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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자료사진)
 김종인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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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는 박근혜 캠프에서 대선을 지휘했다가,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20대 총선을 이끌었으나 2017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의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회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지금은 미래통합당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보따리'를 들고 1970년대부터 보수 정권들과 협력했으며, 최근에는 이곳 저곳의 선거 지휘자 역할을 해온 김종인은 '정치 철새'라는 용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보다는 춘추전국시대 때 제후국들을 돌아다니며 국가 경영론을 역설했던 '유세객(遊說客)'이라는 용어가 좀 더 나을 것 같다.

유세객은 넓게 보면 제자백가에 포함됐다. 정확히 표현하면, 움직이는 제자백가, 이동하는 제자백가라고 할 수 있다. 제후국들을 주유하며 유교사상을 전파한 공자와 맹자도 제자백가인 동시에 유세객이었다.

유세객이란 용어는 현대인들의 창작물이 아니다. 기원전 3세기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의 사상을 담은 <한비자>의 오두(五蠹) 편에도 '유세하는 선비'라는 의미의 유세지사(遊說之士)라는 표현이 나온다. 시간을 더 올라가, 기원전 11세기에 나온 강태공의 병법서일 수도 있는 <육도>에도 유사(遊士)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각지를 유람하며 연설이나 강의 등을 했던 이들의 특징이 '유세'나 유(遊) 같은 글자에 담겨 있다. 이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됐던 유세라는 표현이 오늘날에는 선거출마자나 선거연설원을 지칭하는 데 쓰이고 있다.

김종인이라는 '특별한' 유세객

자기를 기용해줄 주군을 찾아다닌 이들 유세객들은 외형상으로는 제후의 참모로 활약했지만, 오늘날의 참모형 지식인과는 크게 달랐다. 모든 경우에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볼 때 이들은 주군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펼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제후의 뜻을 위해 자기 머리를 빌려주는 게 아니라 자기의 뜻을 위해 제후의 팔다리를 빌리려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참모는 아니었다.

이들은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웅지를 품었지만, 뜻을 실현시킬 영토와 신하, 군대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영토와 신하와 군대를 보유한 제후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알아줄 주군을 찾아다니는 지식인의 모습이 이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남의 신하가 됐으면서도, 남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들은 수시로 짐을 싸서 이 나라 저 나라 옮겨다닐 수밖에 없었다. 자기 영토와 신하와 군대가 유세객의 뜻대로 쓰이는 것을 끝까지 지켜볼 제후는 별로 없었다.

제후들은 유세객이 열심히 일하도록 하고자 전권을 다 주는 것처럼 하다가도, 유세객이 자기 뜻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 같으면 얼른 해고해버리곤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세객들은 자기 뜻을 받아줄 주군을 만나겠다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품고 일생 동안 제후국들을 방랑하며 다녔다.

그런데 김종인이라는 '유세객'은 좀 특별한 데가 있어 보인다. 특별한 데가 있어 보인다고 하는 것은, 그가 경제학자인데도 선거를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새누리당의 2012년 대선 승리와 민주당의 2016년 총선 승리를 견인한 것은 제자백가 시대 유세객들이 볼 때는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남의 영토·신하·군대를 빌리려 하다 보니, 유세객들은 '남'이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해야 했다. 제후들의 최대 관심사는 동료 제후들과의 경쟁이나 전쟁에서 승리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제후들의 마음을 사자면, 부국강병이나 전쟁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어야 했다. <논어>나 <맹자>에 나오는 문답의 상당수는 이런 내용들에 관한 것이다.

춘추전국 유세객이 제후들의 호감을 끌기 위해 전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게 당연했듯이, 현대판 유세객 김종인이 선거를 잘 아는 것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정당을 통해야 정치적 뜻을 펼치는 게 수월한 정당제 민주주의 하에서, 유세객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 정당 지도부의 호감을 끌려면 그게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그가 선거를 잘 아는 것은 적어도 그 자신한테는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김종인이 외형상 특별해 보인다고 말한 것은 그가 경제민주화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로 보수정당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잠깐 지낸 것을 제외하면, 1970년대 중반부터 그는 주로 보수정권과 가깝게 지냈다.

1940년에 지금의 서울 관악구 신림동인 경기도 시흥에서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손자로 태어난 김종인은 중앙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3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근무하며 박정희 정권에 정책 건의를 한 그는 1980년 5·18 직후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일종의 임시정부) 자문위원이 되고, 1981년에 민주정의당(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고, 노태우 정권 하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과 경제수석비서관이 됐다.

이렇게 주로 보수정당에 몸을 담았으면서도 그는 보수와 얼른 부합되지 않는 행적들을 남겼다. 특정 집단보다는 사회 전체를 위하고 경제적 강자뿐 아니라 약자까지도 배려하는 관점을 담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전도사 혹은 포교사로 활동해온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그가 기여한 최대 성과로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들 수 있다.

