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피터슨 감독의 1995년작 <아웃브레이크>는 코로나19 시국에서 자주 소환되는 영화다.

볼프강 피터슨 감독의 1995년작 <아웃브레이크>는 코로나19 시국에서 자주 소환되는 영화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볼프강 피터슨 감독이 연출하고 더스틴 호프만, 모건 프리만, 도날드 서덜랜드가 출연한 1995년 작 <아웃브레이크>(원제 : Outbreak)는 현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주 '소환'되는 영화다. 

먼저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다크릭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창궐(outbreak)한다. 이 바이러스는 자이르의 모타바 계곡에서 발견됐는데, 이에 당국은 모타바 바이러스라 명명한다. 이 바이러스는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데 잠복기가 짧고 한 번 감염되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치명적이다. 

세다크릭 주민들이 이 바이러스에 잇달아 감염되면서 주민들과 의료진은 패닉에 빠진다. 이대로 뒀다간 미국 전역에 퍼져나갈 기세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군이 나서 상황을 통제한다. 이후 미 육군 전염병의학연구소(USAMRIID)의 군의관 샘 대니얼스(더스틴 호프만)은 천신만고 끝에 바이러스의 숙주를 찾아내 해독제 개발에 성공한다. 

영화는 지금 보아도 새롭다. 무엇보다 영화가 보여주는 패닉 상황은 코로나19를 예언한 듯하다. 영화 속 상황은 전시를 방불케 한다. 현장 지휘관인 도널드 맥클린톡 장군(도널드 서덜랜드)은 모타바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며 세다크릭에 폭탄을 떨어뜨리려 하고, 대통령은 이를 승인한다. 

그런데,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미 육군 전염병의학연구소 빌리 포드 장군(모건 프리만)과 직속상관인 맥클린톡 장군이 훨씬 이전인 1967년에 모타바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았고, 치료제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맥클린톡과 포드는 샘 대니얼스의 바이러스 연구를 통제하려 한다. 대니얼스가 바이러스 연구를 계속할수록 자신들이 숨겨왔던 치료제의 존재가 탄로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맥클린톡과 포드는 모타바 바이러스로 비밀리에 생물학 무기 개발을 해온 것이다. 

코로나19로 위상 높아진 대한민국 
 
 영화 <아웃브레이크>에서 군의관 샘 대니얼스(더스틴 호프만)는 상부의 방해 공작에도 모타바 바이러스 숙주를 찾는데 성공한다.

영화 <아웃브레이크>에서 군의관 샘 대니얼스(더스틴 호프만)는 상부의 방해 공작에도 모타바 바이러스 숙주를 찾는데 성공한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눈 여겨 볼 대목은 또 있다. 바이러스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인데, 이 대목은 한국 관객으로선 무척 불쾌할 수 있다(영화 개봉 당시에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숙주는 자이르 모타바 계곡에서 서식하는 원숭이였다. 이 원숭이는 밀렵꾼에게 잡혀 미국으로 들어오고, 동물 밀매업자는 관세원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이 원숭이를 빼돌린다. 이 원숭이가 사람과 접촉하면서 모타바 바이러스가 미국에 퍼진다. 

그런데 이 원숭이가 타고 온 배가 한국 선적의 '태극 시애틀호'였다. 요약하면 한국 선적의 배가 모타바 바이러스의 운반책(?) 노릇을 한 셈이다. 

이런 설정이 한국을 '콕' 찍어 비하했다고는 볼 수만은 없다. 적이 미국 바깥에서 온다는 건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문법이다. 냉전 시절 적은 소련 등 공산권이었고, 냉전 체제 붕괴 이후 적은 내부, 혹은 아시아·아랍 등 제3세계에서 미국으로 들어왔다. 

다만 당시만 해도 한국은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2002년에 나온 007시리즈 <다이 어나더 데이>는 한국을 아우르는 한반도가 배경인데, 미국 등 서구 관객에게 한국이 저개발국이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모타바 바이러스가 한국 배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온다는 <아웃브레이크>의 설정은 한국에 대한 저평가의 소산일 것이다. 이런 시각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2013년 작 <월드 워 Z>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창궐하는데, 창궐지는 바로 한국 평택의 험프리 미군 기지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에서 한국은 더 이상 이전의 한국이 아니다. 무엇보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CNN, BBC 등 영미권 주요 외신은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특히 CNN은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를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도 23일 자에서 "한국은 중국과 함께 코로나19 환자가 대규모로 나왔지만 신규 확진자를 줄인 유일한 나라다. 중국처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유럽이나 미국처럼 경제에 피해를 주지 않고서도 그렇게 했다"고 적었다. 국내 언론,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이 정부 대응을 질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수 언론의 폄하에도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전 세계의 찬사는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한국의 의료장비를 지원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문 대통령은 "국내 여유분이 있으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모하메드 사우디 왕세자,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문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코로나19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코로나19 이후 각국에서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쏟아지리라 기대한다. 할리우드에게 코로나19는 더 없이 좋은 주제일 것이다. 할리우드, 아니 세계 영화계가 한국을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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