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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은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의미 있는 해를 맞아 많은 시민들이 임시정부가 걸었던 '임정로드'를 따라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 102주년에도 그 발걸음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역시 지난 1월 9일부터 5박 6일 동안 청년백범 14기 답사단의 일원으로 중국 광저우~충칭에 이르는 임정로드를 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길 위에서 보고 들으며 느꼈던 경험을 독자들께 공유하고자 <오마이뉴스>에 답사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 말


청년백범 답사단은 마침내 임정로드의 종착지 '충칭'에 도착했다.

충칭에서의 첫 일정은 새롭게 복원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는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 '한국광복군'의 사령부가 있던 건물이다.

원래 건물은 철거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2019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추용로 37호(邹容路 37号)'에 건물을 복원했다.
 
 2019년 3월, 중국 충칭 시내에 복원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건물
 2019년 3월, 중국 충칭 시내에 복원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건물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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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총사령부가 복원되기까지의 과정은 참 지난했다. 2014년 1월, 당시 박근혜 정부가 중국 정부에 총사령부 원형 복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사드 배치 문제로 박근혜 정부와 중국의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논의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재차 부탁하여 마침내 복원·개관하기에 이른 것이다. 독립기념관의 실측조사 등 학계 차원에서의 총사령부 복원 추진은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무려 18년 만에 이뤄낸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총사령부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곳에 세워진 광복군총사령부가 최초의 총사령부 건물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학자 조동걸 교수를 비롯해 기존의 연구들은 이번에 복원된 총사령부 건물이 언제부터 총사령부로 쓰였는지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총사령부는 광복군 창설 직후 시안(서안·西安)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충칭으로 이전하는 등 여러 차례 건물을 옮긴 바 있다.
 
 1940년 9월 17일, 충칭 가릉빈관에서 열린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
 1940년 9월 17일, 충칭 가릉빈관에서 열린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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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역사학자 김주용 교수는 '최초의 광복군총사령부 자리는 어디였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해당 장소를 추적했다. 김 교수는 중국 군사위원회 인물들의 활동에서 그 단서를 찾는다.

중국 군사위원회에서는 광복군 창설 직후 '한국광복군 행동 9개 준승' 등의 규칙을 만들어 광복군을 중국군의 통제 하에 두고자 끊임없이 간섭했다. 그래서 1942년부터는 중국 군사위원회 소속 중국군 장교들이 총사령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국 군사위원회 고급 참모인 윤정보(인청푸·尹呈輔)가 참모장으로 보임되었는데, 윤정보는 총사령부의 소재지를 충칭에서의 세 번째 임시정부 청사였던 ​오사야항(우스예샹·吳師爺巷)으로 기억하고 있다.
 
 충칭의 세 번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오사아향' 청사 터. 현재는 모두 철거됐다.
 충칭의 세 번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오사아향" 청사 터. 현재는 모두 철거됐다.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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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김주용 교수는 초기 총사령부는 임시정부와 공동으로 오사야항 청사 건물을 썼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비좁은 기존 건물 대신 새로운 건물을 총사령부로 쓰기 위해 추용로 37호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복원된 건물이 바로 마지막 총사령부 건물이다(광복군총사령부에 대한 김주용 교수의 견해는 <백범의 길>을 참조했다).

부사령실에 걸린 약산의 군복

충칭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총사령부 건물은 2층 규모의 임시정부&광복군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2층에는 '총사령실', '부사령실', '참모장실' 등 주요 지휘관들의 집무실을 복원해 놓았다.
 
 광복군총사령부 내 회의실
 광복군총사령부 내 회의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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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해설을 하고 있는 마완근 역사교사
 전시 해설을 하고 있는 마완근 역사교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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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약산 김원봉'이다. 이곳에서는 김원봉 장군이 광복군의 부사령관이자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으로 당당하게 소개되고 있었다. 복원된 부사령실 안에는 방금 전까지 약산이 머물렀던 것처럼 계급장이 달린 군복 상의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광복군총사령부 전시실에 걸린 약산 김원봉 사진
 광복군총사령부 전시실에 걸린 약산 김원봉 사진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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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군총사령부 2층에 복원된 '김원봉 부사령실'
 광복군총사령부 2층에 복원된 "김원봉 부사령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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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령실 옆으로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과 참모장 이범석 장군의 집무실도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실제로 출신도 다르고 정치적 견해도 달리했던 탓에, 임시정부 내에서 이들의 사이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적' 일본을 타도해야 한다는 대국적인 차원에서 이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 소속으로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는 운명을 생각하니, 그 비정한 역사에 안타까운 한숨만 쏟아졌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앞에 선 청년백범 14기 답사단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앞에 선 청년백범 14기 답사단
ⓒ 변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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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집터에 표지석 하나만 세웠으면

광복군총사령부에서 집무를 마친 약산은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약산이 살았던 '대불단정가 172호(大佛段正街 172号)'로 향했다.

그곳은 도심 변두리에 자리 잡은 낙후된 골목이었다. 좁은 골목길에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중국 상인들이 즐비하고, 옆으로 난 계단에서는 간이 이발소가 성업 중이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풍경이 생소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중국의 골목시장 풍경을 감상하며 걷던 우리는 마침내 허물어지기 직전의 한 건물 앞에 섰다. 이 집이 바로 약산 김원봉 장군이 살았던 집터라고 한다. 답사단을 인솔하던 마완근 교사는 "우리가 오는 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며 "눈에 잘 담아두라"고 답사단원들에게 주문했다.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의 '약산 김원봉 집터'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의 "약산 김원봉 집터"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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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로드 4000km>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사진으로 현장을 봤을 때보다도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이미 주변 건물은 다 헐려서 폐기물 처리장처럼 변했고 약산의 집터 역시 헐리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 모두들 철거되기 전에 눈으로나마 담아두자는 생각으로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폐허가 된 대불단정가 일대
 폐허가 된 대불단정가 일대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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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마음에 벽을 더듬어 보는데 '김원봉 집터'라는 또렷한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우리보다 앞서 이 곳을 찾아왔던 그 누군가도 우리처럼 안타까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시멘트벽에 한글로 약산의 집터라고 새기고 간 것이다.
 
 시멘트 담벼락에 한글로 새겨진 '김원봉 집터' 흔적
 시멘트 담벼락에 한글로 새겨진 "김원봉 집터" 흔적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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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집이 헐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집터가 헐리고 나면 뭐가 들어설지 알 수가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하철역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관리가 안된 상태로 방치될 바에야 차라리 지하철역이 들어서고 깨끗하게 정비되면, 그 앞에 작은 표지석 하나라도 세워줄 것을 중국 정부에 요청하면 어떨까? 아래와 같은 문구로 말이다.

'이곳은 의열단장, 조선의용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약산 김원봉 장군의 집터입니다. (這裏是義烈團長, 朝鮮義勇隊長, 韓國光復軍副司令官, 大韓民國臨時政府軍務部長 若山金元鳳將軍的舊居遺址.)'

(*8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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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학도 / 以茶靜心 以武健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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