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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시경(1876-1914)
 주시경(1876-1914)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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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이 작명한 한글의 '한'은 고대 삼한 이래의 우리 국호의 고유명사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한글'이란 말의 '한'은 '바르다'ㆍ'하나'ㆍ'큰'ㆍ'으뜸' 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이윤재 님은 말하기를, "역사를 상고하면 조선 고대 민족이 환족(桓族)이며, 나라 이름이 환국(桓國)이었습니다. '환'의 말뜻은 곧 '한울' 입니다. 조선 사람의 시조 단군(檀君)이 한울로서 명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환'은 '한'과 같은 소리로 '한울'의 줄인말이 되었고, 그만 '한'이란 것이 조선을 대표하는 명칭이 된 것입니다. 고대에 삼한(三韓)이란 명칭도 이에서 난 것이요, 근세에 한국(韓國)이란 명칭도 또한 이에서 난 것입니다. "또 '한'이란 말의 뜻으로 보아도 '크다(大)'ㆍ'하나(一)'라 '한울〔天〕'이란 말로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우리 글을 '한글'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한글의 '한'이란 겨레의 글, '한' 이란 나라의 글, 곧 조선의 글이란 말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볼 때 '한글'이란 우리 글을 '언문(諺文)' 등 여러 이름으로 낮추어 부른 데 대해, 정당한 우리 말 표기 글자란 뜻으로 권위를 세워 준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한글'이란 이름은 세종대왕께서 처음 글자를 지으시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신 정신과 통하는 것이다. (주석 7)

 
주시경 마당(종로구 당주동 소재) 한글회관과 세종문화회관 사이에 있는 주시경 선생을 기리는 작은 공원이다. 한글을 극찬했던 헐버트 상도 같이 있다.
▲ 주시경 마당(종로구 당주동 소재) 한글회관과 세종문화회관 사이에 있는 주시경 선생을 기리는 작은 공원이다. 한글을 극찬했던 헐버트 상도 같이 있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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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학계 일각에서는 '한글' 명명자가 육당 최남선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한글학자ㆍ한글 연구가 대부분이 주시경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일본인으로 한글에 남다른 연구와 애정이 깊은 노마 히데키(전 도쿄 외국어대학 교수)도 『한글의 탄생』에서 '주시경 설'을 지지한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한글'이라는 명칭은 근대의 선구적인 한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이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은 '위대한', '글'은 '문자' 혹은 '문장'이라는 뜻이므로 '한글'은 '위대한 문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은 '대한제국'의 '한(韓)'이라는 설도 유력하다. (주석 8)

한글 연구가인 고영근은 보다 체계적으로 사료를 추적하여 한글의 명명자가 주시경임을 입증한다.

국권 상실 이전까지는 대부분 '국어, 국문'이란 말을 썼다. 그러나 주시경이, 1910년 6월 10일에 발행된 『보중친목회보(普中親睦會報)』 1호에 기고한 글에는 국어와 국문 대신 '한나라말'과 '한나라글'로 되어 있다. 이 글은 '국어문법(國語文法)'의 '서(序)'와 '국문(國文)의 소리'를 한글로 바꾸어 쓴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한국어(韓國語)'와 '한국문(韓國文)'에 대응되는 의미가 틀림없어 보인다. (중략)
 
'국어'가 '한나라 말'로, 이것이 다시 '말' 내지 '한말'을 거쳐 보다 포괄적인 '배달말글'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이 '배달말글'이란 말도 1913년 3월 23일에는 '한글'로 바뀌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한글모죽보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13년 3월 23일(일요일) 오후 1시
 
임시총회를 사립 보성학교 내에서 열고 임시회장 주시경 선생이 자리에 오르다.(중략) 본회의 명칭을 '한글모'라 고쳐 부르고(중략)

이는 '배달말글음'으로 불리던 조선언문회의 창립총회의 전말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배달말글'을 '한글'로 바꾼 점이다.
 
이는 앞의 '한말'과 마찬가지로 1910년의 주시경의 글 '한나라말'에 나타나는 '한나라글'의 '나라'를 빼고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중략)
 
(따라서) 현재로는 1913년 3월 23일을 '한글'이란 말의 최고(最古) 사용 연대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주석 9)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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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1910년 6월 「한나라말」이란 짧은 글을 지었다.

"주시경은 1910년에 발표한 「한나라말」이라는 글에서 '한나라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한글 명칭은 '한나라글'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글은 '한나라글'의 축약어로 볼 수 있다. 이는 1906년 6월 이전에 그가 일관되게 사용한 국문의 대용어로, 1910년에 들어와 한나라글을 사용하였다고 보여진다. 주시경에게 국문은 훈민정음을 지칭한 것이었다." (주석 10)


주석
7> 앞의 책, 167쪽.
8> 노마 히데끼, 김진아 외 옮김, 『한글의 탄생』, 33쪽, 돌베개, 2011.
9> 고영근, 「'한글'의 유래에 대하여」, 김흥식, 앞의 책, 288쪽 재인용.
10> 박용규, 앞의 책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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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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