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이 뭘까> 포스터

영화 <사랑이 뭘까>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누군가는 이별의 시행착오를 한 만큼 사랑과 이별에 성숙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 환희와 아픔을 매번 겪는다고 해서 다음번이 쉽다는 보장은 없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찾아오지만 누군가와 마음이 맞는 일을 언제나 어렵다. 이를 두고 <어린 왕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기적이야"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고로 기적의 로맨스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게 아니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은 연인 사이도 일종의 권력관계임을 암시한다. 평등한 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기울어진 관계는 안타까운 결말을 예고한다. 그렇게 <사랑이 뭘까>는 다섯 청춘의 사랑과 우정 그 어딘가를 집요하게 탐닉한다. 특히 맹목적 짝사랑에 빠져버린 한 여성의 복잡한 심정을 스크린에 잘 녹여냈다.

일본 개봉 이후 2030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흥행에 성공했다. 그룹 뉴이스트 주연의 <좋아해, 너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이마이즈미 리키야 감독의 신작이다. 원작 또한 탄탄하다. 버블경제의 허황된 욕망과 중년 여성의 위기를 다룬 <종이 달>의 원작자 가쿠다 미쓰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내가 좋다면 그것도 사랑이야!
 
 영화 <사랑이 뭘까> 스틸컷

영화 <사랑이 뭘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한 번 사랑에 빠지면 일도 관계도 모든 일상이 뒷전인 테루코(키시이 유키노)가 완벽한 이상형 마모루(나리타 료)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테루코는 비정상적 이리만큼 마모루를 사랑하지만 안타까운 건 마모루는 테루코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사랑을 담보로 권력의 고삐를 쥐고 있는 건데, 마모루는 필요할 때마다 테루코를 불러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반면 테루코는 의존적이며 쉽게 자신을 놓아버린다.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마모루가 무심코 내 뱉은 말 한마디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는 가하면 몇 달 후에 연락이 와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한 걸음에 달려간다. 한없이 차가운 마모루의 행동에 실망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한 말 한마디에 스르륵 녹아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날도 마모루의 연락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자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스미레 (에구치 노리코)가 있었다. 누가 봐도 마모루는 스미레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테루코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연 이 자리에 부른 목적이 뭘까. 이제 떨어져 나가라는 걸까, 보고 배우라는 걸까.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다. 테루코는 매우 실망스럽지만 실망하지 않은 척 더 밝게 행동해야만 했다. 왜냐고? 마모루를 사랑하니까.

이게 바로 테루코의 사랑방정식이다. 상대방이 나를 홀대해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것. 상대방이 필요할 때 곁에 언제나 있어 주고 싶은 건 당연하고, 가능하다면 그의 누나, 엄마 아니 마모루 자체가 되고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마모루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먼저 연락은 하지 않는다. 오로지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좋아한다는 게 들키면 달아날 것 같아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라도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사랑이다. 누가 봐도 이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뜨겁게 사랑하되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 것!
 
 영화 <사랑이 뭘까> 스틸컷

영화 <사랑이 뭘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영화 내내 이상한 것은 정작 커플은 없다는 거다. 대부분 짝사랑 중이며 큐피드의 화살은 얄밉게도 살짝 어긋나 있다. 테루코는 마모루를 좋아하지만 마모루는 스미레를 좋아한다. 하지만 스미레는 마모루에게 관심이 없다. 우리 인생과도 비슷하다. 내가 원하는 게 다른 곳을 향하는 어긋나고 복잡한 관계처럼.

친구 요코 곁에는 요코(후카카와 마이) 바라기 나카하라(와카바 류야)가 있다. 요코를 좋아하는 나카하라를 보며 테루코는 희미한 동병상련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카하라가 짝사랑을 멈추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어쩐지 괴로웠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마모루를 향한 마음을 들켜버린 듯했다. 자신의 짝사랑도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조바심이 커졌다.

영화는 관객에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다섯 캐릭터의 감정에 이입해 인생이 뭘까라는 질문으로 확장할 수 있다. 대체 어른의 기준은 어디서부터일까. 몇 살로 정의해야 하는지, 어른스러움은 무엇인지 항상 청춘은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 중이다.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되나 싶은 고민은 청춘만의 특권이 아닌 현대인이 고질적인 숙제가 되어버렸다. 현대인은 과거와 달리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스럽지 않고 속은 아직 아이인 경우가 많다.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채 나이만 먹어 어른이 된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 결혼, 가족 관계가 서투르긴 마찬가지다. 누구라도 영화 속 인물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영화 <사랑이 뭘까> 스틸컷

영화 <사랑이 뭘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다만, 뜨겁게 사랑하고 몰입하는 과정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타인을 향한 사랑 이상으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찰나의 선택이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정답은 없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 하는 존재다. 오로지 선택의 결과만이 있을 뿐이고 결과는 당신의 몫이다.
사랑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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