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필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런던이라는 중소도시에서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타코마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불안감 속에 세계 곳곳에서 화장실 휴지 사재기 현상이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 이용객들이 매장에 갓 도착한 휴지를 구매하고 있다
 (타코마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불안감 속에 세계 곳곳에서 화장실 휴지 사재기 현상이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 이용객들이 매장에 갓 도착한 휴지를 구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고 급기야 WHO(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자, 세계 곳곳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특히 '화장지'에 대한 패닉에 가까운 수요급증이 일어났다. 해외언론들은 화장지를 먼저 사겠다고 다투는 사람들, 1인당 화장지 구매 개수를 제한한다는 공지문, 심지어 마트에서 화장지 주위를 지키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유독 화장지에 집착하는 것일까?'

세계 각국에서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매년 수천 명에 이른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침 출근길에 독감이나 교통사고로 죽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예측 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다. 독감이나 교통사고는 예측 가능하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익히 알고 있고, 그 예방책을 인지하고 있으며, 불행히도 마주하게 됐을 경우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도 예상할 수가 있다.

반면, 코로나1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다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다. 발견 초기에는 그 발원지는 물론, 전파력이나 치사율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각국에서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결과물은 얻지 못한 상태이다.

공포는 전염된다

공포는 바로 이러한 무지와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시각각 다가오는 코로나19 공포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 가능한 시각적인 것으로 치환하기 원하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어둠의 위협이 다가왔을 때 맞서 싸우기 위한 장비로서 가장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생필품이다. 자가격리를 하게 되더라도 밖에 나가지 않고 두 주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로서의 물품들이다. 사람들은 창고에 쌓인 생필품을 보며 어느 정도는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사재기를 부추기는 더 큰 원인은 공포 그 자체를 넘어 그것이 지니는 '전염성'이라는 속성 때문이다. 텅 비어 있는 마트의 진열대를 보면서, TV나 인터넷을 통해 카트에 물건을 쓸어 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면의 공포는 증폭되고 발걸음은 다시 마트로 향한다. 인터넷 기반의 다양한 플랫폼들은 그같은 공포가 전에 없는 전염성을 지니고 '눈덩이 효과'를 이루며 퍼져나가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된다. 공포는 바이러스보다도 더 빠르게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나만 놓칠 수 없어서 
 
 코로나바이러스19가 유럽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5일 영국 런던의 한 대형 슈퍼마켓. 화장지 등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면서 1인당 구매제한을 걸고 있지만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유럽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5일 영국 런던의 한 대형 슈퍼마켓. 화장지 등 생필품 사재기가 계속되면서 1인당 구매제한을 걸고 있지만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김종철

관련사진보기

 
그렇다 해도 여전히 '왜 유독 화장지'일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매우 단순한 이유로서 화장지는 다른 어떤 생필품보다 부피가 크다. 통조림 식품이나 파스타, 빵 같은 식료품들도 사재기의 인기 있는 품목들이다. 그런데도 화장지 사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각적 효과의 영향이 크다. 한 벽면 전체를 채우고 있던 화장지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는 생경한 모습은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은 새벽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서라도 진열대가 다시 비어버리기 전에 화장지를 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둘째, <타임>지 기자 제프리 클루거는 '화장지에는 대체품이 없다'는 사실에서 그 한 가지 원인을 찾는다. 원하는 음식이 없다면 다른 음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화장지의 경우에는 대체할 만한 다른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심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무언가를 나만이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을 뜻하는 용어 FOMO. 당장 나에게 더이상의 화장지가 필요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은 중요치 않다. 다른 이들이 카트에 화장지를 담는 모습을 보며 '저들은 내가 모르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러면 고장난 로봇처럼 판단력을 잃은 채 화장지를 카트에 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석유파동이 일었던 1973년, TV 프로그램 투나잇 쇼(Tonight Show)의 사회자였던 자니 카슨(Johnny Carson)은 이렇게 말했다. "화장지도 엄청 부족하다고 합니다." 사상 최고의 주가하락과 유가 급증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웃어보자며 농담으로 던진 그 말은 곧바로 팩트가 되어버렸다.

바로 다음날부터 사람들은 화장지를 사러 달려 나갔고 '화장지 대란'은 4개월이나 지속되었다.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공포에 싸여 있던 사람들에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란 무리였던 것이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한국 시민들
 
 지난 3월 18일 한 대형마트의 모습. 진열대에 물건이 가득 차 있다
 지난 3월 18일 한 대형마트의 모습. 진열대에 물건이 가득 차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셧다운 없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 '코로나19 방역의 모범사례' 등 외신들은 앞다투어 한국 정부의 대응책을 칭찬하며 그 선례를 따르기 위해 도움을 구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것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한국시민들에게서 '눈덩이 효과'나 'FOMO'와 같은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치솟는 확진자 수와 늘어가는 사망자 수, 엄청난 전염 속도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럼에도 사재기 없이 침착하게 정부의 지침을 따르고 자발적으로 예방책을 실천하는 모습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다른 많은 나라들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