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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은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의미 있는 해를 맞아 많은 시민들이 임시정부가 걸었던 '임정로드'를 따라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 102주년에도 그 발걸음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역시 지난 1월 9일부터 5박 6일 동안 청년백범 14기 답사단의 일원으로 중국 광저우~충칭에 이르는 임정로드를 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길 위에서 보고 들으며 느꼈던 경험을 독자들께 공유하고자 <오마이뉴스>에 답사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 말


1939년 충칭에 정착한 임시정부 가족들은 땅 하나를 빌려 마을을 개척했다. 그곳이 바로 '토교촌(土橋村)'이다.

토교촌에는 '한인거주옛터'라고 쓰여진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현재 표지석이 세워진 현장은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유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오기 힘든 곳이기에 입구에서 관리인에게 사정을 해보았지만, 끝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공사장이라 위험해서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는데, 우리도 더 할 말은 없었다.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바리케이드로 막힌 토교촌 입구
 바리케이드로 막힌 토교촌 입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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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표지석을 직접적으로 보지는 못하더라도, 우회하여 토교촌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샛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벌써 수차례 토교촌을 찾아 이 길을 발견한 청년백범 선배 기수들 덕분에 우리는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토교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배추밭이 등장했다. 이제 임시정부 가족들이 살았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중국 현지인들이 거주하며 밭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었다.
 
 토교촌 전경
 토교촌 전경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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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청년들은 밤낮으로 훈련을 하고, 아낙들은 농사를 짓고, 아이들은 개울에서 뛰놀았을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토교촌을 따라 길게 이어진 강의 이름은 화계하(화시허·花溪河)라고 했다. 그 물이 워낙 맑고 깨끗하여 임시정부 가족들도 화계하의 물을 길어 생활용수로 썼다. 이들은 종종 화계하에서 잡은 물고기로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했고, 더운 여름날이면 이곳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했단다.
 
 토교촌 옆을 흐르는 화계하
 토교촌 옆을 흐르는 화계하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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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임시정부 직원의 부인이나 모친들은 부녀자의 몸으로 '한국여성혁명동맹'을 조직하여 남자들의 독립운동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또 아이들을 모아 우리 말과 글, 동요를 가르쳤다. 그런가 하면 광복군 청년들은 '토교대'를 조직하여 광복군 입대 희망자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1941년 10월 10일, 토교촌 '3.1유치원' 추계 개원 기념사진
 1941년 10월 10일, 토교촌 "3.1유치원" 추계 개원 기념사진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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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마을에 깃든 설움

하지만 이토록 평화로운 마을에도 비극이 있었다. 동행한 선생님으로부터 "수영도 못하는 조선의 망국노"라며 중국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던 한국인 아이가 홧김에 개울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망국노(亡國奴: 나라가 망하여 침략국의 노예로 사는 백성)! 해외에 얹혀사는 망명정부와 망국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설움!

문득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원로 독립운동가의 육성 증언이 떠올랐다.

"나라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통칭은 망국노였다. 한국 아이들과 중국 아이들이 싸울 때 '너희 망국노'라고 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분한지 몰랐다. 지금 우리 한국이 다시 나라를 찾아서 기쁘게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때 어려서부터 뼈가 저리도록 망국노의 한을 느끼고 살았다." - 독립운동가 김정숙 선생의 회고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노(老) 애국지사가 망국노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끝내 울먹이며 더 말을 잇지 못할 때, 나도 울컥해서 따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조롱을 받아야만 했던 그 심정을 오늘의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해야 한다. 이곳을 계속 찾아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고.

그곳엔 여전히 독립운동가들이 남아있다

1939년 충칭에 정착한 이래, 1945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 가족들은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충칭에서 보냈다. 그 기간 중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이들도 있었다.

해방 후 후손들에 의해 국내로 유해가 봉환된 분들도 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아직까지도 충칭에 잠든 이들도 있다. 임시정부 가족들이 잠든 그곳, 바로 ​'화상산(和尙山) 한인(韓人) 묘지'​다.

​대표적으로 이곳에 잠들었던 분들의 이름을 열거하자면 곽낙원(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김인(백범 김구 선생의 장남), 송병조(임시의정원 의장), 차리석(임시정부 비서장), 이달(조선의용대 본부 선전조장), 박차정(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 등이 있다. 이외에도 20명에 달하는 조선의용대 대원들 역시 이곳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충칭 화상산 한인묘지에 마련된 백범 김구의 모친 곽낙원의 묘역(1939년 4월)
 충칭 화상산 한인묘지에 마련된 백범 김구의 모친 곽낙원의 묘역(1939년 4월)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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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곽낙원, 김인, 송병조, 차리석, 박차정 선생 등의 유해는 국내로 봉환됐다. 하지만 모두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유해 봉환 사업을 진두지휘하던 김구 선생이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에서 암살당하고, 한·중 간 교통도 끊기면서 유해 봉환 사업이 중단되고 말았다.

한·중 수교 후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는 이미 묘지가 모두 밀린 상태였다고 한다. 우리가 화상산 한인묘지 앞에 도착해보니, 그곳은 건물을 짓기 위해 굴삭기가 왔다갔다하는 공사장으로 변해있었다.
 
 공사장으로 변한 화상산 한인묘지
 공사장으로 변한 화상산 한인묘지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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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미 묘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유해 발굴 역시 불가능할 것으로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공사장으로 변한 묘지 터를 가만히 살펴보니 '아직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14년~2016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서 유해발굴전문병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한 바 있다. 발굴작전 당시 60여 년이 지난 유해들이 지표면과 땅 속 깊은 곳에서 발굴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인위적인 매장 없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매장된 유해들조차 발굴되는 상황에서, 지하에 매장한 유해들의 발굴 가능성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주변 묘지가 다 헐렸다고 하더라도 땅 속을 뒤집어놓았던 게 아니라면 그 밑에는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위에 건물이 들어서지만 않는다면 아직은 발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아직 발굴 가능성이 있는 한인묘지 터
 아직 발굴 가능성이 있는 한인묘지 터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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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간이 문제였다. 굴삭기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져 당장이라도 야삽 하나 들고 뛰어올라가 땅을 파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짐했다.

내 두 눈으로 유해발굴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화상산 발굴 만큼은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오마이뉴스>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께 공개 편지를 띄웠지만, 생각보다 저조한 관심 속에 청원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관련 기사: 독립운동가 묘지가 공사장으로... 정부는 뭐하나).

담당 부처인 국가보훈처에도 민원을 넣었지만 "민원인이 관련 증거를 찾아서 제시하라"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1%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결코 포기해서는 안돼

지금 발굴을 시도하는 것이 무리인 것을 안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해당 지역에 대한 공사 중단을 요청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서둘러 발굴 조사를 실시하면 된다. 1%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한다면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화상산 한인묘지에 참배하는 청년백범 14기 답사단
 화상산 한인묘지에 참배하는 청년백범 14기 답사단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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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잘 관리되고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는 것보다 언제 굴삭기에 의해 뒤집힐지 모르는 화상산 한인묘지에 대한 발굴이 더욱 시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9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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