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구의 한 시장 골목에 책방을 연 건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12월이었다. 단장을 마치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책방은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긴급히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2월 20일 영업을 끝으로 지금까지 문이 닫혀 있다(관련 기사 : "희망 얻을 만한 책 좀..." 대구의 작은 책방에서 생긴 일).

애초 3월 23일 학생들 개학일에 맞춰 영업을 재개할 생각이었지만, 초·중·고 개학이 4월 6일로 한 차례 더 연기되면서 부득이하게 휴업을 2주 더 연장했다. 작은 골목에 입점한 가게는 존재가 알려지기까지 꾸준히 주민들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책방 앞에서 기웃거리던 주민들이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전염병이 퍼져 무척이나 아쉽다.

소득은 끊겼는데 고지서는 끊임없이 날아들고

6주간의 휴업으로 인한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개업 전 인테리어 공사와 서적 구입으로 지출이 폭증한 상태인데 휴업으로 소득은 없고 월세와 전기요금, 통신비 청구서는 끊임없이 날아든다.

책방과 건물 화장실을 공유하는 바로 옆 족욕가게는 심지어 올해 1월 개업했다. 개업 축하 화분들은 메시지가 담긴 분홍 리본을 떼어내기도 전에 닫힌 문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착한 임대인 운동'을 의식해서인지 건물 위층에 사는 주인은 지금도 나를 피하는 눈치다.

문은 닫아도 일주일에 한 번 소독하고 화분에 물 주러 책방에 들렀다. 시장 안은 늘 휑했다. 상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점포를 열어두었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책방 근처 동네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직후부터 물건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책방 근처 동네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직후부터 물건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책방 건너편 찜닭 전문점은 직원이 여럿이라 휴업하지 못하고 포장과 배달 위주로 운영 방식을 바꿨는데 주문이 없는지 문이 자주 잠겨 있다. 국수 가게는 지난 주 영업을 재개했지만 역시 손님이 드물단다. 골목에서 그나마 생기가 도는 곳은 화분 가게다. 고립과 격리의 기간이 늘면서 주민들이 귀갓길에 화분을 사간단다.

지난해 12월 구청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던 때가 생각난다. 줄이 길어 한 시간 남짓 기다리는 동안 인테리어 마감, 간판 설치, 인터넷 개통, 물품 구매를 논의하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했다. 발길 끊긴 골목을 바라볼 때마다 그분들은 개업하자마자 휴업해야 하는 난관을 어떻게 헤쳐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행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23일 오전 권영진 대구시장은 '코로나19 긴급생계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관련 기사 : 대구시 수급자부터 중위소득까지 50만~90만원 지원). ① 저소득층특별지원 ② 긴급복지특별지원 ③ 긴급생계자금지원 방안은 중위소득, 가구원 수, 기존 복지혜택 수혜 여부에 따라 복잡한 기준으로 분류돼 있다.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내가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어느 항목에 지원해야 하는지 등을 구청에 문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찾아온 경영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만 관련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장기 휴업에 따른 손실은 어떻게 보전할 수 있는지 언론 보도를 찾아봐도 알 수 없다.

6599억 원 규모의 1차추가경정예산 중 587억 원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생존지원에 따로 쓰인다는데, 보조금 지급 방식인지 대출 방식인지 등의 구체적 정보는 빠져 있다. 답답답 마음에 유튜브에서 브리핑 풀영상을 찾아봤다. 소상공인 맞춤 지원은 총선 후에나 가능하다는 답변만 확인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13일 대구시청에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13일 대구시청에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대구시청

관련사진보기


대구시는 긴급생계지원 패키지의 지급 시기를 4월 15일 총선 이후로 정했다고 밝혔다. 권영진 시장은 긴급생계지원을 '긴급히' 시행하지 않는 이유로 '선거 사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들었다. 총선으로 공무원들이 바쁜 와중에 경제지원까지 시행하면 주민자치센터 업무가 폭증하고, 대면 접촉으로 지원이 이뤄지면 사회적 거리두기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아마 이날 브리핑을 접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대구시에 묻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선거와 경제지원 중 뭐가 더 중요하냐고. 공무원은 당장 먹고 사는 게 걱정인 시민들에게 투표 용지를 나눠주기 위해 존재하냐고.

이런 가운데 대구시는 6월 말에 열리는 '치맥페스티벌' 예산은 삭감하지 않았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지금 대구시가 신경 쓸 건 치킨과 맥주가 아니라 조속한 경제지원과 지역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줄 실질적 방안 마련이 아닐까. 

태그:#코로나19, #대구 소상공인, #대구광역시
댓글3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