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20년 새해 벽두에 꿈이 하나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멈출 줄 모르는 지금은 망상이 되고 말았지만, 생각만 해도 설렐 만큼 근사한 꿈이었다. 이름 짓기를 '달빛 동맹 프로젝트', 이곳 광주의 아이들과 함께 대구를 정기적으로 찾아갈 예정이었다.

동료 교사들도 흔쾌히 함께 하자고 뜻을 모았다. 소풍도, 동아리 활동도, 교과 답사 활동도 이왕이면 대구로 간다는 계획이 대강 수립되어 있었다. 일찌감치 학교 예산에도 반영했고, 교육청에도 교원 학습 동아리 활동 명목으로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가자 대구로! 오라 광주로!'
 

이번 프로젝트에 내건 거창한 구호다. 4.19혁명 직후 시민들의 남북통일 열망을 담아낸 가슴 뭉클한 구호,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슬쩍 흉내 낸 것이다. 2020년 올해 특별히 광주와 대구가 가까워져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광주에 빚졌다. 지난 2011년, 1980년 광주의 상황을 기록한 문서와 사진들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5.18은 세계가 공인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우뚝하다. 5.18정신이 곧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고갱이다.

하지만 숭고한 5.18정신이 '갑툭튀'일 리는 없다. 불의한 신군부의 만행에 핏빛 항쟁으로 맞선 당시 광주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그저 특정 지역의 성향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민주주의의 DNA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역사의 산물일 뿐이다.

대구는 명실공히 '좌파의 수도'였다
   
 
 대구시 중구 공평동에 있는 2·28기념중앙공원.
 대구시 중구 공평동에 있는 2·28기념중앙공원.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5.18은 가깝게는 유신 철권통치에 종지부를 찍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연장선에 있고, 멀게는 부패한 이승만 정권을 축출한 4.19혁명에 가닿는다. 4.19는 3.15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었고, 그 시작은 2.28민주화운동이다. 이는 필자가 5.18정신의 원류를 찾아 대구로 떠나려는 이유이다.

만약 대구가 없다면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얼마나 밋밋할 것인가. 지금이야 '보수의 본향'으로 여겨지지만, 해방 직후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명실공히 '좌파의 수도'였다. 대구가 낳은 근현대사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수구 세력의 텃밭'이라는 조롱이 낯설기만 하다.
  
예정대로라면, 올봄 대구에서 맨 처음 찾아갈 곳은 2.28 기념공원이었다. 그곳에서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5.18과 60주년을 맞는 2.28을 잇는 다리가 되어 달라고 주문할 참이었다. 2.28은 작년 문재인 정부에 의해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었다.

불의에 맞선 2.28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5.18정신으로 승화되었음을 깨닫게 하려는 뜻이다. 무엇보다 그들 또래의 청년 학생들이 우리 현대사를 이끌었던 주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안성맞춤의 장소이기도 하다. 광주의 아이들에게 2.28은 아직 낯선 이름이다.

물론 2.28만으로 대구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대구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근현대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관련 유적지가 많다. 비록 크고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인물들의 발자취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작지 않은 울림을 준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도시 

우선 조선 말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혹세무민의 누명을 쓰고 처형된 곳이 2.28 기념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다. 부패한 봉건왕조에 맞서 도탄에 빠진 민중의 편에 서고자 했던 영웅의 죽음 앞에 옷깃을 여미게 될 것이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현장인 셈이다.

국권 피탈 직전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맞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도 대구다. 1907년 무능한 조정을 대신해 일제에 진 빚을 민중이 십시일반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꼭 90년 뒤 IMF 당시 시민들이 동참한 금 모으기 운동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중심가엔 기념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상화의 자취도 오롯하다.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휘청이고 독립운동의 불씨가 사그라드는 1920년대에 민족혼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격정적 어조는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또 한 명의 저항시인 이육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친형, 동생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한 곳이자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한 '장진홍 의거'에 연루되어 처음으로 감옥 생활을 한 곳도 대구다. 그는 이후 광주학생항일운동에도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숱한 옥고를 치렀다.

