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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개금산 남쪽 기슭에는 흥성장씨(興城張氏)의 낙남(落南) 선조, 효우당(孝友堂) 장창우(張昌羽 1704~1774)를 제향(祭享)하는 사당, ‘영식재(永式齎)’가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개금산 남쪽 기슭에는 흥성장씨(興城張氏)의 낙남(落南) 선조, 효우당(孝友堂) 장창우(張昌羽 1704~1774)를 제향(祭享)하는 사당, ‘영식재(永式齎)’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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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는 산봉우리의 모습이 마치 닭벼슬(鷄冠)과 같아서 '계관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다. 지금은 '개금산'이라고 부른다. 산이 아름답고 돈이 많이 모인다 하여 마치 '금으로 덮인 것 같다'는 의미의 개금산(蓋金山)이다.

야트막한 산정(177m)에 오르면 광주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울창한 송림 사이로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산 자락에는 전원주택과 카페가 줄지어 있고, 인근에 있는 전평 저수지의 수려한 경관과 오리고기를 비롯한 맛집들이 늘어서 있어 사시사철 광주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영식재 뒤편 개금산 초입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영식재 뒤편 개금산 초입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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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들 가지를 늘여 놓고 있는 전평 호숫가의 수양버들
 실버들 가지를 늘여 놓고 있는 전평 호숫가의 수양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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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개금산 남쪽 기슭에는 흥성장씨(興城張氏)의 낙남(落南) 선조, 효우당(孝友堂) 장창우(張昌羽 1704~1774)를 제향(祭享)하는 사당, '영식재(永式齎)'가 있다.

1929년에 후손, 장정섭(張整燮)·장안섭(張安燮)·장창섭(張昌燮) 등이 주도하여 세워진 이 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八) 모양의 팔작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다. 내부는 대청마루 1칸과 좌우 온돌방 2칸을 조성하였고 입구에는 솟을대문이 우뚝 서있다.
   
 영식재 입구. 솟을대문이 우뚝하다
 영식재 입구. 솟을대문이 우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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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마 밑에 걸려있는 ‘영식재(永式齎)’ 현판. 효우당의 아름다운 행적을 오래도록 본받자는 뜻에서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휘호 한 것이다
 처마 밑에 걸려있는 ‘영식재(永式齎)’ 현판. 효우당의 아름다운 행적을 오래도록 본받자는 뜻에서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휘호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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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높은 곳에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이 지은 상량문과 후석 오준선과 김서규 지사가 남긴 기문 등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처마 밑에는 '영식재(永式齎)'란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는 효우당의 아름다운 행적을 오래도록 본받자는 뜻에서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휘호한 것이라 한다.

정원에는 붉디붉은 동백이 활짝 폈고 오래된 고목의 벚나무들은 연분홍 꽃망울을 가득 머금고 있다.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한 조선시대에 충과 효는 분리될 수 없었다. 어버이를 향한 변치 않는 붉은 마음, 단심(丹心)은 곧 충(忠)으로 이어졌다. 사당에 붉은 동백이 심어져 있는 이유다. 대문 입구 커다란 바위에는 '민재공퇴장추모비'가 마치 사당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서있다.

이 비는 조선 현종 때 어떤 가문에서 선산을 무단 침범하여 묘를 쓰려한 것을 효우당의 증손, 민재공 장봉익이 나서서 범장(犯葬)을 물리치고 선영을 지킨 사실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한 조선시대에 충과 효는 분리될 수 없었다. 어버이를 향한 변치 않는 붉은 마음, 단심(丹心)은 곧 충(忠)으로 이어졌다. 사당에 붉은 동백이 심어져 있는 이유다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한 조선시대에 충과 효는 분리될 수 없었다. 어버이를 향한 변치 않는 붉은 마음, 단심(丹心)은 곧 충(忠)으로 이어졌다. 사당에 붉은 동백이 심어져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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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270여 년 전 1750년경 조선 영조 때 남원에서 광주 세하동 동하마을로 내려온 효우당 장창우는 '만귀정'이라는 초가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자연과 더불어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성품이 총명하고 양친 부모에게 효를 다했으며 종친 간에는 우애가 돈독하였다.

어버이가 병환에 들어 상을 당하자 철저히 의식에 따라 장례 절차를 따랐으며 장례 후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버이 생각에 하루도 눈물 마를 날이 없었고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는 풀도 자라지 못하였다. 효성에 감복한 호랑이가 여막 주위를 호위하며 다른 짐승들로부터 효우당을 지켜 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영식재 정원에는 붉디붉은 동백이 활짝 폈다
 영식재 정원에는 붉디붉은 동백이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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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유로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하였고 관에서는 포상을 하였다. 지방 선비들의 칭찬이 한없이 이어진 까닭에 효우당의 훌륭한 행적이 잊히지 않고 계속 전해져 광산 읍지와 삼강안(三綱案)에 자세히 기록되어 내려 왔다.

효우당이 남원에서 광주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던 세하동 동하마을은 흥성 장 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입구에 후손들에 의해 새로 중건된 정자, '만귀정(晩歸亭)'은 광주광역시 서구 8경 중 제1경으로 선정될 만큼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효우당 장창우가 남원에서 광주로 내려와 정착한 동하마을 입구에는 후손들이 중건한 만귀정이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 8경 중 제1경으로 선정될 만큼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효우당 장창우가 남원에서 광주로 내려와 정착한 동하마을 입구에는 후손들이 중건한 만귀정이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 8경 중 제1경으로 선정될 만큼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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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우당이 만년을 보냈던 동하마을 만귀정에서 멀지 않은 곳 광주 매월동 개금산 아래 효자 선비가 머무는 집, 영식재 주련(柱聯)의 문구에는 옛사람들의 거룩한 일들이 현세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지길 바라는 효우당의 마음이 담겨 있다.

一樹開花各自紅
한 나무에 꽃을 피워도 각기 스스로 붉고
千流分派同歸碧
물줄기가 천 갈래로 나뉘어 흘러도 종래는 바다에서 하나 되도다
四時芬苾肅恭中
항상 조상에게 공손히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拜謁斧堂正鞠躬
단정히 몸을 굽혀 부당에 배알하고
光前裕後業無窮
선대의 유업 빛내고 후손의 장래 무궁토록 열어 주네
遙知萬事求在我
세상만사를 남이 아닌 자기 안에서 구함을 알고 있으니
百世羹墻瞻仰上
오래도록 조상을 우러러 사모하며
追遠誠心戒愼終
삼가 경계하여 조상 섬김에 공경을 다 할 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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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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