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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 청계천 모전교에서 한 시민이 21대 총선 '4.15 아름다운 선거' 홍보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30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 청계천 모전교에서 한 시민이 21대 총선 "4.15 아름다운 선거" 홍보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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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1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에서는 300명(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이 선출된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주요 직업들이 이 300명을 통해 반영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직업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재벌기업 최대 주주가 국회에 진출하면 논란이 생긴다. 재벌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다. 종교 지도자가 진출해도 그럴 소지가 있다. 종교의 중립성이나 순수성이 훼손될 위험이 커진다. 고위직 교육자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그렇다.

이런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직업이 있다. 바로, 언론인이다. 특정 언론인이 국회에 진출하면, 그간 썼던 기사들의 순수성이 의심받거나 정치인들과의 친분이 새롭게 조명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권언유착 논란을 낳을 소지가 생기게 된다.
 
"이른바 언론이라는 것은 대중과 조화되고 세속과 같아야 한다.(所謂言者, 齊於眾而同於俗) 오늘날 구천(九天)의 꼭대기를 언급하거나 황천의 밑바닥을 언급하는 것은 양극단으로 치우친 논의이니 어찌 공론이라 할 수 있겠는가?(今不稱九天之頂, 則言黃泉之底, 是兩末之端議, 何可以公論乎)"

기원전 2세기에 한나라 황실의 회남왕 류안(劉安·유안)이 지은 <회남자>의 수무훈(脩務訓)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는 '언론은 공론(公論)이어야 한다'는 사상이 존재했다. 언론은 사회의 한쪽이 아닌 사회 전체를 반영해야 한다는 이런 논의들을 수렴해서 주자가 유교적 언론관을 정립하고 이것이 조선 시대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언론은 공공의 물건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지배해왔기 때문에, 언론인이 특정 정치세력과 가까워지거나 그들과 합세해 선거에 출마하게 되면 언론의 공공성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권언유착은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역대 선거정보 시스템'에 제시된 국회의원 당선자 직업을 살펴보면, 권언유착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에서는 언론인 출신 당선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위 시스템에서는 일부 지역구 당선자와 제 6~16대 총선 전국구 당선자의 직업 통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위 시스템만 놓고 보면 언론인 출신 당선자가 거의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6~17대 총선에서 각각 1명의 지역구 당선자가 나온 것으로 적혀 있을 뿐이다.

위 시스템에서 언론인 당선자가 적게 나온 이유는 당선자들에 관한 자료가 완전히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선된 당선자의 직업을 무조건 '국회의원'으로 표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원이 되기 전에 무슨 직업을 가졌든 간에 현직 의원 신분으로 당선된 사람의 직업을 전부 다 국회의원으로 표기하다 보니, 당선자들의 직업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언론인의 의회 진출 실태를 확인하려면, 학계 연구성과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한국언론학보> 제61권 제3호에 실린 김세은 강원대 교수의 논문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그런 성과 중 하나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의 특성과 변화를 추적한 이 논문에 따르면, 생각 외로 많은 언론인들이 정치권에 진출하고 그중 상당수가 국회의원이 됐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서는 1948년 1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직업 통계를 제시할 때 언론인 항목을 아예 넣지 않았다. 그래서 이 통계에서는 언론인 당선자가 그때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위 논문에 따르면, 당시 언론인 출신 당선자는 무려 41명이었다.

제1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승만도 <협성회보>, <매일신문>, <제국신문>을 창간하고 기자와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 출신이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에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한 허정도 1대 총선에 당선됐다. 그도 1923년에 <삼일신보>를 창간한 언론인이었다.

이런 이들은 그 후로도 많이 배출됐다. 비교적 최근 사례를 들면, 이만섭·김윤환·정동영·박영선·민경욱·강효상 등등을 들 수 있다. 위 논문에 따르면, 이런 폴리널리스트의 규모는 아래와 같다.
 
"제헌국회부터 20대까지의 국회의원 가운데 언론인 출신은 모두 377명이며, 제헌국회 당시 20.5%를 시작으로 대체로 15% 전후를 유지하다가 16대 20.1%를 기점으로 감소세에 접어들어 19대와 20대에는 26명으로 8.7%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주요 외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들 폴리널리스트의 출신지, 출신 학교, 출신 언론사 등은 다음과 같다.
 
"이들의 인구사회학적 변인과 언론사 및 정치 관련 경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남과 경북, 경기고와 전주고, 서울대 출신, 정치외교학과 법학 전공자가 가장 많았다. 출신 언론사는 단일 단위로 봤을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가장 많았고, 절반 이상이 보수여당 계열로 진출했으며, 지역구보다는 경선을 치르지 않는 비례대표/전국구가 많았다."
 
뉴라이트

언론인이 총선에 출마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헌법 제15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언론인들의 국회 진출이 순전히 개인 역량만으로 이뤄졌다면 모르겠지만, 상당 부분은 권언유착이라는 부조리의 결과로 이뤄졌기에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권언유착은 진보 언론과 민주 정당의 관계에서도 나타났지만, 그보다는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의 관계에서 주로 나타났다.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동아일보> 기자 이동관의 청와대 및 20대 국회 진출을 들 수 있다.