그는 대구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필명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1932년 김원봉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선다. 변절한 문인들이 넘쳐났던 당시 그는 드물게 펜과 총칼로 일제에 끝까지 저항한 독립운동가였다.
  
해방 직후 대구는 전국에서 친일파 청산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도시였다. 1946년 좌익 세력의 주도로 대구에서 10월 항쟁이 시작됐고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미군정의 실정과 생활고에 대한 분노가 불을 댕겼을지언정 친일파가 여전히 득세하는 현실을 시민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친일파에 뿌리를 둔 우익 세력과 그들을 중용한 미군정에 의해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진압되면서 수많은 대구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항쟁을 주도했던 좌익 세력은 처형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다. 좌익계 인사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형인 박상희가 죽임을 당한 것도 이때다.
  
 1975년 4월 8일 오전 대법정에서 개정된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사건 피고들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 선고공판 모습
 1975년 4월 8일 오전 대법정에서 개정된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사건 피고들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 선고공판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10월 항쟁의 정신은 엄혹한 유신 철권통치 시절까지 이어졌다. 친일파 청산이라는 역사적 대의가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외침에 가닿은 것이다. 세계 역사상 최악의 사법 살인이라는 오명을 쓴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 대부분이 대구 경북 사람들인 건 우연이 아니다.
  
참고로 '인혁당(인민혁명당)'이란 1964년 대구 지역 교사들의 자발적 공부 모임에 내란음모 혐의를 씌운 이름이다. 증거가 없어 모두 풀려났는데, 10년 뒤 그들을 다시 법정에 세운 사건이 바로 '인혁당 사건'이다. '인혁당'을 재건해 반국가적 내란음모를 획책했다는 것이다.
  
당시 유신 반대와 긴급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자 공안기관을 동원해 간첩 사건으로 조작한 것이다. 판결 뒤 불과 18시간 만에 서둘러 사형을 집행했을 만큼 정권의 불안감은 컸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2009년, 이들에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여명을 밝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고향도 대구다. 그의 분신은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대어 성장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드러내며 수많은 시민의 성찰을 끌어냈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2.28 60주년이자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 덧붙이자면 6.25 전쟁이 벌어진 지도 올해 70년이 된다. 다부동 전적지와 낙동강 철교 등 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6.25 전쟁 유적이 산재해 있어 짬을 내 들러볼 만하다. 2020년 대구를 찾아갈 이유는 차고 넘친다.

대구의 아이들과 5.18정신을 나누고 싶다
 
 5월 항쟁은 주먹밥을 나누면서 대동세상을 추구했다. 광주 5·18민주묘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5월 항쟁은 주먹밥을 나누면서 대동세상을 추구했다. 광주 5·18민주묘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5.18 40주년을 맞은 올해 대구에 눈길이 멈춘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10의 자리 햇수에 연연하는 게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어떻든 광주 아이들에게 대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2.28과 대구를 알면, 5.18과 광주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라 믿어서다.

느닷없는 코로나19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고 언제 종식될지 기약도 없지만, 꿈을 접을 수는 없다. 부디 올해를 넘기기 전에 광주의 아이들과 손잡고 대구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대구의 아이들과 2.28 기념공원에서 5.18정신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2.28정신을 가슴에 품은 대구의 아이들도 올해가 가기 전에 광주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대구와 광주, 두 민주주의의 성지에서 아이들이 함께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저 코로나19가 원망스럽고도 원망스러울 뿐이다.

사족 하나. 아이들에 앞서 교사들부터 활발한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 몇 해 전부터 5.18 기념재단과 시교육청에서 전국의 교사들을 초청해 5.18정신을 나누는 교사 연수를 실시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대구와 경북 교육청 소속 교사들만 해마다 불참하고 있다.

연수 비용 전액을 광주에서 부담하는 까닭에, 서울과 경기 등지에서는 참가 경쟁이 자못 치열하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끝난 뒤의 이야기일 테지만, 부디 올해는 대구와 경북의 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욕심을 낸다면 대구에도 2.28정신 계승을 위한 교사 연수가 만들어져 초청받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제일 먼저 참가 신청을 할 생각이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늘도 난 세계일주를 꿈꾼다. 그 꿈이 시나브로 가까워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