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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한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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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배재학당에 다니면서부터 기독교 신앙인이었다.

기록상으로는 1905년 6월 16일 배재학당 보통과 5년 졸업 때에 세례를 받고 예수교에 입교한 것으로 나타난다. (주석 5)

이후 전덕기 목사를 비롯하여 사회활동ㆍ민족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 중에 기독교인이 많아서 그의 신앙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상동청년학원은 상동교회에서 세운 부설교육기관이어서 교사나 학생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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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1909년 예수교에서 대종교(大倧敎)(당시에는 단군교)로 개종하였다.

"이는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와 종교가 사대사상에 의한 외래 종교에 의해 정신적 침략을 받아 쓰러지려 함을 염려한 애국적 민족주의자의 결단성에 기인한 것이다. 뒤에 대종교의 최인 등 기타 종교인들과 함께 이러한 종교운동을 일으키다가 종교인들에게 물의를 일으키어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주석 6)


홍암 나철(羅喆,1863~1916)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동지 오기호 등과 함께 을사오적 암살단을 조직하고, 이를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유배되었다. 풀려나와 민족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은 민족의식의 고취에 있다고 확신하고 1909년 1월 단군교를 창시하였다. 얼마 뒤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종교 3대종사 묘역임을 알리는 표지석. 비석에는 ‘대종교 대종사’라 새겨져 있는데, 안내문에는 ‘반일 지사’로 적어 놓았더군요.
 대종교 3대종사 묘역임을 알리는 표지석. 비석에는 ‘대종교 대종사’라 새겨져 있는데, 안내문에는 ‘반일 지사’로 적어 놓았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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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의 교도들은 독립협회와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었다. 박은식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대종교는 우리 삼신시조(三神始祖)를 신념하는 최고의 종교이다.(…) 그 신조는 그 족성(族姓)과 국성(國性)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민족성을 지키려는 신념으로 창시한 종교이다.

대종교가 수행해야 할 시대적 역할을 민족의 고유종교를 다시 일으켜 세움으로써 민족보전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 그런만큼 대종교는 그 교리 자체에 독특한 역사 인식체계를 달고 있었다. 이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선교적(仙敎的) 국사 인식의 전통을 계승ㆍ발전시킨 것으로서, 일제하 민족주의 사학의 형성과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석 7)

 
 눈 쌓인 대종교 3대종사 묘소. 왼쪽부터 서일, 나철, 김교헌 대종사
 눈 쌓인 대종교 3대종사 묘소. 왼쪽부터 서일, 나철, 김교헌 대종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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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시기에 주시경이 단군교(대종교) 운동을 외면할 리 없었다. 시기를 달리하여 이상룡ㆍ박은식ㆍ김교헌ㆍ신채호 등 민족주의 사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대종교에 입교하거나 관계를 맺었다.

선생은 종교가 예수교였었는데 이때 탑골승방에서 돌아오다가 전덕기 목사를 보고 "무력 침략과 종교적 정신 침략은 어느 것이 더 무섭겠습니까?" 하고 물을 때는 전 목사는 "정신 침략이 더 무섭지" 하자, 선생은 "그러면 선생이나 나는 벌써 정신 침략을 당한 사람이니 그냥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하였다.

전 목사는 "종교의 진리만 받아들일 것이지 정책은 받지 않으면 될 것이요." 하였지마는 선생은 과거 사대사상이 종교 침략의 결과임을 말하고 종래의 국교인 대종교(곧 단군교)로 개종하여…. (주석 8)

 
 민중목회를 실천한 선한 목자이자 을사늑약 반대 운동, 상동청년학원을 통한 교육구국운동, 헤이그 특사 파견, 신민회 창립 등 1900년대 항일민족운동의 위대한 거목이었다
 민중목회를 실천한 선한 목자이자 을사늑약 반대 운동, 상동청년학원을 통한 교육구국운동, 헤이그 특사 파견, 신민회 창립 등 1900년대 항일민족운동의 위대한 거목이었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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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자신의 사회활동의 발판이기도 하는 예수교(기독교)를 떠나 민족종교인 대종교로 개종하였다. 이후 대종교의 교조 나철은 20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일제의 학정을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고, 제2대 교주 김교헌은 일제의 탄압으로 교단의 총본사를 만주로 옮겨, 1919년 3ㆍ1혁명 후 만주로 오는 동포들을 모아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서게 하였다.

그 실례로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북로군정서의 장병은 대부분이 대종교의 교인들이었다.


주석
5> 「주시경 연보」, 『주시경 학보』제1집, 260쪽, 탑출판사, 1988.
6> 『나라사랑』 제4집, 23~24쪽.
7> 이도학, 「대종교와 근대민족주의사학」, 『국학연구』제1집, 60쪽, 한국전통문화연구회 국학연구소, 단기 4321년.
8> 김윤경, 앞의 책, 「주시경선생 전기」, 22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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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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