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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에서 이야기 나누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양말과 정의당의 장혜영
 촬영장에서 이야기 나누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양말과 정의당의 장혜영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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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건데, 할머니 되면 '할머니 운동'할 거예요? 아니면 '청소년 운동'할 거예요?"라고 물으며, 서로의 과거·현재와 미래를 공유하는 청소년 활동가와 총선 출마 정치인의 만남. 소수자의 자립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장벽과 그들의 자립을 위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3월 11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양말과 정의당 장혜영 비례대표 후보가 만났다. 이들에게 '자립'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으로 특별하다. 탈가정·탈학교·탈시설 등을 겪으며,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자립을 보조해왔기 때문이다. 양말은 중학교 때 대자보를 썼지만, 학교에서 의견이 묵살됐다. 이후 대안학교에 진학했지만, 대안학교 역시 삶에서 "큰 변환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탈학교를 결정했다.

반면, 혜영은 순서대로 탈가정·탈학교를 겪고,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의 탈시설을 보조했다. 탈가정이나 탈학교가 혜영에게 생존의 의미였다면, 탈시설은 투쟁의 영역이었다.

'자립'은 어떤 의미일까?
 

자립은 독립 혹은 고립과 다르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서로 의지하며 공생하는 인간으로서 자립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양말에게 자립은 "홀로서기"가 아니다. 자립은 "망망대해에 들어가서 깃발 꽂자, 여기 내 땅, 이제부터 여기에 내가 살아갈 거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 안에 있다고, 부모와 산다고 하여 자립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혜영도 비슷한 정의를 내린다. "자립의 전제조건은 끝없는 의존"이며 "끝없는 상호의존 속에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이 보는 '자립'은 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내 자신인 상태다. 즉, 자기다움을 실현하는 상태에서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충분히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자립을 규정한다.

'탈시설'과 '탈가정'

자립에 대한 경험과 의미를 바탕으로 양말과 장혜영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공유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활동과 투쟁이었지만 얻어왔던 '권리의 영역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혜영: "탈시설을 한 것은 개안이라고 할까요? 눈을 뜨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탈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되게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제 동생의 삶을 제 삶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 지가 몇 년이 안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평등하다, 존엄하다, 동등한 권리가 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배우면서 자라지만 사실은 마음속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은 비장애인이고,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사는 것이고, 장애인은 시설에 갇혀 살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동생의 삶을 바라봤던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양말: "활동가로서 싸워나가는 건 아무래도 저는 청소년이라는 입장에서 더 많이 싸워나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탈학교 청소년으로서 싸워나가는 것보다는 제가 탈학교한 이유, 그러니까 제가 학생으로서 너무 힘들었던 점을 고쳐나가고 싶어서 학생 인권법 같은 제정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청소년과 장애인, 탈학교와 탈시설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활동을 지속하는 그들은 보호와 권리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보호가 필요하지만 어떻게 권리를 오롯이 보장하면서 자립을 도울 것인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양말은 "우리를 격리하고, 우리의 목소리라 들어가지 않은 보호가 과연 보호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를 조금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당겨서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이 바로 보호가 아닌가?"라고 말하며, 인권과 보호에 관한 논점을 제시했다.

이에 혜영도 "보호가 연약한 존재로 규정하고, 더 강한 존재가 너를 지켜줄게"라는 관점으로 여겨져 온 것을 비판했다. "정말 보호가 필요한 순간들"에 "시민의 권리를 보완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하므로 더 취약한 곳으로 가게 되는 구조들"에 주목했다.
 
권리 없는 보호?


이들은 장애인과 청소년에 대한 보호에 불필요한 감정이 개입돼 온 사실에 주목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눴다. 종종 겪어왔던 불쾌함에 공감하며, 대화가 이어졌다.

혜영은 "다정함이나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보호"에서 보호를 받는 사람과 보호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평등한 관계에서 쓸 수 있는 관점"이 아닌, 권리 없는 보호는 이와 같은 불평등한 구도를 가정한다. 시혜적인 관점에서 '보호해 줄게'라는 관점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더 취약한 곳으로 내몬다.

