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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다. 지난 3월 18일,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둘이 이 산 정상에 있는 '검단산, 해발 657m'고 쓰인 정상 표석에서 나란히 찍은 인증샷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올라 화제가 된 산이다. 이후 많은 청소년들이 검단산에 올라 인증샷을 찍으려고 산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즐거운 얼굴로 산을 오르는 모습을 많이 봤다.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이렇게 많이 찾는 산이 되었지만, 이 산을 찾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그들의 우상을 향한 열광적 사랑을 위한 단순한 즐거움의 대상인 그저 산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 산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역사적 도움이 되려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

조선시대에는 '검단산(黔丹山)'이 광주군(廣州郡)의 진산(鎭山: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 )으로 여겨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광주군은 조선시대 때 제일 넓은 고을이라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의 서울시의 일부와 성남시 그리고 안산시의 일부와 남양주시의 조안면까지 아울렀던 큰 고을의 주산으로 당당히 군림하던 산이었다. 지금은 행정구역 편제상 작은 하남시에 속해 있지만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 14년 3월 19일에 광주 검단산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친히 사슴 8마리를 쏘았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바로 앞날인 3월 18일에 "내시 별감(內侍別監)을 보내어 광주(廣州)의 성황(城隍)과 검단산(儉丹山)의 신(神)에게 제사지냈다."고 하여 사냥을 나가기에 앞서 산신에게 제사를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는 세종임금 시절에도 사냥을 와서 친히 사슴 한 마리를 쏘아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학자 군주로만 알려진 세종도 강무에 참가하여 친히 사냥을 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사냥은 짐승을 포획하고 즐기는 놀이의 의미도 있지만 강무(講武)의 성격도 있다. 강무는 왕이 직접 참가해서 군사훈련을 겸하여 하는 일종의 수렵대회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많이 행해졌으며 엄격한 의식 절차가 있었다.<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종임금 시절에 이곳 검단산에서 강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검단산에 오는 등산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도 실록에 전한다. 성종실록에 '비가 오기를 비는 데 응험(應驗)이 없으니, 광주 검단산에서 짐승을 쫓으면 비가 온다하니 사복을 보내어 사냥을 하여 노루와 사슴을 잡아서 중국 사신의 연향(宴享)에 쓸 것을 준비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면 혹 비를 얻을 것 같다'고 임금이 전지(傳旨)를 내리니 그렇게 하겠다는 장면이 나온다. 검단산이 영험해서인지 그러한 속설이 있었나 보다.

또, 인조실록에는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난 때에는 춘천 영장(春川營將) 권정길(權井吉)이 군사를 거느리고 검단산(儉丹山)에 주둔하면서 여러 차례 싸워 많이 이겼는데 갑자기 청병(淸兵)이 뒤를 엄습하는 바람에 무너졌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실학의 집대성자로 추앙되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의 생가가 팔당 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광주군이지만 지금은 남양주시에 편제되어 있다. 다산 선생이 이곳 검단산에서 봄의 꽃구경을 하고 지은 한시가 있어 소개한다.

검단산(黔丹山)의 꽃구경(黔丹山賞花)

모정에 모여 봄 술 마실 때 茅亭會酌春酒
버들 늘어진 언덕 앞에 작은 다리 있네. 柳岸前臨小橋
이슬비 내리는 연초록 잎들 雨葉如黃似綠
안개 속에 버들가지 하늘거리네. 煙條乍靜還搖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봄날에 모정에 앉아 하늘하늘 늘어진 버드나무의 간드러지는 흔들림과 흐드러진 꽃들을 감상하며 맘에 맞는 벗들과 어우러져 흥겹게 춘주(春酒)를 마시며 봄놀이를 즐기는 광경이 눈에 비칠 듯 그려진다. 아마도 지금의 다산 유적지 여유당에서 가까운 두호(斗湖, 다산은 자신의 집 근처 팔당강 상류를 그렇게 불렀다.) 옆에 지은 작은 정자(모정)에 앉아서 반대편 검단산의 꽃들을 감상하며 지은 것 같다.

춘주는 '삼해주(三亥酒)'라고도 하는데 '세 차례 이상 나눠 빚는 고급술<문화원형용어사건>'이라고 한다. 음력 정월 상, 중, 하의 해일(亥日) 3회에 걸쳐서 빚는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 술이다. 그러니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는 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말기 개화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구당(矩堂) 유길준(俞吉濬, 1856〜1914) 선생이 잠들어 계신 곳이기도 하다. 현재 검단산 등산로 안내 표지판에 구당 유길준 묘역으로 가면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선생의 아버지와 아들의 묘소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구당 선생은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지켜보신 분이다. 조선시대 최초로 국비 미국 유학생으로 갔다가 갑신정변의 소식을 듣고 귀국하는 길에 둘러 본 유럽의 문물을 기록한 책이 바로 유명한 『서유견문(西遊見聞)』이다.

이 책은 단순한 기행기가 아니라 개화를 위한 방편을 기록한 방대한 양의 종합교양서적이다. 고종 임금에게 헌사(獻辭)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국내에서는 출판되지 못하고 일본의 스승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상재(上梓)되었다.

선생은 20대 초반에 개화파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선생의 사랑방에서 당시의 개화세력을 이끌던 김옥균, 박영효 등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개화사상을 터득하였다. 환재는 바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생의 손자가 된다.

선생의 구국(救國)의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하기에는 지면이 짧다. 다만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들여다보면서, 재미삼아 왔던 산행 길에 역사 공부도 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선조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건 내 삶의 이정표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길이 또 후대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야 함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시정부의 주석이신 백범(白帆) 김구(金九)선생이 즐겨 휘호하셨던 한시를 한편을 소개한다. 참고로 이 시는 조선시대후기의 산운(山雲) 이양연(李亮淵)의 시인데 서산대사의 시로 잘못 알려져 있다<정민>.

눈 내린 들판(野說)

눈 내린 들판 밟고 갈 때 踏雪野中去
함부로 어지럽게 가지 말라.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간 발자취가 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遂作後人程


코로나바이러스19로 온 나라가 도가니의 형국으로 온 국민이 힘겨운 때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본다는 의미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지내다 숨도 한 번 돌릴 겸 해서 산행을 왔다가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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