1987년 6월항쟁 직후에 제정된 현행 헌법에서 가장 진보적인 조항 중 하나인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벌 규제의 근거가 되는 이 조항의 신설에 김종인이 기여했다는 점은, 1987년 당시의 민정당 정책위원회 의장이었던 남재희 전 의원의 증언에서도 나타난다.

2016년 1월 31일자 <연합뉴스> 기사 '김용갑 주장, 내가 야당 온 데 대한 불만인 듯'에 따르면, 남재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가리키며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김 위원장이 마지막 손질까지 해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별도 보고해 오케이까지 받았다고 들었다"며 "20여 년 전에 119조 2항이 '김종인 조항'이라고 맨 먼저 언론에 기고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외치는 김종인,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이처럼 반재벌적인 헌법 조문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이 친재벌적인 보수정당에 주로 몸담아왔으니, '마음 따로, 몸 따로'인 인물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만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외형상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마음 따로, 몸 따로가 절대 아니다. 그가 지나온 행적을 추적해보면, 그의 행동에 일관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김종인은 제119조 제2항 신설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의 총론을 헌법화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진세가 진보적 제도로 한창 각광 받던 1975년에 <경제학 연구> 제23권에 실린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에 대한 한계성'이란 공동논문에서 당시 35세의 경제학자인 김종인은 "조세 및 조세체제를 통한 소득 재분배적인 효과는 현실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 정부 지출을 통해 저소득층을 도울 수 있다는 발상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고소득층에게서 좀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가 토지공개념을 적극 추진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와전된 것이다. <노태우 회고록> 하권에 따르면, 그가 한 일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도록 권유한 것이었다. "김종인 경제수석이 5대 그룹의 기획조정실장들을 불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던 것으로 안다"고 노태우는 회고했다.

조세정의·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 같은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방안들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는 것은, 그가 경제민주화의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각론에는 소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모순적이거나 위선적인 인물이라기보다, 춘추전국 유세객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는 지점들이다. 

유세객들은 대중이 아닌 제후의 지지를 바탕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친(親)제후적이었다. 이들이 대중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을 내놓을 때도 그랬다. 그런 경우에도 그들의 기본 목적은 제후가 이끄는 정부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있었다.

김종인이 경제민주화를 역설한 것은 경제적 약자들의 복리 증진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민중의 민주화운동으로부터 기존 체제와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이 점은 김종인 자신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낸 인식이다.

김종인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2008년 7월 28일자 <미디어스> 기사 '양극화 해소 없이 한국사회 전진 못해'는 그가 헌법 제119조 제2항에 애착을 가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래 첫 문장의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는 이 조항에 나오는 문구다.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란 부분은 개별 재벌기업들을 지나치게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양극화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경제·사회적 긴장이 고조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거나 흔들릴 우려가 커졌을 때 정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원용할 수 있는 비상 안전장치를 염두에 둔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좀 완곡하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부르주아계급과 정권의 안전을 위해 경제민주화 규정이 필요하다는 그의 인식을 보여주는 설명이다. 비상 안전장치를 마련해둔다는 차원에서 제119조 제2항을 신설했던 그의 동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경제민주화를 외친 진짜 목적

이처럼 기존 경제시스템과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제민주화를 거론했기 때문에, 조세정의·토지공개념·금융실명제 같은 각론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은 원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 경제민주화라는 대의를 천명했다는 사실을 6월항쟁 직후의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게 급선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제119조 제2항은 경제민주화에도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그보다는 6월항쟁 이후 단결된 민중의 도전으로부터 보수 체제를 지키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체제에 대한 민중의 반발을 무마하는 '비상 안전장치'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종인이 국민대중보다는 정권과 체제의 편에서 경제민주화를 역설했다는 점은 그를 대하는 노태우의 시선에서도 어느 정도 느껴진다. 노태우의 눈에, 김종인은 정권 편에서 각종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노태우 회고록> 상권에서 노태우는 김종인을 최병렬·김학준·현홍주·강용식·임인규 같은 보수파 참모들과 한데 엮으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들은 갖가지 사항들에 대해 내게 주언해주었다. 당내 민주화와 당 운영에 관한 일, 청와대로부터의 지시와 국민여론을 분석하는 일, 야당 및 외국과의 관계 등 여러 현안들에 대해 논의를 거쳐 의견을 제시했다. 멤버들이 준재(아주 뛰어난 재주)들이어서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지도자로서의 나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에서부터 당내 민주화, 대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에 걸쳐 이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종인이 대학교수에서 정치인 혹은 행정가로 변모하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는 한국 사회에서 대중의 정치적 도전이 거세게 일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김종인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체제와 정권을 지키는 고민을 했다. 그 결과로 그가 내린 선택은, 일정 수준의 경제민주화 조치로 대중의 분노를 달래되 너무 구체적으로 시행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경제민주화 발상을 갖고도 보수정권에 몸담은 것은 조금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 따로, 몸 따로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항상 그곳에, 몸은 거의 항상 그곳에 있었다. 김종인 전 의원의 미래통합당 선거 지휘설이 나오는 지금 상황도 그의 인생 흐름에서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태그:#김종인, #경제민주화, #유세객, #제자백가, #21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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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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