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금요일의 퇴근길. 언제나처럼 제일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서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려는데 한 분이 진지하게 물어보신다. 

"주말엔 뭐 할 거야?"
"네? 그냥 이것저것 하려고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야... 요즘엔 퇴근 후에 뭘 하고 지내야 하는지 몰라서."

지난 2월 20일 포항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로는 일터에서도 긴장감이 갑자기 고조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코로나19와 관련된 근무 기준들이 안내되었고, 가능하면 집과 일터 이외의 장소에는 방문하지 않기를 권고했다.

갑자기 달라진 일상은 혼란스러운 일의 연속이다. 퇴근 후에 참여하던 모임들은 줄줄이 취소되었고, 회식이나 소모임도 자제하라는 안내가 전해지며 집에 일찍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 일주일 정도 '재택근무'가 진행되면서 평소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일과'를 만들어야 했다. 따져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3주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제약이 많았지만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을 나름대로 꽤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는 듯하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법
 
몇 년째 거실에 '놓여있기만' 했던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기로 했다.
 몇 년째 거실에 "놓여있기만" 했던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기로 했다.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요즘 내 일상에서 꽤나 중요한 공간은 바로 집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집은 밤늦게 들어와서 잠만 자는 곳이었다면, 요즘엔 취미의 공간이자 식당(주방)이고, 사무실이자 카페이며, 체육관이기도 하다.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칫 늘어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각각의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을 정해 놓은 것이다.

예를 들면, 몇 년째 거실에 '놓여있기만' 했던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기로 했고, 가스비가 0원이 나올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던 주방에선 요리를 하거나 커피를 준비하고, 현관 앞에서는 운동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피아노는 5~6년 전에 배우다가 그만두었기에 아직은 동요를 연습하는 수준이지만, 상황이 정리되기까지 '어머님 은혜'는 꼭 완성하고 싶다. 그리고 집에만 있으니 운동이 부족한 것도 문제여서 현관 근처에 요가 매트를 펼쳐놓고 108배를 하고 있다.
 
홈트를 하다가 힘들어서 108배를 하고 있다.
 홈트를 하다가 힘들어서 108배를 하고 있다.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재택근무 기간 동안은 스마트폰에 홈트레이닝 앱을 깔아놓고 트레이너가 가르쳐주는 동작을 따라 했는데, 말 그대로 '토할 만큼' 어려워서 그만뒀다.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팔굽혀펴기를 일곱 개까지 했다!

대안으로 108배를 선택한 것은 코로나19 때문에 취소한 템플스테이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는데, 근육질 트레이너한테 시달리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라 얼마 동안은 계속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꼭 새벽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서 108배를 올릴 수 있을 거라 기원하면서 말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은 이전과는 같을 수 없다.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 많은 데다가, 답답하게 긴장한 채 '감염에 대한 두려움'까지 함께 갖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조금씩 되돌리다 보면, 멀어 보이던 우리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어 있을 것이고 말이다.

퇴근 후 필수코스가 된 동네 시장
 
우리 동네의 재래시장 골목입니다. 이 곳에는 단골 가게들이 있고, 안부를 묻는 주인장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저녁햇살이 비추는 시장에서 봄나물을 사서 들어왔습니다.
▲ 퇴근 후 가장 먼저 찾는 동네의 시장입니다.  우리 동네의 재래시장 골목입니다. 이 곳에는 단골 가게들이 있고, 안부를 묻는 주인장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저녁햇살이 비추는 시장에서 봄나물을 사서 들어왔습니다.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요리는 필수! 요즘 퇴근길은 동네 시장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날 저녁 끓여먹은 김치국수 사진을 보고 친구가 봄 냉이를 반찬으로 추천한 터라 퇴근길에 동네 시장에 들렀다.

시장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마스크에 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한 채 시장으로 들어섰다. 한결 따뜻해진 저녁의 시장엔 황금빛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고, 할머니들이 봄나물들을 펼쳐놓고 자리를 잡고 계셨다.

평소였다면 바쁘게 지나쳤을 텐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생긴 여유가 선물해준 또 다른 만남이다. 단골 빵집에서 바게트를 한 개 챙겨 나오는 길에 가게 앞에 앉아계신 할머니가 파는 통통한 냉이와 깨끗한 달래를 골랐다.

"얼마예요?"
"냉이는 이게 전부야. 천 원에 가져가."
"달래는요?"
"이천 원이면 쪼금밖에 안 돼."
"조금씩만 있으면 돼요.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 감사합니다!"


단골 책방에서 안부를 묻고는 비어있는 시간을 채울 책을 산다. 단골 책방에서 매주 두 번씩 진행되던 독서모임이 중단된 것은 서운하지만, 독서클럽 멤버들과는 단체 채팅방에서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곧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참, 제가 만들었던 '달래냉이 봄봄떡국'은 꼭 추천하고 싶은 메뉴다. 한 번 꼭, 해보시길! 지금을 잘 견뎌내면 평화로운 삶이 꼭 다시 되돌아 오겠죠?
 
요즘 다양한 방식으로 떡국을 끓이고 있습니다. 냉동실을 가득채운 엄마표 떡국을 파먹고 있는 중이거든요. 오늘은 달래와 냉이를 조금 넣어 보았는데, 정말 추천할만한 맛이었어요.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죠!
▲ 이름하여 "달래냉이 봄봄떡국"과 함께한 저녁입니다.  요즘 다양한 방식으로 떡국을 끓이고 있습니다. 냉동실을 가득채운 엄마표 떡국을 파먹고 있는 중이거든요. 오늘은 달래와 냉이를 조금 넣어 보았는데, 정말 추천할만한 맛이었어요.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죠!
ⓒ 이창희

관련사진보기

 
'달래냉이 봄봄떡국' 만드는 법

1) 냉동실에서 방황하는 얼음 꽁꽁 떡국을 꺼내 물에 불려둔다(저는 엄마가 챙겨주신 떡국을 하루 정도 찬물에 담가 놓았어요. 가끔 물을 바꿔주시면 좋습니다).
2) 냉동실에서 놀고 있는 국물용 멸치, 다시마, 대파 뿌리 부분을 넣어서 육수를 끓여 놓는다(저도 육수를 많이 끓여놓고, 국수에도 쓰고 떡국에도 쓰고 있어요. 내일은 남은 달래랑 냉이를 넣어서 된장국을 끓일 때도 써 보려고 합니다).
3) 덜어낸 육수에 소금을 약간 넣어서 끓이다가, 육수가 끓으면 불려놓은 떡국을 넣어서 끓인다.
4) 떡국이 익어가면 대파의 파란색 잎 부분을 썰어서 넣고 조금 더 끓인다(보통은 여기서 드시면 되는데, 오늘은 비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5) 씻어놓은 냉이 두~세 뿌리와 달래 한 움큼을 넣고 한 번 더 끓여서, 맛있게 먹는다(달래와 냉이는 오늘 처음 넣어봤는데요, 정말 신기했어요. 분명히 끓이기 전의 냉이에서는 봄 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떡국 안에서 끓여지면서 온 집안에 봄 냄새가 화~악 퍼져버리는 거예요. 몇 뿌리 넣지도 않았는데, '나 여기 있소! 내가 봄이오!' 하고 외치는 느낌이었습니다).

태그:#일상 비틀기, #코로나19시대의 일상, #108배, #피아노, #시장산책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