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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학회> 입구에 설치된 주시경 선생 흉상. 이곳부터 북쪽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난 길이 '한글가온길'이다.
 광화문 <한글학회> 입구에 설치된 주시경 선생 흉상. 이곳부터 북쪽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난 길이 "한글가온길"이다.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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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의 독특한 행보에 비방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적대시하거나 심지어 그의 한글연구는 '두루때글'이란 욕설적인 별명을 만들어 유포시켰다.

"스승께서는 그의 지은 책에 되도록 우리 말을 썼고, 우리 말이 없으면 손수 만들어 썼기 때문에 당시의 고루한 썩은 선비들의 미움을 샀다. 그리하여 스승의 성이 두루 주(周) 자이므로 '두루'를 따고, 이름의 윗 글자가 때 시(時) 자이므로 그 뜻의 '때'를 따고, 이름의 아래 글자가 글 경(經) 자이므로 '글'을 따서 주시경(周時經)의 뜻풀이로 '두루때글'이라고 욕삼아 별명을 지었다 한다." (주석 9)
  
주시경 선생
▲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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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그러거나 말거나 썩은 선비들의 '언어유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권을 상실한 마당에서 한글 지키기와 민족의 자주성 회복이 무엇보다 선결과제였기 때문이다.

스승은 종래의 한문 세력과 새로운 서구 문화 사이에서 자기의 설 자리를 정확하게 정립시키었다. 얼마나 자주적 정신이 뚜렷한가? 여기에 겹쳐 일본 세력이 우리 나라를 완전히 지배하여 정치적으로 예속당한 것은 물론, 일본 세력이 사회, 문화, 경제 등에 속속들이 파고 들어 목을 조르고 있는 암담한 현실에서, 스승의 교육관은 한문 제일 사상, 문화 맹종 사조, 일본의 끈질긴 침략 정책들을 분쇄하고, 우리 나라를 정신적 침략에서 구제하려고 몸부림쳤다.

그 길은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근본을 굳건히 다져서 어떠한 정신적, 문화적 침략에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을 기르는 길밖에 없고, 그렇게 하자면 금선무가 우리 말과 글을 우리 겨레에게 가르치고 보급시켜서 자기 위치를 찾게 하는 길밖에 없다는 이런 신념이 바로 국어 교육으로 나타났다. (주석 10)


주시경은 이즈음 「큼과 어려움」이란 시를 지었다. 읽을수록 의미가 각별한 내용이다. 지은 이의 시대적 아픔과 결연한 의지가 읽힌다.

 큼과 어려움

 적음으로 큼을 이루고
 쉬움으로 어려움을 하나니
 큼을 적음에서 꾀하고
 어려움을 쉬움에서 힘쓸지로다 
 큼을 적음에서 꾀하며
 어려움을 쉬움에서 힘쓰는 이는
 일어날 것이요
 큼을 적음에서 웃으며
 어려움을 쉬움에서 잊어버리는 이는
 넘어지리로다. (주석 11)


주석
9> 이강로, 앞의 책, 121쪽.
10> 앞의 책, 130~131쪽.
11> 『나라사랑』 제4집, 뒷 표지.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한힌샘, #한힌샘_주시경, #한글, #두루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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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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