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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가 예감한 운명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시민일 수밖에 없으며, 무언가를 지지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무관심은 무기력이고 기생적인 것이며 비겁함일 뿐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관심한 사람을 증오한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쓴 <무관심을 증오한다>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입니다. 우리들에게는 '헤게모니', '진지전'이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 글은 그람시가 1917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쓴 글입니다. 

최근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이탈리아는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파시즘 하면 떠오르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에서 국가파시스트당을 결성한 것이 1921년입니다. 그람시는 바로 이와 같은 조국 이탈리아의 어지러운 정국을 목전에 두고 위 글을 썼습니다.

그람시는 1926년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20년 4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투옥됩니다. 그람시를 기소한 검사는 "위험천만한 이 사람, 우리는 이 자가 앞으로 20년 동안 두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람시는 아마도 1917년 2월에 위 글을 쓰면서 조국 이탈리아의 운명은 물론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옥고 끝에 1937년 4월 그람시는 폐결핵으로 사망합니다. 그람시 사후의 이탈리아의 운명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히틀러와 손을 잡은 무솔리니는 2차 세계대전의 전화 속으로 이탈리아 국민들을 몰아넣습니다.

100년에 그람시가 쓴 글을 떠올리는 것은 그람시가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 무관심이 초래할 위험성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모든 뉴스를 압도하는 가운데 21대 총선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요즘 신문의 정치면이나 TV 뉴스에 나오는 국회나 정당들에 대한 보도를 볼 때마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집니다.

표현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20대 국회는 '식물국회', '동물국회'라 불릴 정도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선거를 앞둔 유권자들에게 "이 정당, 이 사람을 지지해야지"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 정치는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가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거나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게 되면 '정치'와 '정치인'들의 수준은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정치적 공동체의 운명이 암울해지는 것입니다.

2016년 늦가을에 시작된 촛불집회는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촛불시민혁명을 일구어냈습니다. '정치적 시민의 탄생'이라고 부를만한 변화입니다.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역사를 우리는 만들어낸 것입니다.

촛불시민혁명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저는 '촛불시민혁명'이 미완의 혁명이 아니라 완성된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최소한 한 세대, 햇수로 따진다면 30년 정도는 족히 걸릴 것이라 봅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번 총선에 우리가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람시는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는 '극단적'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평등주의자 그람시가 이런 표현까지 동원하여 100년 전 조국 이탈리아의 시민들에게 경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람시는 말합니다.

"무관심은 역사 안에서 늘 강력하게 작동했다. 비록 그것이 수동적일지라도 항상 작동했다. 무관심은 치명적이다."

무관심, 무기력 그리고 죽음
 
스페인의 화가 프란치스코 데 고야의 그림
▲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치스코 데 고야의 그림
ⓒ 대전충남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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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정치적 무관심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항상 강력하게 작동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치스코 데 고야가 그린 그림 중에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책상에 기대어 잠든 사람 뒤로 부엉이와 박쥐가 스멀거리고, 잠든 사람의 책상 앞에는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El sueño de la razon produce monstruos)'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그림 속의 인물이 고야 자신이라고도 하는 이 그림은 물론 '정치적 무관심'을 꼬집은 그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람시의 글과 함께 고야의 위 그림을 떠올립니다.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눈감는 것입니다. 정치적 무관심은 '무기력'한 것이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치명적인 위험에 빠트리는 정치적 이성의 죽음입니다. 그람시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진정으로 살아있는 시민"이라면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무언가를 반대하는 데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4월 15일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보기 싫어도, 투표는 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곧 잠잠해지기를 기원하며, 4월의 봄 속에 깨어 있는 정치적 시민이 여기에 있음을 보여줍시다.

덧붙이는 글 |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태그:#그람시, #프란치스코 데 고야, #정치적 무관심 , #21대 총선, #정치적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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