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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ta Sur 이슬라 무헤라스 섬 남단의 Punta Sur. 바다 빛이 비현실적이다. ⓒ CHUNG JONGIN
 
칸쿤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첫 번째 목적지인 여인의 섬, 이슬라 무헤레스(Isla Mujeres)로 향했다. 섬까지는 배로 15분 정도 걸렸다. '과연 칸쿤이구나!'라고 할 정도로 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신비한 색깔로 사람을 현혹했다.

섬에 도착하자 일행을 맞이하는 건 끈끈한 더위와 여기저기 풍기는 멕시코 특유의 시장 냄새, 가지각색의 자유분방한 관광객들, 그리고 시끄럽고 좁은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와 골프카였다.

스페인 정복 이전, 섬은 출산과 의학의 여신인 이스첼(Ixchel)을 모시던 곳으로, 스페인 사람들은 이곳에 있던 많은 여신상을 보고 여인의 섬으로 명명하였다. 이슬라 무헤레스는 남북으로 길이가 7km, 동서로 폭은 650m인 작고 긴 섬이다. 폭이 좁아 어디에서든 바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칸쿤 호텔 존에서 섬까지 페리로 15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주로 칸쿤에서 놀러 온 일일 관광객들이었다. 이들은 칸쿤보다 편안하고 저렴한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해변에서 놀다 돌아간다. 그래서 페리 터미널이 있는 섬 북쪽에 호텔과 리조트, 식당 등 위락시설이 많고 해변은 푸른색의 비치 파라솔로 채워져 있다.

섬에 도착한 일행 역시 섬 북쪽의 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식당과 상가가 즐비해 있는 가장 시끄럽고 바쁜 곳이긴 했으나 그만큼 편리하기도 했다.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잡화점 섬 북쪽 다운타운에는 이같은 가게들이 모여있다. ⓒ CHUNG JONGIN
 
해변은 5분 거리 안에 있었다. 지인이 고급 호텔에 있는 덕분에 호텔 전용 비치를 예약할 수 있었는데, 일행은 단순한 파라솔이 아닌  초가 지붕 아래의 침대 위에서 뒹굴며 바다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이곳이 천국이구나…' 

채로 거른 듯한 고운 모래와 청 녹색 바다, 물은 잔잔하고 따뜻하고 깊지 않았다. 
 
Playa Norte 해안 채로 거른듯한 고운 모래와 청 녹색 바다, 물은 잔잔하고 따뜻하고 깊지 않았다 ⓒ CHUNG JONGIN
 
섬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천국과도 같은 해변에서 뒹굴고 자고 먹고 마시는 거다. 수영을 잘하고 파도타기를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해가 뜨거우니 선글라스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튜브 위에 떠 있는 것도 좋겠다. 바다 수영에 자신이 없는 나는 튜브가 없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고 흔히 하는 것은 골프카를 빌려서 섬을 둘러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골프카가 신호등도 별로 없는 거리에서 마구 다니는 것이 불안하고 기름 냄새가 조금은 역겨웠으나, 직접 타보니 작은 섬에서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며 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데 그만이었다.  

일행은 마야 고적이 남아있는 푼타 수르(Punta Sur)에 가기 위해 두 시간 가량 골프카를 빌려 섬 남쪽으로 갔는데, 환상적인 바다 빛에 반해 다음 날에는 온종일 빌리기로 했다. 온종일이란 아침 9시부터 5시까지로, 두 시간 이상 빌리는 것과 값 차이가 없었다.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해지며 본격적으로 섬을 즐길 수 있었다.

전날 골프카로 한번 갔던 곳이고 섬 중간까지 걷기도 하였기에 길이 눈에 익었다. 골프카가 많이 주차해 있는 곳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해변이 아름다운 곳이 눈에 띄면 잠시 멈춰 사진을 찍기도 했으나 마음은 이미 어제 충분히 보지 못해 아쉬웠던 섬의 최남단에 있는 푼타 수르에 가 있었다. 
  