그래서 권리를 바탕으로 한 보호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 "구체적인 시공간, 한국, 2020년을 사는 사람들로서 분명히 의지하고 살아가는 시민으로, 다른 원칙을 적용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예외가 있을 때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섬세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혜영은 "보호가 아닌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양말 또한 "진짜 보호(찐 보호)는 인권 보호"라고 말하며, "보호한다고 마련된 법안들이, 다 가두고, 규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자립은 가능한가
 
촬영이 끝난 후 함께한 안녕, 국회 팀원들과 인터뷰이들.
 촬영이 끝난 후 함께한 안녕, 국회 팀원들과 인터뷰이들.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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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립할 수 있을까? 그동안 자립의 요건은 가정에서 오는 것으로 여겨졌다. 양말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가정에서 떠맡고, 알아서 보호하라"는 식의 요건이 자립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혜영 또한 "보호자인 부모나 비장애인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소수자의 자립은 불온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회의 사각지대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자립이 인정되지 않고, 그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것은 사회적 구조에서 온다.

양말은 "저는 과거의 장혜영이 궁금하거든요"라며, 그 전의 삶에서 왜 자립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혜영은 웃으며 '과거의 장혜영'은 축적돼 온 경험 속에서 동생의 자립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약자에 대한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상대적으로 가정의 책임 안으로 돌리는" 것을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못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혜영은 개인적인 성공을 통해 동생을 "구제"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고 고백했다. 현재의 혜영은 과거의 '장혜영'을 돌아보며, 이중잣대를 가지고 소수자의 자립 가능성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소수자들의 삶을 "불행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정상적인 삶에 비교해서 자립하기 어려운 사람들, 모자란 사람들" 혹은 "미성숙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적선하고, 동정하고, 시혜를 베푸는 식"의 사고로 이어진다.
 
자립에 대한 우리의 상상


자립을 위한 조건에 대해 양말은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지 않아도!", 혜영은 "지금 당장 환대해 주는 사람"을 내걸었다. 환대받지 못한 경험들을 돌이켜 보며 지금 당장 환대하는 사람이 우리 모두의 운동에 절실하게 필요함을 강조했다.

혜영은 어떤 장애 인권활동가가 언급했던 "이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어떤 소수자에 대해 자립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떤 누구의 도움도 없는 자립이 가능한 상황을 전제한다. 그러나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받으며 "한 몫의 삶"을 살아간다. 소수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도움이 있을 때 자립이 가능하다.

청소년과 장애인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둘은 "필요한 지원은 당사자가 원하는 지원"이어야 한다는 점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양말은 "청소년은 부모의 보호와 지원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시선을 바탕으로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에 반박했다. "청소년들이 먼저 부딪히고, 실패할 수 있도록 하는 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혜영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사람에게 맞추는 형태"의 법과 제도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그리는 21대 국회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인 양말과 혜영은 21대 국회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양말은 "21대 국회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라고 강조했다. 행적에 대한 반성과 잘못된 것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양말은 "어떤 목소리가 나올 때 '아, 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목소리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배경을 공부하는 국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혜영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이 자기 삶을 살아갈 환경을 결정할 주도권을 갖는 것, 충분히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인터뷰 동안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간 만큼, 21대 국회의 소통이 다양화될 모습을 상상하며 대화를 마쳤다.

이제껏 자립은 어려운 문제로 여겨졌다. 자립 자체가 개인이 성취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립을 인권적인 관점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내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유동하는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돌봄을 주고받으며 상호의존하는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각자의 필요와 욕구가 존중되는 자립이 더 많이, 다양하게 논의되는 21대 국회가 기대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21대 국회를, 앞으로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든든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을 더 알아갔으면 좋겠다."(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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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총선, #청소년, #청소년인권, #장혜영,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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