이동관 기자가 기자 시절에 이룩한 '최대 업적' 중 하나는 뉴라이트 운동의 등장에 간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신우익'을 뜻하는 뉴라이트라는 명칭의 탄생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8년 9월호 <신동아> 기사 '자만·과욕·혼돈 신(新)권력 뉴라이트'는 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의 제보를 기초로 "뉴라이트란 명칭은 이동관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최홍재씨와 함께 술자리에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뉴라이트 운동이 이명박 대선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뒤 갑자기 쇠퇴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이 실상은 이명박 대선 운동의 사전 작업이었다는 점에 관해서는 이 운동의 대부인 김진홍 목사가 이명박 당선 직후에 솔직히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 점은 2007년 12월 25일 자 <중앙일보> 기사 '이명박이란 대통령감 있어 2년 전 뉴라이트 운동 시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적으로 이동관 <동아일보> 기자의 뉴라이트 운동 관여는 권언유착의 범주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 뒤 그는 이명박 후보 캠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물론 청와대에 들어가서 이 정권의 언론정책을 주도하고 YTN 및 MBC 해직 사태에도 간여했다. 그런 다음, 20대 국회로 진출했다.

언론대책 문건
 
 1999년 10월 30일 자 <동아일보>
 1999년 10월 30일 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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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보수 정당과 민주 정당이 동시에 연루된 권언유착 사례도 있다. 1999년의 '언론대책 문건'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김대중 정권하의 민심 이반을 부추긴 옷 로비 의혹 등에 대한 대처 방안을 담은 언론대책 문건의 유출로 인해 빚어진 이 사건은, 여야 정당을 한꺼번에 연루시키면서 커다란 정치 문제로 발전했다.

1999년 10월 30일 자 <동아일보> 3면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이 사건은 베이징에서 연수 중인 문일현 <중앙일보> 기자가 1999년 6월 24일 평소 친분이 있던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의 전신) 부총재의 사무실에 위 문건을 팩스로 전송한 데서부터 비롯됐다.

문일현 기자가 작성하고 발송한 이 문건을, 며칠 뒤 이 사무실에 들른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가 우연히 발견했다. 문건을 몰래 복사한 이도준은 그것이 국가정보원에서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무실 주인인 이종찬이 그해 5월까지 국가정보원장이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작성한 문건이므로 국가정보원 공문서와 형식 면에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도준한테서 문건을 받은 평화방송 간부들도 이도준의 추정이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평화방송은 이 문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도준은 평소 친분이 있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안기부 제1차장 출신)을 찾아갔다. 그 뒤 정형근은 이강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작성한 문건이라며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때 이 문건을 폭로했다. 하지만 진짜 작성자가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수 정당과의 권언유착뿐 아니라 민주 정당과의 권언유착까지 한꺼번에 도마에 올린 이 사건은 당시 언론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해 10월 29일 한국기자협회는 "문건을 만든 문일현 기자와 이를 정치인에게 제공한 이도준 기자의 행위는 기자의 윤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 "이번 일은 두 기자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권언유착에 익숙한 우리 언론의 병폐가 곪아 터진 결과"라며 자성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권언유착 타파

언론인이 공직선거에 도전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간 언론인 상당수의 공직 진출은 권언유착과의 연관성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직에 진출하기 전에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은밀히 봉사하는 일도 있었고, 공직에 진출한 후에 특정 세력을 위해 언론정책을 기획하거나 집행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구조를 정치권과 정권이 악용하는 일도 많았다. 한국사회에서 폴리널리스트란 단어가 결코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런 권언유착을 막자는 차원에서 이러저러한 제안들이 나왔다. 2004년에 <관훈저널> 봄호에 실린 장행훈 전 동아일보 편집장의 기고문 '언론인의 정계진출, 왜 문제인가?'에서는 "2월말 열린 언개련 토론에서 나온 제안처럼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려면 적어도 6개월 또는 1년 전에 언론계를 떠나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언론인의 국회 진출에 대한 직접적인 글은 아니지만, 2006년에 <관훈저널> 여름호에 실린 김창룡 인제대 교수의 기고문 '기자 출신 정부부처 공보관 확대를 보는 시각'에서는 "언론인의 대거 정부 진출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그 특채는 극히 일부에 한정돼야 할 것"이라면서 "그 과정 역시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쟁체제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언론인을 특채할 때는 특별히 투명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다.

위의 김세은 논문에서는 폴리널리스트를 배출하는 언론사는 물론이고 언론계 전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우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 논문은 "정계 진출 이후의 활동에 대한 감시와 분석, 평가를 언론계에서 지속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한 뒤 "2014년 전북기자협회에서 선거캠프나 지방자치단체장 홍보팀 등에 참여한 자의 현업 복귀를 2년 제한"한 사례를 긍정적으로 거론했다.

권언유착 타파의 출발점은 언론인 본인과 언론사이겠지만, 이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노력이 보태진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궁극적 책임은, 권언유착으로 최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일반대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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