이슬라 무헤라스 섬의 마야 유적 Punta Sur에 위치한 마야 유적. 수많은 허리케인에 허물어져 남아있는 모습이 얼마 없다. ⓒ CHUNG JONGIN
   
푼타 수르는 한눈에 보아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바다색은 수면 밑에 자리한 산호초와 바위 등으로 인공으로는 만들 수 없는 다양한 청 녹색을 띠고 있다. 주변은 야생풀들이 자라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으며 조성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이구아나를 만날 수 있다.

언덕 끝자락에는 허리케인에 허물어지고 남은 작은 규모의 마야 유적이 있다. 마야 시절 허리케인의 도착을 소리 내 미리 알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나 그보다는 신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아무튼 지금은 등대가 전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 
 
Punta Sur의 해안 트레일 해안선을 따라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다. ⓒ CHUNG JONGIN
 
마야 유적 옆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울퉁불퉁한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트레일이 나온다. 트레일 중간중간에는 아래로 바닷물이 훤히 보이는 꽤 큰 구멍이 나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넉넉하고 다리에 힘이 있다면 걸어서 섬 이곳저곳을 탐색해 보는 것도 해 볼 만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복잡한 숙소 주변을 벗어나고 싶던 나는 어느 블로거가 추천한 쿠바 식당이 산책 삼아 걷기에 적당한 4~5km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조건 GO!"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이럴 때 GPS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복잡한 북쪽 거리를 벗어나니 길은 한산하고 오전에 골프카 안에서 언뜻언뜻 보였던 아름다운 해변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늦은 오후라 걷는 동안 해는 기울기 시작했다. 누군가 "일출은 순간이지만 일몰은 오래간다"라던 말이 생각났다.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이슬라 무헤라스의 일몰을 걸으며 만끽했다.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석양 산책 길에 만난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석양 ⓒ CHUNG JONGIN
 
식당을 찾아 일행은 해변 길, 가느다란 육지 사이를 길게 뚫은 호수 길, 그리고 가게, 학교, 놀이터 등이 있는 동네 길을 지났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늘 그렇듯이 헤매고 물어보며 식당을 찾아갔는데 보이질 않았다. 어렵게 찾은 식당은 초가지붕을 한 작은 집이었는데 불이 꺼져 있고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왜 문을 닫았지? 구글에는 영업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먼 길을 괜히 걸은 것 같아 약간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포기하고 오는 길에 보았던 화려해 보인 식당을 찾아갔다. 그야말로 숨겨진 맛집 그 자체였다. 요리사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졌고 접시 하나하나가 작품이었다. 여행 중 가끔 맞이하는 우연한 행운이다.

이 밖에도 이슬라 무헤라스 섬에는 여러 즐길 거리가 많다. 물놀이를 좋아한다면 스노클링도 빠트릴 수 없을 것이다. 고래상어가 이동하여 들어오는 여름철, 즉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고래상어와 함께  잠수도 가능하다고 한다. 카약, 짚라인도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겠다. 
 
해안가 식당에서 바라 본 석양 한 폭의 유화를 연상시킨다 ⓒ CHUNG JONGIN
 
나는 섬이 아직 멕시코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참 좋았다. 신용카드를 안 받는 곳이 많고 영어가 잘 안 통하고 인터넷이 느려도, 값싸고 맛있는 식당과 흥정이 통하는 소박한 가게들이 있어 정겨웠다.

이슬라 무헤레스, 여인의 섬. 여인이 꼭 젊고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두툼한 허리춤에 돈주머니를 차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한편으론 맛난 것을 집어주는 넉넉한 중년 아주머니도 여인이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섬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자태까지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섬은 진정한 "여인의 섬"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50+ 포털에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이슬라 무헤라스, #이스첼, #PUNTA SUR, #마야 유적, #칸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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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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