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 감독과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가 3년간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LG는 9일 "2019-2020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현주엽 감독과 재계약 검토 과정에서 현 감독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화려했던 등장에 비하면 아쉬운 퇴장이다. 현주엽 감독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이다. 휘문중-휘문고-고려대를 졸업한 현주엽은 '농구대잔치 세대'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프로무대에서는 청주 SK(현 서울)-여수 골드뱅크(현 부산 KT)를 거쳐 창원 LG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현 감독은 방송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2017년 친정팀인 창원 LG의 감독 지휘봉을 잡으며 현장에 복귀했다. 현주엽 감독의 스타성과 인지도가 주는 화제도 높았지만, 이전까지 코치를 비롯한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LG의 감독 인선은 상당한 파격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LG의 선택은 '깜짝 효과'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부임 첫 해 2017-2018시즌 17승 37패로 9위에 그치며 LG의 '단일시즌 최저승률 타이기록'을 세우는 굴욕을 당했던 현 감독은 2018-2019시즌 김종규(현 DB)-김시래 콤비를 앞세워 정규시즌 3위(30승 24패)-4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으며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그러나 김종규가 자유계약선수(FA) 계약으로 팀을 떠난 2019-2020시즌에는 LG는 다시 9위(16승 26패)로 내려앉았다.
 
 현주엽

현주엽 ⓒ 연합뉴스

 
3시즌 동안 정규리그 통산 성적은 63승 87패(승률 .420)였다. 이는 불과 1시즌 만에 성적부진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2004-2005시즌 박종천 전 감독(17승 37패)에 이어 역대 LG 사령탑중 두 번째로 저조한 승률이다.

김종규와 김시래, 제임스 메이스 등이 건재했던 첫 두 시즌은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만한 전력이었음에도 4강 진출 한 차례에 그친 것은 LG로서는 그다지 만족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김종규가 FA로 팀을 떠나며 전력이 약화된 마지막 시즌에도 캐디 라렌-마이크 해리스 등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을 앞세워 최소한 플레이오프 정도는 기대할만 했지만, 구단 역사상 첫 개막 5연패를 기록하는 등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팀 성적만이 아니더라도 현주엽 감독이 재임기간 내내 보여준 지도력은 썩 좋은 평가를 주기가 어렵다. LG는 현 감독과 함께한 3년 내내 공격과 수비 모두 그다지 특색있는 팀 컬러를 보여주지 못했다. 김종규나 김시래같은 특정 선수에 대한 과도한 전술적 의존도는 한두 명만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빠지기라도 하면 팀 전력이 곧장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빈번했던 외국인 선수교체에 비하여 영양가는 떨어졌다. 메이스같이 개인능력은 뛰어나지만 독불장군 성향이 강한 외국인 선수를 제대로 통제하여 팀플레이에 녹여내지도 못했다. 정창영(현 전주 KCC)이나 박정현, 정성우 등 기대를 모았던 젊은 선수들이 현주엽 감독 체제에서 이렇다 할 성장세를 보여준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LG가 현주엽 감독과 동행을 계속 이어가더라도 팀이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줄만한 요소가 거의 없었다.

현주엽 감독은 현역 시절 '무관의 제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로 불렸다.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아마추어 시절과 달리, 프로 무대에서는 우승은 커녕 챔피언결정전 한번 나가보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했다. 공교롭게도 감독으로서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시대에 활약한 프로 선수 출신 감독 중 허재-문경은-김승기-이상범 감독 등은 지도자로서도 정상에 올랐고, 추승균이나 이상민 감독도 최소한 정규리그 정상에 오르거나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아봤다. 하지만 현 감독은 선수 시절에 이어 감독으로서도 끝내 파이널 무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현 감독의 시행착오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그대로 반복했다는 점에서, 맹목적으로 젊은 지도자나 스타 출신 감독을 선호하는 최근의 한국농구에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현 감독은 선수 시절의 명성은 화려했지만 애초에 지도자로서는 경험과 준비가 모두 부족했다는 게 비극의 원인이었다. 사실 이는 애초에 이름값만 믿고 현 감독의 인선을 밀어붙인 LG 구단의 잘못이기도 하다. 현 감독도 자신의 약점을 알고 김영만이나 강혁같이 경험 많은 코치진을 구성하여 보완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초보 감독의 프로 적응을 위하여 LG가 지난 3년을 희생하여 비싼 수업료만 치른 꼴이 됐다.

LG는 창단 이후 프로무대에서 전자랜드, KT 등과 더불어 챔피언 결정전 우승이 아직 없는 몇 안 되는 팀이다. 창원은 농구의 인기가 높았던 연고지이기도 했다. LG가 우승에 대한 목표의식과 더 큰 야망이 있었다면 굳이 성과와 능력에서 검증이 되지않은 초보 감독을 무리하게 인선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됐다. LG는 지난 3년간 우승의 적기를 놓쳤을 뿐 아니라 팀 성적도 추락하며 다시 리빌딩을 고민해야하는 시점에 와 있다. 후임 감독 인선의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자유의 몸이 된 현 감독은 농구 현장을 떠나더라도 현재 스포테이너로 활발하게 활동중인 서장훈이나 허재처럼 방송의 러브콜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예능 유망주'로 꼽힌다. 굳이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한국 농구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많다. 비록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아쉬웠지만 여전히 현주엽을 보고싶어하는 팬들이 존재한다면 이제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로 돌아가기에 늦은 시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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