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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인도에서) 구입한 기타.
 처음으로 (인도에서) 구입한 기타.
ⓒ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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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악기를 다루려고 시도한 것이 언제일까. 초등학교에서 리코더,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심벌즈를 다루어 본 때인가. 아니면 피아노를 가르치는 어머니와 누나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고 나도 한 번 해볼까 생각했던 때일까. 그게 어느 때일지라도 나는 아직 그 어느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진지하게 또는 간절하게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냥 가끔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러곤 다시 그런 생각을 잊곤 했다. 

성인이 되고, 언제부턴가 악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밀려왔다. 내가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을 느꼈고 악기를 다루는 것이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떤 악기를 다루는 게 좋을까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따금 다시 이런 생각들이 올라왔고, 그럴 때마다 또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계속 생각만을 반복해오다 삼촌으로부터 기타를 받게 됐다. 더 이상 어떤 악기가 좋을지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배워서 연습하면 되는 일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배우는 게 좋은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원을 알아봤지만 나에게는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리고 좀더 자유롭게 배우고 싶었다. 검색을 해보니 인터넷으로 한 달 만 원 정도 비용으로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한 달, 쉬었다 두 달 그렇게 띄엄띄엄 조금씩 기타를 배워나갔다. 하루에 10분 많으면 30분 정도 연습했다. 조금씩이지만 익숙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다시 인도로 돌아와서는 기타 연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째로, 기타가 없었고, 둘째로,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대학원 생활에 적응을 했고, 익숙해지니 조금씩 여분의 시간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타를 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기타를 사야 했다. 너무 비싸지 않은, 하지만 쓸 만한 기타가 필요했다. 이곳에는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기 전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있다. 당연히 음악에 조예가 깊은 친구도 있다. 그래서 밴드에서 전문적으로 기타를 치던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우리는 함께 시내에 있는 작은 악기점을 찾았다. 문이 잠겨있었다. 간판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으니 건조하고 두툼한 목소리의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나는 기타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아저씨는 사뭇 퉁명한 말투로 한 10분만 기다리란다. 이곳에서 많은 친절을 기대하지는 않으니 대수롭지 않다. 친구와 근처에 있는 벤치에 가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10분이 조금 지나서 전화가 왔다. 문을 열었으니 오라는 아저씨의 말이다.

악기점에 들어가니 밖에서 보던 것만큼 작은 공간에 대부분 작은 전자피아노, 타블라(인도의 악기), 기타 몇 점이 보인다. 아저씨는 파란색의 기타를 건네준다. 친구는 음을 맞추고 간단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기타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음을 맞추고 연주를 해도 음이 맞지 않고 벗어난다는 설명이었다.

아저씨는 "악기는 100% 새 것이고, 이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친구가 음정을 책정하는 기계를 보여주며 설명하니 잠시 후 다른 기타를 꺼내 주신다. 하지만 이것 또한 비슷한 상태였다.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자 이번에는 빨간색 기타를 꺼내서 보여주신다. 하지만 이 기타는 기타 줄이 표면에서 너무 높아서 연주하는데 적절치 않다는 친구의 설명이다. 아저씨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저쪽 구석에 있는 박스에서 기타를 꺼내신다.

옆 면과 뒷 면은 진한 갈색, 그리고 앞면은 연한 밝은 갈색의 기타다. 지금까지 보여주시던 기타에 비하면 보기에 훨씬 나아 보였다. 새로운 기타를 받은 친구는 기타의 균형이 잘 맞춰져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본 후 음을 맞추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 연주를 하던 친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 정도면 쓸만하겠다는 의미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저씨는 이 기타는 이전에 보여준 기타보다 훨씬 비싼 기타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었지만 못 들은 척하며 기타를 건네받은 나는 코드를 잡아보고, 기타 줄을 튕겨보았다. 기타에 대해 잘 모르는 나지만 일단 코드를 잡고 연주를 하는데 전에 것들보다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타에서 나는 소리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격을 물었다. 그렇게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싼 가격인 것 같지도 않았다. 인터넷에 같은 브랜드의 기타를 검색해도 얼추 비슷한 가격을 보여주었기에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기타를 구입하겠다고 말하고 현금만을 받으시겠다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근처 ATM을 가서 돈을 찾아왔다. 

자리를 10분 정도 비웠을 뿐인데, 작은 악기점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가운데 앰프가 놓여있고, 주인 아저씨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친구는 그 노래에 맞춰 기타 연주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무뚝뚝한 아저씨의 열창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음악이 가진 힘이 아닐까. 함께 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지켜보며 흐뭇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아저씨는 1원 한 장도 깎아주지 않으셨지만, 나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쓸만한 기타를 손에 쥐었고, 흐뭇한 광경을 지켜보며 즐거움을 한껏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생애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기타를 구입했다. 중간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연습해서 몇 달 혹은 1년쯤 뒤에는 적어도 괜찮은 곡 하나쯤은 기타로 연주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매일 10분씩만 연습해도 1 년이면 60시간을 연습하게 된다. 하루 중 스마트폰 만지는 시간을 조금만 줄이면 10분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 그럼 잘 부탁한다. 나의 기타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블로그 등에 중복 게재합니다.


태그:#인도에산다, #취미, #악기,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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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대학 아유르베다 전공. 인도 아유르베다 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 후 동 대학원 고전연구학 석사를 마치고 건강상담, 온/오프 특강을 통해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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