누리 교수, #독일교육, #교육혁명, #4.15 총선, #특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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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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